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1월 22일(금)

[정유진 기자의 CSR 인사이트] 사회공헌 2.0 시대, 자발성과 협력이 키워드

3조2534억→2조7148억…기업 사회공헌 규모 점점 감소
임직원 참여율도 하락세

“파트너십이 성패 가를 것”

“한국의 비영리재단과 파트너십을 맺는다고 하면 경고가 뜹니다. 비영리단체의 연혁, 특징, 이사장 등 세부 정보를 보고하지 않으면 승인이 나지 않습니다.”

최근 외국계 기업 사회공헌 담당자들의 고충이 크다. 미르재단, K스포츠재단 뉴스를 접한 다국적기업 본사에서 한국 비영리단체에 대한 불신을 보이고 있는 것. 본사의 승인을 받아 한국에서 사회공헌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담당자로서는 엎친 데 덮친 격이다. 본사 보고용 서류 작업하랴, 파트너 단체에 사정 설명하랴 업무가 배 이상 증가한 상황. 국내 소비자를 위한 다양한 사회공헌을 진행하고 싶지만 사업 기획도, 예산 집행도 순탄치 않다. 비단 외국계 기업뿐만 아니다. 대기업의 기부금 집행 내역을 요구하는 국회의원실, 언론의 압박이 커지면서 사회공헌 전반에 대한 불신이 높아졌다. 조직 내에서 ‘기업의 나눔, 사회공헌이 꼭 필요하냐’는 질문이 나오고 있는 것. 그래서일까. 최근 만난 기업 관계자들은 이렇게 입을 모은다. “한국에서 사회공헌하기 왜 이렇게 힘든가요?”

픽사베이 제공_변화_사진

◇사회공헌 2.0 시대가 왔다… 파트너십으로 임팩트 높여라

3조원에 달했던 기업 사회공헌 규모가 줄고 있다. 2012년 3조2534억원을 돌파했던 기업 사회공헌 지출액은 이듬해 2조 8114억원, 2014년 2조7148억원으로 급격한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전경련 사회공헌백서). 저성장 국면에 접어들면서, 사회공헌 예산도 직격탄을 맞은 것. 실제로 S기업은 CEO가 바뀌면서 성과 위주 조직 개편과 업무 분장을 단행했다. 사회공헌 관련 부서도 예외는 아니었다. ‘예산 없이도 성과를 낼 수 있는 사회공헌 사업을 가져오라’는 지시가 떨어졌다. 이에 담당자들이 대학·공기관·지자체 등 인프라가 있는 곳들을 찾아다니지만 신통치 않다. ‘기업이 돈 없이 사회공헌을 할 수 있느냐’는 반응이 대부분이기 때문. 비단 S기업뿐만 아니다. 최근 제안서를 들고 타기업을 찾아다니는 사회공헌 담당자들이 부쩍 늘었다. ICT·청년 등 사회공헌 테마가 비슷한 곳을 찾아 자원과 역량을 합치려는 것. K기업의 사회공헌 10년 차 담당자는 “5년 전만 해도 각사의 사회공헌 차별점을 부각시키고 홍보하는 게 중요하다 보니 타 기업과 손을 잡는 게 거의 불가능한 분위기였다”면서 “공동의 목표를 설정해 자원을 모으면 시너지는 배 이상이 된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영국에는 기업들이 사회적책임을 강화하고 함께 사회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설립한 비영리기관 ‘BITC(Business in the community)’가 있다. 1981년 영국의 찰스 왕세자가 기업의 사회공헌 협력 모델을 위해 만든 기관이다. 현재 약 1000개 기업이 회원사로 참여해 지역별 사회 현안을 도출하고, 기업별 역량과 자원을 모아 실제 사회문제를 해결해나간다. 수혜자들의 영향평가를 거쳐 파트너십 우수 기관을 선정하고, 왕실의 기금도 지원한다. 전문가들은 “사회문제를 해결하려면 한 기업의 힘만으로는 부족하다”며 “사회공헌이야말로 협력이 필요한 분야이고, 협력할수록 파트너십도 견고해진다”고 강조한다.

◇강제성 봉사, 사회공헌은 그만… 자발성·진정성 높여라

사회공헌만큼 근심이 깊은 영역이 있으니, 바로 임직원 자원봉사다. 지난 10년간 기업 사회공헌 활동 중 자원봉사가 차지하는 비율이 2006년 64.4%에서 2014년 79.5%로 꾸준히 증가했다. 그러나 임직원 자원봉사 참여율은 2009년 49.3%에서 2014년 42.4%로 하락하고 있다. 강제성 자원봉사가 지속되면서 나타난 현상이다. K 공기업 관계자는 “주말 자원봉사를 하러 나온 직원들의 표정이 좋지 않아 민망할 때가 많고, 수혜기관에도 직원들에게도 미안하다”면서 “강제 동원 없이 자발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자원봉사 프로그램을 고민 중”이라고 귀띔했다. 실제로 대다수 기업 홈페이지에는 임직원 자원봉사 참여율과 기부금 내역이 그래프로 공개돼 있다. 참여율이 100%에 가까운 기업이 대부분이지만, 실적 채우기용이란 지적이 많다. 임직원 수천명의 자원봉사처를 발굴하고 관리하기 위한 인력과 비용도 만만치 않다. S기업 사회공헌팀장은 “담당자 1명이 직원 수백명의 니즈를 파악하고 불만사항을 접수하면서, 프로그램을 기획·관리하려니 애로점이 많다”면서 “최근 자원봉사 예산도 줄어 수혜기관의 자원까지 끌어와야 하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이에 회사가 주도하지 않고 직원들이 자발적으로 나눔·봉사하는 문화를 만들어가려는 노력이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조선일보 더나은미래가 산업군별 상위 10대 기업 110곳의 자원봉사 프로그램 DB를 분석한 결과, 산업군별 1위 기업 9곳(삼성전자·현대차·포스코·KT·SK이노베이션·현대건설·CJ제일제당·롯데쇼핑·현대중공업) 중 5곳(55.6%)이 직원들로 구성된 봉사단 및 동아리가 직접 프로그램을 기획한 후 자발적으로 진행한다고 밝혔다. 구글코리아 역시 직원들이 도움이 필요한 기관을 찾아 인트라넷에 공지를 올리면, ‘봉사나 기부에 동참하고 싶다’는 직원들로 경쟁이 치열하다. 자원봉사와 더불어 강제 모금도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최근 A기업 사회공헌 담당자는 임직원들의 기부 중단 요청에 골머리를 앓았다. ‘임원 눈치보느라’ ‘팀별 할당 금액이 있어서’ 월급의 일부를 기부했던 직원들이 하나 둘 불만을 제기하고 있는 것. ‘돈을 제대로 쓰고 있는지 궁금하다’는 문의도 대폭 늘었다. 실제로 지난 10년간 ‘임직원 끝전 기부’, ‘1% 나눔’이 유행을 타면서 대기업의 기부금이 대폭 증가했다. 임직원 월급의 1%를 모아 재단을 설립한 곳도 상당수다. A기업 사회공헌 담당자는 “임직원 기부금을 회사의 나눔·사회공헌 성과로 홍보하는 것에 대해 불편해하는 시각도 많다”며 “앞으로는 임직원들이 기부하고 싶은 곳, 해결하고 싶은 사회문제, 봉사하고 싶은 테마들을 공유하고 참여를 유도하는 방식으로 패러다임 전환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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