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1월 25일(월)

학교 밖 청소년을 체인지메이커로…사회적기업 ‘유스바람개비’

김정삼 유스바람개비 대표 인터뷰

 

이렇게 자꾸 엇나갈 거면 집에서 나가!
아빠가 나한테 해준 게 뭐가 있어요!

 

 

슬기(가명)는 아버지와 매일 부딪혔다. 아버지는 학교에 나가지 않는 슬기를 나무랐고, 슬기는 화만 내는 아버지가 싫었다. 어머니는 슬기가 어렸을 적 집을 나가 소식이 끊겼다. 슬기는 집도 학교도 싫었다. 집에 있는 아빠도 학교 선생님도 자신을 꾸짖을 뿐 위로해주지 않았다. 그래서 슬기는 학교를 나와 거리를 돌아다녔다. 어느 날이었다. 성남 신흥역 근처를 배회하던 슬기는 시끌벅적한 포장마차에 눈길이 갔다. 사회적기업 유스바람개비가 운영하는 간이식당이었다. 그곳에서 먹은 저녁 한 끼로 슬기의 인생은 180도 달라졌다. 18살 나이로 가출했던 ‘학교 밖 청소년’은 어느덧 사회복지학과를 지망하는 21살 아가씨로 성장했다. 고등학교 검정고시에서 국어 과목 만점을 받을 정도로 우수 합격자로 변신한 슬기는 명문대 진학을 꿈꾼다. 좋은 상담사가 되어 과거의 자신처럼 상처가 많은 청소년들을 위로하고 싶단다.  

청소년 진로 교육 사회적 기업 유스바람개비는 슬기와 같은 학교밖 청소년을 보듬는다. 2014년부터 이듬해까지 유스바람개비를 거쳐간 청소년들은 총 1805명. 2015년에만 16명의 학교밖 청소년이 유스바람개비의 도움을 받아 검정고시에 합격하거나 학교에 진학했다. 상처를 받고도 위로 받지 못한 아이들을 보듬는 곳. 지난 2일, 서울 강남의 한 카페에서 유스바람개비를 창립한 김정삼 대표를 만났다. 

 

김정삼 유스바람개비 대표./ⓒ유스바람개비
김정삼 유스바람개비 대표. ⓒ유스바람개비

◇학교 밖 청소년 7만명을 위한 기업, 유스바람개비  

“매년 6~7만명이 학교를 그만두고 있습니다. 전국 청소년의 1.5%에 달합니다. 학교 밖 청소년을 위한 대안을 찾고 싶었습니다.”

김정삼 유스바람개비 대표가 사회적기업을 창업하게 된 계기를 풀어냈다. 20년간 청소년평화권네트워크, 성남시청소년재단 등 비영리단체에서 아이들을 지도하고 진로교육 프로그램을 만들어온 그다. 청소년 지도사로 일하면서 꿈을 찾지 못하고 방황하던 학생들을 수없이 만났다. 이들이 다양한 직업을 경험하고 적성을 찾을 수 있도록 돕고 싶었다.

“우리나라 청소년들은 대부분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하고 싶은지도 모른 채 대학에 진학해요. 그리곤 성인이 되어서도 자신의 진로를 고민하죠. 제대로 된 청소년 직업 및 진로 교육이 필요한 이유입니다. 핀란드의 경우 자신이 직접 관심있는 분야에서 인턴십을 할 수 있는 비율이 약 90%인데, 우리나라는 겨우 5%에 불과해요.”

창업의 시작은 2010년으로 거슬러올라간다. 당시 청소년들의 직업 체험 및 진로에 대한 아이디어를 고민해온 김 대표는 ‘소셜체인 청소년 창의스쿨&카페’(이하 창의스쿨)라는 아이디어로 ‘전국소셜벤처대회’에 응모, 당당히 우수상을 거머쥐었다. 창의스쿨은 먹을거리와 서비스, 문화 기획, 진로체험을 제공하는 청소년 쉼터이자 배움터이다. 이후 1년간 보완 작업을 거쳐 2011년 12월 사회적기업 ‘유스바람개비’를 출범했다.

유스바람개비는 청소년뿐아니라 예비교사들의 배움터다. 현재 이곳에는 교사 자격증을 보유한 교사 5명이 근무한다. 김 대표는 “매년 많은 예비 교사들이 쏟아져 나오지만 그들을 받아줄 학교가 많지 않은 게 현실”이라며 “이들을 채용해 정식학교에서 일하기 전 아이들을 가르치고 상담하면서 경험을 쌓도록 한다”고 말했다. “처음엔 경험을 쌓기위해 이곳에 왔다가, 청소년 진로교육에 매력을 느껴 유스바람개비 일원이 된 교사도 있다”는 말도 덧붙였다. 

유스바람개비는 혁신적인 사회적기업과 함께 다양한 중·고생 진로 체험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청소년들은 ‘공부의 신’ 등 사회에 혁신의 바람을 불러온 사회적기업의 CEO들을 만나 강연을 듣거나 사회적기업의 일일 직원이 된다. 대안학교 ‘바람개비스쿨’, 청소년자립카페 ‘소리울’ 등을 운영하며 학교밖 청소년들의 자립도 돕는다. 2012년 문을 연 바람개비 스쿨은 17세 전후의 학교밖 청소년들이 주축이 되어 운영된다. 길잡이 교사 3명과 자원 봉사 교사 10명이 수업에 참여, 인성·체험활동을 진행한다. 명상수업, 글쓰기, 인문학, 외국어, 토론 등이 기본교과다. 선택과목으로는 합기도, 풍물, 목공, 요리, 연극, 수화 등이 있고, 진로특강·리더십·여행·봉사·프로젝트 수업 등이 시기별로 진행된다. 소리울에선 바리스타 직업 체험을 할 수 있다. 청소년이 원할 경우 3개월간 인턴십도 가능하다. 이렇게 청소년들은 직업체험 교실, 창업동아리 지원 등 다양한 활동을 통해 자신의 적성을 찾아간다. 

“대다수의 학교밖 청소년들이 경제적 형편때문에 오토바이 배달원, 편의점 야간 판매원 등 위험한 아르바이트를 합니다. 소리울을 만든 이유이죠. 카페 바리스타라는 안전하고 안정된 일자리를 제공해 학업과 진로탐색에 집중할 수 있도록 돕고 싶었거든요.”  

◇이동형 식당 ‘ㅋㅋ밥차’를 들어보셨나요

매주 화요일 저녁 7시반. 성남 신흥역 근처의 포장마차 ‘ㅋㅋ밥차’는 이곳을 찾은 청소년들로 발디딜 틈이 없다. ‘ㅋㅋ밥차’는 학교 밖 청소년들을 위해 유스바람개비가 2014년 시작한 아주 특별한 프로젝트다. 김 대표는 “학교 밖 청소년들이 도움의 손길을 거부하고 자신들의 처한 문제를 쉽게 내보이지 않는 게 문제였다”면서 “청소년들에게 친근한 은어 ‘ㅋㅋ’를 붙인 이동형 식당 아이디어를 실현해봤다”고 말했다. 거리 청소년들에게 밥과 차를 무료로 주는 ‘ㅋㅋ 밥차’는, 청소년들이 많이 모이는 성남 신흥역 근처에서 매주 화요일 저녁 7시부터 밤 9시 30분까지 운영된다. 저녁을 제공하는 것은 물론, 성격·진로·의사소통·행동 유형 등을 검사해 상담도 진행한다. 

유스바람개비의 이동형 식당인 'ㅋㅋ 밥차'에서 청소년들이 저녁을 먹고 있다.ⓒ유스바람개비
유스바람개비의 이동형 식당인 ‘ㅋㅋ 밥차’에서 청소년들이 저녁을 먹고 있다. ⓒ유스바람개비

ㅋㅋ 밥차는 유스바람개비와 태평제일 교회, 사회적기업 오마이컴퍼니 등이 협력해 운영되고 있다. 각 단체 직원들과 유스바람개비 교사들 그리고 자원봉사자들이 일일 상담사가 되어 청소년들에게 저녁을 대접하고 고민거리를 들어준다.

“밥차에서 하루에 40~50명의 청소년들을 만나게 됩니다. 불우한 가정 환경에 대한 이야기, 가수가 되고 싶은데 부모님이 반대하는 남자아이, 또래 관계로 고민하는 소녀 등 사연도 다양합니다. 많은 숫자가 아니더라도 한 명의 학교 밖 청소년을 위기에서 구할 수 있다면 우리는 만족합니다.”

유스바람개비는 밥차를 찾은 청소년들을 ‘교육’하기 보다는 ‘친밀’해지는데 방점을 둔다. 대화를 통해 아이들에게 바른 길을 알려주는 대신 계도하지 않는 게 유스바람개비의 원칙이기 때문. 이들은 음식, 연예인 등 일상적인 이야기로 아이들과의 거리를 좁힌다. 유스바람개비의 대안학교인 ‘바람개비스쿨’에 들어올 것을 제안하는 건 그 다음 일이다. 

청소년들이 ㅋㅋ밥차에서 밥을 먹은 뒤 상담사에게 진로 고민을 하고 있다.ⓒ유스바람개비
청소년들이 ‘ㅋㅋ 밥차’에서 밥을 먹은 뒤 상담사에게 진로 고민을 하고 있다. 상담이 이뤄지는 장소는 유스바람개비가 운영하는 청소년 자립카페 ‘소리울’. ⓒ유스바람개비

김 대표는 유스바람개비를 거쳐간 청소년들이 사회를 바꾸는 ‘체인지메이커’가 되길 바란다. 이에 유스바람개비는 직접 체험 교육의 일환으로 2014년부터 ‘앙트프러너십(Entrepreneurship)’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앙트프러너십은 ‘기업가 정신’을 뜻하는데, 유스바람개비는 이 의미를 살려 ‘ONE DAY 진로탐방’ 프로그램을 진행 중이다. 지역 내 사회적기업과 연계해 청소년들이 직접 일일 직업체험을 하는 방식으로 기업가 정신을 배우게 한다. 청소년소셜벤처아카데미, 청소년소셜아이디어공모전 등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청소년들이 경험을 쌓도록 돕고 있다. 2015년에는 23개학교에서 학생 4500명이, 지난해에는 30개학교 3000명이 유스바람개비의 사회적기업 진로탐방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바람개비스쿨에서 사회적기업가 정신을 배우고 있는 아이들. 수강생들은 보드게임을 하며 일일 사회적기업을 세워보는 경험을 한다./ⓒ유스바람개비
바람개비스쿨에서 사회적기업가 정신을 배우고 있는 아이들. 수강생들은 보드게임을 하며 일일 사회적기업을 세워보는 경험을 한다. ⓒ유스바람개비

김 대표는 올해 할 일이 많다. 기존의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면서 학교 밖 청소년들을 도울 ‘사회성과연계채권(SIB)’을 이용한 사업을 구상 중이기 때문. SIB는 사회 문제 등의 해결 성과에 따라 수익이 결정되는 채권이다. 민간이 공공사업에 투자, 성과를 내면 정부가 사업비에 이자를 더해 지급하는 ‘소셜 투자’의 한 형태다. 김정삼 대표는 “올해 학교밖 청소년 100명중 40명 이상이 검정고시 합격과 취업에 성공하면 투자자에 인센티브를 주는 SIB를 성남시에 제안해 진행해볼 생각”이라는 계획을 밝혔다. 

“우리는 청소년들을 사회에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어른으로 키우고 싶어요. 사회를 위해 무언가를 하겠다는 ‘소셜 드림’을 꿈꾸는 사람으로요. 그러기 위해서 사회적기업가 정신을 배우는 진로 교육 프로그램을 더 개발하는 등 지금보다 더 바삐 움직일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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