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1월 21일(목)

[기부 그 후] 꼬부랑 할머니의 생애 첫번째 졸업식을 응원해주세요  

“내 자식들 배 안 곯게 하려고 별별일을 다 해봤제. 넘들 다 가는 핵꾜도 한번 못 다녀보고…”

우리 어르신들의 인생사는 한 편의 영화같습니다. 일제 시대, 한국 전쟁, 보릿 고개 등 근현대사를 온 몸으로 살아낸 어르신들의 고단한 삶 자체가 역사지요. 어르신들은 고생만 하고 살았어도, “그래도 살아 있으니까 이렇게 좋은 세상도 보는 것 아니겠냐”고 합니다. 하지만 한평생 열심히 일해온 어르신들에게도 풀지 못한 한이 남아 있다고 합니다. 바로 ‘못 배운 한’, ‘학교 문턱도 못 넘어 본 한’이지요.

여민동락 노인복지센터의 졸업식 현장. ⓒ여민동락 노인복지센터
여민동락 노인복지센터의 졸업식 현장. ⓒ여민동락 노인복지센터

그래서 지난해 12월 30일 전남 전남 영광군 묘량면 여민동락 공동체 노인복지센터(이하 여민동락 노인복지센터)에서는 어르신들을 위한 ‘특별한 이벤트’를 준비했습니다. 어르신들에게 빛나는 졸업장과 꽃다발을 안겨 드리는 일을 말입니다. 이날 학사모와 졸업가운을 처음 입어 본 어르신들은 한껏 상기된 표정으로 졸업의 기쁨을 만끽했습니다.

 

◇ “그대의 삶이 곧 교훈, 그동안 수고하셨습니다”

지난해 여민동락 노인복지센터는 노인성질환 등으로 인해 일상생활이 어려운 어르신들을 모아 케어하는 주간보호 프로그램을 운영했습니다. 어르신들은 센터에서 한글 쓰기 등 교육도 받고 그림 그리기와 같은 취미 활동 시간도 가집니다. 일종의 ‘노인 학교’이지요.

센터에 오시는 어르신들 대부분이 평생 학교 문턱을 넘어본 적이 없다고 합니다. 그래서 여민동락 노인복지센터는 1년 동안의 활동을 마무리하고 어르신들에게 평생 기억에 남는 추억을 만들어 드리기 위해 졸업식을 열기로 했습니다.

 “비록 정식 졸업장은 아니지만 학사모를 쓰고 졸업장을 받는 그 자체만으로 어르신들이 기뻐하실 거라고 생각했습니다.”(이민희 여민동락 노인복지센터 사회복지사·43)

 

◇ “선상님, 여그도 학교지라… 우리가 학상이고…..”

정영례(90) 어르신은 일제 강점기에 태어나 전쟁을 두 번이나 겪었습니다. 전쟁 후에는 가난의 폭풍이 밀려와 하루하루 먹고 살기가 바빠고 그 때문에 진학은 뒷전으로 밀려났지요.

“그 시절에 여자들이 어떻게 핵교를 간디, 꿈도 못꿨재. 다들 얼른 시집 가서 애 낳으라 하더구만”

그렇게 정 어르신도 그 시절의 여성들처럼 학교 진학을 포기하고 한 남자의 아내가 되었습니다. 결혼을 해 아이를 낳고 기르다 지난 세월이 70여 년. 흐른 세월만큼 배우지 못한 한도 커졌습니다.

졸업장과 꽃다발을 받으며 수줍게 미소 짓는 어르신들. ⓒ여민동락 노인복지센터
졸업장과 꽃다발을 받으며 수줍게 미소 짓는 어르신들. ⓒ여민동락 노인복지센터

졸업식에 참석한 정복순(81) 어르신의 삶도 평탄치 않았습니다. 정복순 어르신도 전쟁과 가난 그리고 사회적 편견 때문에 학교를 가지 못했습니다. 정 어르신은 “남자 형제들은 다 가는 초등학교를 나는 보내주지 않아 얼마나 서러웠는지 모른다”며 “남자형제들이 학교를 가면 나는 밭에 가 일을 하거나 집안일을 했다”고 아픈 사연을 털어놓았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지난해 12월 30일 두 어르신은 평생 풀지 못할 뻔한 한을 풀었습니다. 바로 여민동락 노인복지센터 주간보호 수료식을 통해서입니다. 이날 졸업장을 손에 든 정영례, 정복순 어르신은 “우리도 센터에서 수업을 받으니 학생이지 않냐”면서 “손주 손녀들에게 졸업장을 자랑해야겠다”고 환하게 미소 지었습니다.

 

◇ 뚜벅뚜벅 건강상, 사랑스런 미소상…각기 다른 상장 이름

 

수료식이 있던 그날 아침, 유독 많은 어르신들이 정해진 시간보다 이르게 복지회관으로 도착했습니다. 회관은 어르신들은 물론 졸업을 축하하기 위해 모인 가족 분들과 자원봉사 선생님들, 마을 주민들로 꽉 찼습니다.

여민동락 노인복지센터의 자원봉사 선생님들과 어르신들이 졸업의 기쁨을 만끽하고 있다. ⓒ여민동락 노인복지센터
여민동락 노인복지센터의 자원봉사 선생님들과 어르신들이 졸업의 기쁨을 만끽하고 있다. ⓒ여민동락 노인복지센터

이날 30여 명의 참석자들이 모인 가운데 졸업장 수여식이 진행됐습니다. 일렬로 줄을 선 어르신들은 자신들의 이름이 불리자 단상 앞으로 나가 졸업장과 꽃다발을 받았습니다.

“아니 내가 졸업장을 다 받아 봐 야. 인생 오래 살고 볼 일이여”, “이것이 학사모여? 우리 아들 대학 졸업할 때 보고 처음이네잉”

어르신들은 일평생 처음 본 졸업장과 학사모가 신기한지 연신 만지고 쳐다보셨습니다. 어떤 할머니께서는 감동의 눈물을 흘리기도 하셨지요. 누군가에겐 졸업식이 누구나 다 한번쯤은 겪는 통과의례이지만 어르신들에겐 잊을 수 없는 소중한 추억이자 특별한 경험이었던 것입니다.

지난해 1월 여민동락 노인복지센터는 어르신들의 졸업식 비용을 마련하는 네이버 해피빈 모금함을 개설했습니다. 535명의 도움으로 약 115만 원이 모였습니다. 이 돈으로 30여 명의 참석자에게 식사를 대접하고 15명의 어르신들께 졸업장과 졸업앨범을 제작해 드렸습니다. 졸업장에는 뚜벅뚜벅 건강상, 고운마음 나눔상, 사랑스런 미소상, 더불어 공감상, 척척박사 똑똑상, 흥겨운 웃음상 등 특별한 상 이름이 붙었습니다. 등수를 가리는 졸업식이 아니라 한 해 동안 건강하고 무탈하게 잘 사신 데 대한 감사의 의미로 한 분 한 분께 각기 다른 상을 드린 것이라고 하네요.

여민동락 노인복지센터는 앞으로도 매년 주간보호 프로그램을 진행할 거라고 합니다 연말에 졸업식도 열 계획이래요. 더 많은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못다 이룬 꿈을 이루어지기를, 평생 잊지 못할 행복한 추억을 남기기를 진심으로 희망합니다.

 

▼여민동락 노인복지센터 해피로그 링크

 

여민동락 공동체는?
여민동락 공동체는 전라남도 영광군 모량면에 위치한 농촌지역 복지시설입니다. 지난 2007년 귀촌인들이 설립한 여민동락은 농업, 농촌, 농민과 함께 생명, 평화, 자치의 원칙으로 땅, 사람, 마을을 살리는 ‘지역일체형 공동체’를 지향해왔습니다. 또한 어르신의 건강한 노후와 생활 자립을 돕는 행복일자리 사업, 지역주민들이 참여하는 협동조합 설립으로 경제와 복지가 만나는 농촌의 부흥을 위해 노력해왔습니다. 특히 지역주민들과 함께 2009년 폐교 위기에 놓인 묘량중앙초등학교 살리기 운동을 펼쳐 주목받은 바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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