2024년 11월 21일(목)

[기부 그 후] 부족하고 서툴지만 발달장애인 스스로 가꾼 텃밭

-꿈더하기지원센터의 텃밭 가꾸기 프로젝트

“우리가 키운 배추로 김치를 담궜어요!”

지난해 12월 서울 영등포구 꿈더하기지원센터(이하 꿈더하기) 프로그램실에서는 아주 특별한 행사가 열렸습니다. 발달장애 친구들이 직접 기른 무와 배추, 고추 등을 수확해 김장을 한 것이지요. 30여 명의 발달장애 친구들과 부모님 그리고 사회복지사 선생님과 지역 주민이 함께 김치를 만들었습니다.

양화대교 근처의 텃밭에서 밭을 간 뒤 씨를 뿌리고 있는 꿈더하기 친구들과 사회복지사 선생님들. ⓒ꿈더하기지원센터
양화대교 근처의 텃밭에서 밭을 간 뒤 씨를 뿌리고 있는 꿈더하기 친구들과 사회복지사 선생님들. ⓒ꿈더하기지원센터

같은 해 가을엔 영등포구청 앞마당에서 열리는 장터에 나가 수확한 농산물들을 내다 팔기도 했습니다. 그날 일일 장사꾼으로 변신한 김가희(19∙가명) 양은 어깨가 으쓱합니다.

“우리가 키운 상추와 고추를 사 가는 사람이 있다니 정말 신기했어요. 앞으로도 직접 기른 채소를 시장에서 팔고 싶어요.”

 
 

◇ 텃밭 가꾸기로 흥미 더하고 꿈은 쑥쑥

꿈더하기지원센터는 2013년 설립됐습니다. 이곳에는 발달장애, 지적장애, 경계성장애 등이 있는 친구들이 와서 사회화 교육, 심리 치유, 직업 훈련 등 다양한 교육∙체험 프로그램을 경험합니다. 바리스타 및 제빵 교육을 받은 친구들이 만든 빵과 커피는 꿈더하기 베이커리와 카페에서 팔리지요. 지역민들 사이에선 맛이 아주 좋다고 소문이 났답니다.

지난해 여름, 봄에 심었던 씨앗이 싹을 틔었다. 새싹을 신기한 듯 바라보고 있는 꿈더하기 친구들. ⓒ꿈더하기지원센터
지난해 여름, 봄에 심었던 씨앗이 싹을 틔었다. 새싹을 신기한 듯 바라보고 있는 꿈더하기 친구들. ⓒ꿈더하기지원센터

지난해 여름, 봄에 심었던 씨앗이 싹을 틔었다. 새싹을 신기한 듯 바라보고 있는 꿈더하기 친구들. ⓒ꿈더하기지원센터

그러던 어느 날, 채민정(46) 꿈더하기지원센터 센터장은 한 가지 아이디어를 냅니다. ‘직접 텃밭을 가꾸고 관리하면 친구들의 정서 발달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2015년 채 센터장은 사회복지사 선생님과 지역 주민으로 구성된 자원봉사자들을 모았습니다.

“아이들을 위해 텃밭을 가꿔봅시다!”

2015년 텃밭 가꾸기 시행 첫 해에는 서울고용노동청 지원으로 농작물을 무사히 길러냈습니다. 친구들은 씨앗, 묘목 등을 직접 텃밭에 심어 길렀어요. 하지만 문제는 지난해에 생겼습니다. 서울고용노동청의 일자리창출 지원사업이 중단된 것이지요. 센터의 한정된 예산으로 씨앗, 묘목, 농기구 등을 마련하기 턱 없이 부족했습니다. 채민정 센터장과 사회복지사들은 고민에 빠졌습니다.

 

 

◇ 직접 밭을 갈고 돌을 골라내고 씨 심으며 달라진 아이들

채민정 센터장은 고민 끝에 한 가지 방법을 생각해 냈습니다. 바로 네이버 해피빈에 모금함을 개설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결과는 대성공! 지난해 3월 1일부터 같은 해 12월 31일 동안 개인 후원자들이 57만 9000원, 기업 후원자(KT&G)들이 454만 1000원을 기부해 총 512만원이 모인 것이죠. 이 돈으로 농기구와 씨앗, 모종 등을 구입해 텃밭을 가꿨습니다.

봄에는 씨감자와 상추, 고구마를 심었습니다. 여름이 되어서는 토마토와 완두콩, 고추를 길렀지요. 가을엔 배추와 무를 심으며 본격적인 김장 준비를 했습니다. 친구들은 1년 동안 텃밭을 직접 갈고 씨를 심고 물을 주었습니다. 처음에는 ‘힘들다’, ‘흙이 더러워서 하기 싫다’던 친구들이 애정을 갖고 텃밭을 가꾸게 됐습니다.

지난해 가을, 꿈더하기 친구들이 배추밭에서 김장할 배추를 고르고 있다. ⓒ꿈더하기지원센터
지난해 가을, 꿈더하기 친구들이 배추밭에서 김장할 배추를 고르고 있다. ⓒ꿈더하기지원센터

“이경진(25∙가명)이라는 남자 친구는 폭력성이 강했어요. 친구들에게 시비를 걸고 위협하기 일쑤였죠. 당연히 텃밭 가꾸기에도 참여하지 않고 텃밭 주위만 뱅뱅 돌았어요. 그런데 지난해 무렵부터 이 친구의 태도가 변했습니다. 이젠 말도 잘하고 친구들과 사이 좋게 지내요.”(채민정 센터장)

이제 경진 친구는 텃밭 가꾸기에 그 누구보다 열중입니다. 일주일에 두 세번 텃밭 가꾸기를 하러 갈 때마다 친구들 보다 앞서 나가지요. 경진 친구 외에도 많은 꿈더하기 친구들에게 좋은 변화가 생겼습니다. 직접 식물을 기르는 것은 물론 작업복을 빨고 지역 주민들과 어울리며 사회성이 길러진 것이지요. 한 친구의 부모님은 “그동안 말 한마디 잘 안하던 아들이 텃밭 가꾸기를 시작한 뒤로 말을 잘 건다”며 기뻐했습니다.

 

◇ “올해에는 비닐하우스를 짓고 싶어요”

채민정 센터장과 사회복지사 선생님들에겐 한 가지 소망이 있습니다. 올해 안에 센터 근처나 센터 안에 비닐하우스를 세우는 일입니다.

“텃밭은 센터에서 조금 떨어진 양화나루 근처에 있어요. 꿈더하기 친구들 가운데는 몸이 불편한 이들도 있는데, 텃밭으로 가는 길에 휠체어 전용 길이 없고 흙바닥이라 이동하기 힘들죠.”

텃밭에 줄 물을 떠오는 꿈더하기 친구들. 친구들은 직접 물과 비료를 주고 지지대를 세우며 텃밭 작물들을 관리하고 있다. ⓒ꿈더하기지원센터
텃밭에 줄 물을 떠오는 꿈더하기 친구들. 친구들은 직접 물과 비료를 주고 지지대를 세우며 텃밭 작물들을 관리하고 있다. ⓒ꿈더하기지원센터

그래서 채 센터장은 몸이 불편한 친구들도 텃밭 가꾸기를 할 수 있도록 센터 근처 혹은 내부에 비닐하우스를 짓고 싶다고 합니다. 또 비닐하우스를 지으면 계절과 상관없이 일년 내내 작물을 기를 수 있어 더 많은 꿈더하기 친구들이 텃밭 가꾸기를 체험할 수 있지요.

지난해 겨울, 지역 주민 자원봉사자와 함께 김장을 하고 있는 꿈더하기 친구. ⓒ꿈더하기지원센터
지난해 겨울, 지역 주민 자원봉사자와 함께 김장을 하고 있는 꿈더하기 친구. ⓒ꿈더하기지원센터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 같던 발달장애인 친구들, 하나 둘 씩 경험이 쌓여가면서 스스로 할 수 있는 것들이 생겨나고 있습니다. 작은 새싹을 땅에 심어도 보고, 물도 주고, 비가 오면 같이 걱정도 해보면서 지난 한 해를 보냈습니다. 얼마 전엔 친구들이 밭을 갈고 씨감자를 심었습니다. 올해엔 옥수수도 길러 볼 것이라 하네요. 주변의 도움이 여전히 필요하지만 자라는 새싹만큼 한뼘씩 자라고 있지요.

꿈더하기 친구들의 텃밭 가꾸기 프로젝트는 올해도 계속됩니다. 농작물들을 손수 기르며 사회로 한 발 한 발 나아가고 있는 친구들의 행진을 응원해 주세요.

 

꿈더하기지원센터의 해피로그 링크

http://happylog.naver.com/dreamplus.do

관련 기사

Copyrights ⓒ 더나은미래 & futurechosun.com

전체 댓글

제262호 창간 14주년 특집

지속가능한 공익 생태계와 함께 걸어온 14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