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러티 내비게이터(Charity Navigator)는 2001년 설립된 미국의 대표적인 비영리 평가기관이다. 미국 내 8000여곳의 비영리단체를 평가한다. 채러티 내비게이터를 설립한 주인공은 팻·메리언 두건(Pet Dugan & Marion Dugan) 부부. 사업가로는 성공했지만 유전성 질병을 앓던 열세 살 아들을 떠나 보내야 했던 부부는 상당한 돈을 아동 비영리단체에 기부했다. 그러나 그 비영리단체가 ‘사기’였다는 게 드러났고, 이를 계기로 부부는 기부자에게 비영리단체들의 정보를 알려주는 중간 평가기관을 만들기로 한다. ‘채러티 내비게이터’의 시작이었다. 올해로 15년이 된 조직에서는 어떤 고민을 하고 있을까. 이곳에서 바라보는 현 기부 생태계는 어떨까. 지난 6일, NPO 공동회의 초청으로 방한한 린지 스트럭(Lindsey Struck·사진) 채러티 내비게이터 비즈니스 개발 및 파트너십 팀장을 만나 ‘미국 비영리 평가기관이 직면한 고민과 흐름’을 물었다.
◇바뀌어 온 평가척도, 이제는 ‘효과성’
-2001년 설립된 이래 15년이 지났다. 평가 방식이나 지표에도 여러 변화가 있었을 것 같은데.
“처음엔 비영리단체의 재무 건전성만을 평가했다. 당시에는 국세청 세무보고양식 자체가 재무 지표만 봤다. 2007년에 국세청 세무보고양식 IRS 990이 대대적으로 개편되면서 ‘투명성’과 ‘책무성’이 강조됐다. 필수적으로 기재해야 하는 부분이 11쪽으로 늘어났고, 인건비·광고선전비에 들어간 지출액을 프로그램, 모금, 행정으로 나눠 기재해야 하는 등 훨씬 더 상세한 정보를 기입하도록 바뀐 것이다. 이 자료에 기반해, 2011년부터는 채러티 내비게이터 평가 항목에 ‘책무성’과 ‘투명성’을 포함시켰다. ‘기부자의 개인정보를 보호하기 위한 정책이 갖춰져 있는지’ 등의 항목도 추가했다. 지난 10여년간 채러티 내비게이터가 가장 크게 기여한 점이 ‘업계 전반의 책무성과 투명성을 끌어올린 것’이라고 생각한다. 처음에는 ‘투명성’,’책무성’ 제도나 장치가 갖춰져 있지 않던 비영리단체에서도 상당히 빠르게 제도를 갖춰가더라.”
-최근 채러티 내비게이터가 직면하고 있는 트렌드는 어떤가.
“기부자들로부터 비영리단체 ‘효과성’ 기준을 추가해달라는 요구가 커지고 있다. 새로운 기부자 세대가 등장한 것으로 보고 있다. 미국만의 현상이 아니라 전 세계적인 추세라고 본다. 이들은 ‘선한 동기’만으로 기부하는 과거 세대와는 다르다. 이들에게 기부란 ‘돈을 투자하고 행동해서 변화를 만들어낸다’는 개념에 더 가깝다. 이런 요구에 부응해 ‘효과성’ 기준을 어떻게 녹여낼 수 있을지 고민 중이다.”
-‘효과성’ 기준을 녹이려는 시도도 있었나.
“지난 2013년에는 채러티 내비게이터 평가지표에 ‘임팩트(효과성)’ 항목을 추가하려는 시도를 해봤지만 잘 안됐다. 당시 ‘채러티 내비게이터’에서는 8000개에 달하는 모든 기관의 임팩트를 자체 평가하는 건 불가능하다고 봤고, 그 대신 기관 내에 단체나 사업의 효과성을 측정하기 위한 계획이나 절차가 마련되어 있는지를 보고자 했다. 3000개 비영리단체에 관련 사항을 질의했고, 돌아온 응답은 참담했다. 엄청나게 많은 자료를 보내왔지만 의미 있는 내용이 없는 곳이 절반, 응답할 내용이 없다는 곳이 절반 정도였다.
설문 응답을 받은 뒤, 우리는 단체들의 실상을 제대로 파악해보기로 했다. 미국 비영리단체 ‘피드백랩스(FeedbackLabs)’와 파트너십을 맺고, 8000여개 기관 전체의 웹사이트를 들여다봤다. 임팩트를 추적하고 측정하는 용어나, 특정 영역의 변화를 나타내는 수치나 용어가 웹사이트에 포함되어 있는지를 본 거다. 겨우 2.5%의 기관만이 임팩트와 관련한 언어를 명시하고 있었다. 기관 평가에 ‘임팩트’를 반영하려고 해도 쓸 만한 지표가 없고 단체들은 너무 준비가 안되어 있었다. 우리 생각과 현실이 상당히 달라 2015년에 임시 중단된 상태다.”
-대부분의 기관이 그간 ‘효과성’은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다는 반증인 듯 한데.
“교육이 필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많은 경우 ‘산출물(output)’과 ‘결과물(outcome)’의 차이를 잘 구분하지 못한다. ‘아이를 살리는 데 얼마를 썼다’, ‘얼마를 지원했다’는 기관에서 투입한 양이다. 투입한 양에 기반해 어떤 ‘결과’가 낳았는지가 효과성의 척도가 된다. 투명성이나 책무성 모두 교육과 저항의 과정을 거치며 높아져 왔다. 다만 효과성은 아직 ‘공통의 이해나 언어’도 부족한 만큼, 더 많은 이들이 참여해 함께 논의를 해나가야 할 것 같다.
◇낮은 간접비, 높은 효과성 의미하진 않아
-채러티 내비게이터에서 평가를 할 때 비영리단체의 저항은 없나.
“평가가 나쁜 기관으로부터 상당한 저항이 있다. 사실 국세청 공시자료를 제공받기까지도 수 년이 걸렸다. 완벽할 수는 없겠지만 지난 15년간 끊임없이 판단 기준과 척도를 개선하려 노력해왔다. 지난 6월에도 대대적인 개편 작업을 거쳤다. 이제는 오히려 우리보고 자신들을 평가해달라는 단체들도 생겼다.”
–‘효율적 이타주의자’의 저자 피터 싱어는 “가이드스타나 채러티 내비게이터 같은 기존의 비영리 평가기관들이 재무 메트릭스에 지나치게 의존하다 보니 ‘비영리 효과성’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준다”고 비판했다. 간접비(overhead cost)가 낮은 단체가 꼭 효과성이 높다고 할 수는 없다는 주장이다. 어떻게 생각하나.
“이 논의에는 늘 극단적인 두 개의 주장이 있다. 한 쪽은 ‘효과성만 높다면 네가 간접비에 얼마를 쓰든 상관없다’는 측이고, 다른 한 쪽에서는 ‘당신의 기부금 100%가 목적사업에 쓰여야 한다’고 말한다. 우리는 그 중간 지점에서, 일정 정도의 기준을 갖되 일리 있는 부분을 수용하기 위해 고민했다.”
지난 6월, 채러티 내비게이터에서는 비영리 단체 평가 방식을 대대적으로 업데이트 했다. 여러 변화 중 하나는 간접비에 여유를 둔 점이다. 예전에는 한 기관이 사업에 대해 10점 만점을 받는 건 불가능했다. 예산의 87%를 프로그램에 사용했다면 8.7점을 받고, 99%를 프로그램에 쓰고 1%의 간접비만 썼다면 9.9점을 받았기 때문이다. 이제는 특정한 기준선만 넘어가면 10점을 받을 수 있게 바꿨다. 극단적인 기관들을 걸러내면서도, 기존에 간접비가 과도하게 강조됐던 것을 완화시킨 것.
◇정보는 널리 공개돼야
지난 6월, 미국 국세청에서는 세무보고양식 IRS 990으로 취합된 비영리단체 정보를 모두에게 공개하기로 했다. 이전에도 누구나 정보를 구할 수는 있었지만, 돈을 주고 CD를 구입해야만 했다. 비영리 데이터를 기반으로 비영리에 대한 정보를 제공해 왔던 ‘채러티 내비게이터’에서는 이를 어떻게 보고 있을까.
“우리 같은 기관에게 안 좋은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예상하는 이들도 많은데, 그렇지 않다. 정보가 공개된 것 자체가 긍정적이라고 본다. 정보가 넘쳐날수록 이를 잘 분석해서 해석해주는 이들이 필요하고, 그게 우리가 지난 15년간 해온 일이다.”
-한국에서는 아직 국세청 양식이 미비해, 단체마다 각기 다른 기준으로 예산을 집어넣는 일도 빈번하다.
“일단 어떤 시점에서든 시작은 해야 하고, 양식을 만들어 시작했다는 데 의의가 있다고 생각한다. 미국의 IRS 990 양식도 처음부터 이렇게 상세하지는 않았다. 1979년에 처음 만들어진 뒤 30년이 지나서야 대대적인 개혁이 이뤄졌다. 한국 국세청 양식에서 한 가지만 이야기하자면 행정비용과 모금비용은 분리되는 게 맞다. 그래야 ‘투명성’을 들여다볼 수 있다. 그리고 많은 비영리단체가 지출한 비용이 ‘행정비인지 사업비인지 애매하다’고 말한다고 해도, 많은 경우에 ‘맞는 답’이 있다. 이 회색지대를 줄여가는 과정 자체가 투명성을 높이는 과정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