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30일(화)

“식당 아르바이트 할 땐 몰랐어요”…돌봄이 있는 일터 ‘영셰프 밥집’

요리로 꿈을 찾고 일자리도 찾는다

아주 특별한 일터, ‘영셰프밥집’

 

“식당 주방에서 일할 때는 손님과 대면할 일이 없어서 먹는 사람을 볼 일도 없었어요. 음식을 만들기 바빴던 거죠. 여기선 내가 만든 음식을 먹는 손님들의 표정과 느낌이 다 보여요. 책임감과 뿌듯함을 동시에 배웠죠.”

요리 이야기가 나오자 얼굴에 미소가 가득한 영셰프 7기 김민교씨 ©박창현 작가
요리 이야기가 나오자 얼굴에 미소가 가득한 영셰프 7기 김민교씨 ©박창현 작가

김민교(21)씨의 얼굴엔 자신감이 배어있었다. 특히 ‘요리’ 이야기를 할 때 그러했다. 고등학교 졸업 후 경상도의 한 식당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던 그는 셰프의 꿈을 안고 서울로 상경했다. 요리를 좋아하지만 정식으로 배워본 적이 없었다. 그런 김씨에게 이곳 ‘영셰프밥집’은 꿈 같은 장소다. 요리, 환경, 목공, 텃밭 농사, 경영학, 음악 등 다양한 교육은 물론 매일 아침 직접 요리를 대접하는 실습도 진행된다. 또래 친구들과 함께 요리하며 협업을 배우고, 자립하는 법을 익힌다. 그는 “좋은 식재료로 요리해, 사람들이 믿고 맛있게 먹을 수 있는 식당을 만들고 싶다”며 눈을 빛낸다.

◇청소년이 마음껏 꿈꾸고 자립하는 ‘영셰프스쿨’

 

한영미 슬로비 대표는 "다음 세대를 이끌어갈 청소년들을 위한 꿈의 일터를 만들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박창현 작가
한영미 슬로비 대표는 “다음 세대를 이끌어갈 청소년들을 위한 꿈의 일터를 만들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박창현 작가

서울 영등포구 하자센터(서울시립청소년직업체험센터)에 위치한 ‘영셰프스쿨’. 요리로 자립하고자하는 17~22세 청소년을 대상으로 운영되는 요리 대안학교다. 이곳엔 김씨와 같은 청소년들이 꿈을 키워가고 있다. 영셰프스쿨이 본격적으로 문을 연 건 2010년. ‘청소년과 하고 싶은 일 하면서 먹고 살자’는 비전을 품고 있던 한영미(47) 슬로비 대표의 시도였다.

“다음 세대를 이끌어갈 청소년들에게 지속가능한 현장을 보여주고, 어른들이 이들의 자립을 끌어주는 모델을 만들고 싶었어요. 일터인 ‘밥집’에서 외로움을 이기고 더불어 함께 살아가는 즐거움을 느낄 수 있도록 돕고 싶었습니다.”

영셰프스쿨은 한 대표의 축적된 노하우에서 비롯된 프로젝트다. 청소년들과 함께 카페를 운영하고, 창업 프로젝트도 시도해봤지만 지속가능한 모델로 발전시키기 어려웠다. 그래서 생각한 모델이 ‘사회적기업’이다. 일터가 곧 배움의 장(場)이 되고, 취업을 통해 안정적인 자립을 돕는 기업. 청소년과 함께 일하고 배우며 동반성장하는 비즈니스 모델. 영셰프스쿨은 이렇게 시작됐다.

매년 요리에 꿈을 가진 10명 내외 청소년을 선발해 2년 전일제 과정으로 수업을 진행한다. 커리큘럼도 탄탄하다. 1년차에는 하자센터에서 직접 영셰프밥집을 운영한다. 요리를 업으로 하는 이들에게 매일 일정한 시간, 같은 일을 반복하는 훈련은 필수이기 때문. 등교하면 자연스레 ‘오늘의 음식’을 요리하고, 서로의 음식에 피드백을 한다. 오후엔 전문 셰프에게 요리 스킬을 배우고 현장체험, 특강 등 다양한 교육을 받는다. 2년차엔 인턴십 과정이 진행된다. 상반기 960시간은 전문 셰프들의 식당 등 본인이 희망하는 현장에서 일을 배운다. 하반기에는 학교에 돌아와 졸업 프로젝트를 준비한다. 비인가 학교라 당장 학력 인증은 안되지만, 현장에서 배움을 넓혀갈 수 있는 대안학교 모델이다. 

시즌 학교도 인기다. 영셰프스쿨 학생들은 여름이 되면 제주도로 가서 1주일간 로컬 식재료로 요리하고, 그 지역 아동들에게 요리를 가르치는 시간을 가진다. 전통시장에서 음식을 만들고 판매도 한다. 고객의 피드백을 직접 들어보는 실전 학습 현장이다.

 

◇ 요리로 사람됨을 배우고, 돌봄이 살아있는 일터

 

영셰프스쿨의 모든 커리큘럼 속엔 사회적 가치와 지속가능성 키워드가 녹아들어 있다. 요리로 사람됨을 배우는 ‘요리 인문학’을 배우고, 경영학 수업 때는 단순히 돈을 많이 버는 스킬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의미가 있는 일터를 만드는 법을 배운다. 환경 수업에선 우리 사회가 처한 환경에 대해 배우고 농사를 짓는 체험도 한다. 영셰프스쿨이 운영하는 상암동 텃밭에서 1년간 농사를 짓고 그 수확물로 요리를 한다. 밴드, 음악, 명상, 연극 등 요리사로서 창의성과 감성을 끌어내는 ‘요리감성학’ 수업도 마련돼있다.

영셰프스쿨 7기 단체사진 ©박창현 작가
영셰프스쿨 7기 단체사진 ©박창현 작가

영셰프스쿨의 장기적인 교육 목표는 돌봄이 살아있는 일터, 돌봄을 지향하는 일터다. 사람뿐만 아니라 현장의 부엌 시스템도 돌봄의 대상이다. 무작위로 사용되는 전기나 연료를 재생에너지를 통해 자립할 수 있는 방법을 배운다. 동력을 이용해 페달을 만들고, 태양광 패널도 만들어보는 등 연료 기술을 활용한 조리도구 제작 실습도 눈에 띈다. 대한에너지기술연구소와 연계해 전문성을 더했다. 한 대표는 “향후 영셰프들이 성장해 자신만의 식당을 운영할 때, 이렇게 배운 작동 원리와 기술들이 도움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청소년들의 특성을 파악한 맞춤형 커리큘럼 덕분일까. 이곳을 거쳐간 많은 이들의 삶이 변화되고있다. 한부모 및 저소득 가정 등 불안정한 환경에 놓였던 청소년들이 요리 현장에서 일을 하며 자립을 시작한 것. 한 대표가 2011년 설립한 친환경 밥집 ‘슬로비’ 또한 이들의 성장의 버팀목이 돼줬다. 서울 성북·수원·제주도에서 운영되는 슬로비의 수익은 영셰프스쿨을 서포트하는데 쓰이고, 영셰프스쿨을 통해 배출되는 인재들은 슬로비에 고용되는 선순환 구조로 운영된다.

영셰프 밥집에서 실습 중인 영셰프들 ©박창현 작가
영셰프 밥집에서 실습 중인 영셰프들 ©박창현 작가

사회적기업 모델을 통해 외식업을 꿈꾸는 청소년들에게 조언을 부탁하자, 한 대표는 “신중하게 생각하라”며 웃었다. “이왕 시작하기로 결심했다면 실패를 두려워하지 마세요. 만약 실패하더라도 배움은 자산이 됩니다. 먹고 사는 일, 스스로 돌보는 행위를 스스로 할 수 있어야 타인을 돌볼 수 있습니다.”

김지은 더나은미래 청년기자(청세담 6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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