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5일(목)

장애아동의 미래를 연주하다…사회적기업 ‘툴뮤직’

지난 10월30일 서울 삼성동 올림푸스홀에서 열린 '제1회 툴뮤직 장애인 음악콩쿠르' 현장. /툴뮤직
지난 10월30일 서울 삼성동 올림푸스홀에서 열린 ‘제1회 툴뮤직 장애인 음악콩쿠르’ 현장. /툴뮤직

지난 10월 30일, 서울 삼성동 올림푸스홀에서 ‘제1회 툴뮤직 장애인 음악콩쿠르’가 개최됐다. 이전에도 많은 장애인 음악 콩쿠르가 있었지만, 이날 대회는 참가자 대기 시간부터 기존 콩쿠르들과 확연한 차이를 보였다. 참가접수부터 수상자발표까지 길게는 한나절 이상 기다려야 했던 콩쿠르와 달리, 현장 대기 시간을 1시간 이내로 대폭 줄인 것. 57명의 경연 참가자를 위해 10명의 스태프가 부지런히 움직인 덕분이다.

심사위원에는 장애와 음악 두 부문 모두에서 전문성을 갖춘 이들(임효선 경희대학교 음악대학 피아노과 교수, 이상진 나사렛대학교 음악학과 교수, 김정미 전주대학교 문화융합대학 음악학과 교수)이 초빙됐다. “장애의 특성을 고려한 심사가 공정성을 높인다”는 믿음에서, 참가자의 장애유형(시각·발달·지체장애)에 따라 각기 다른 기준이 적용됐다.

콩쿠르가 끝난 뒤, 전체 대상을 수상한 김주현(충북예술고 3년, 발달장애부문·피아니스트)군과 최우수상의 이강현(고양대송중 2년, 발달장애부문·피아니스트)·최용준(홈스쿨링, 지체장애부문·피아니스트)군에게는 100만원 상당의 디지털 앨범 제작 기회가 주어졌다. 상패와 상금보다는 ‘지속가능한 음악활동 지원’에 방점을 찍었기 때문이다.

이런 특별한 장애인 음악 콩쿠르를 상상하고 실현시킨 곳은 클래식음악 기획사 ‘툴뮤직’. 2011년 설립 당시만 해도 평범한 기획사였지만, 현재는 우리나라 최초의 장애인 음악 포럼을 개최하는 등 장애인 음악 활동 지원 사업에 열정을 쏟고 있다. 지난해에는 서울시 예비사회적기업 인증까지 받았다.

변화의 중심에는 ‘팔꿈치 피아니스트’ 최혜연(서울종합예술실용학교 2년)양의 스승인 정은현(37) 대표(목원대학교 피아노과 겸임교수, 서울종합예술실용학교 외래교수)가 있었다. 최양은 국내 최대 음원 스트리밍 사이트에서 클래식 차트 1위를 차지할 만큼 뛰어난 음악성을 인정받고 있는 아티스트다. 지난 11월 8일, 신사동에 위치한 툴뮤직 사무실에서 정 대표를 만나 장애인 음악교육에 대한 툴뮤직의 미션과 포부를 들었다.

툴뮤직의 정은현 대표. /박창현 사진작가
툴뮤직의 정은현 대표. /박창현 사진작가

◇ 기적 같은 만남… 장애인 음악교육의 시작

 

정 대표가 장애인 음악교육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2009년, 최혜연(서울종합예술실용학교 2년)양을 만나고부터다. 당시 예술고등학교 입시를 준비하고 있던 최양은 정은현 대표의 가르침을 받고자 대전을 찾았다. 간곡한 부탁에 만남이 성사됐지만, 장애인 음악교육 경험이 없던 정은현 대표는 자신이 없었다.

“제가 감당할 수 있는 일도 아닌 것 같고, 다시 돌려보내야겠다는 마음이 컸어요. 그런데 혜연이가 연주하는 ‘아드린느를 위한 발라드’ ‘왼손을 위한 에튀드’를 듣고 나니까 그냥 보내질 못하겠더라고요. 왼손과 오른쪽 팔꿈치만으로 이어가는 부족한 음악이 제게는 큰 감동으로 다가왔습니다.”

최양의 연주에 마음이 움직인 정 대표는 정식으로 사제의 연을 맺고 최양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장애인 음악가를 양성한다’는 미션이 그의 마음속에 처음 자리 잡은 날이다.

2011년 최양과 함께 출연한 SBS 예능프로그램 ‘스타킹’은 더 많은 제자를 만나는 도화선이 됐다. 프로그램을 통해 최양이 처음 ‘팔꿈치 피아니스트’라는 이름으로 세상에 알려지면서, 제작진은 이후 음악을 하는 장애아동이 출연하는 경우, 가끔 정 대표에게 레슨과 자문을 부탁했다. 클래식 음악을 공부하는 장애학생들이 그에게 지도를 받고자 그가 겸임교수로 있는 목원대에 연락을 해오기도 했다. 그렇게 만난 장애인 제자만 7명. 지체장애, 발달장애, 뇌병변장애… 저마다 특성은 달랐지만 음악에 대한 열정과 꿈만은 같았다.

프로 음악가가 되기까지의 과정은 지난하다. 수준 높은 교육이 꾸준히 이뤄져야하는 반면, 수익을 창출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하물며 특수 교육이 필요한 장애인 음악가를 키워내는 일이다. 정 대표 역시 최양을 가르치는 동안 사비를 들일 수밖에 없었다. 공연 기회도 만들고, 마케팅도 해야 하는데 한 번에 최소 500만원 이상 드는 콘서트 비용을 계속 혼자서 감당할 수는 없었다. 무엇보다 지속가능한 방법이 아니었다. 지날수록 정 대표는 장애인 음악가를 키우는 일이 개인의 자선으로 처리할 문제가 아니라는 생각을 갖게 됐다. 후배 피아니스트 정환호(33)와 함께 꾸려가던 클래식음악 기획사 툴뮤직이 해답이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음악가가 성공하면 돈 이상의 부가가치가 발생합니다. 페이스북에 올라간 혜연이의 연주 동영상 조회수가 600만 건이 넘어요. 지금은 미국, 독일, 영국 등 세계 각지에서 공연 초정을 받고 있지만 이렇게 되기까지는 상당한 투자가 필요한 거죠. 비즈니스 모델이 필요한데, 영리 활동으로 소셜 미션을 추구하는 게 ‘사회적기업’이라 하더라고요. 마침 툴뮤직은 음악가들을 위한 공간사업과 아티스트 매니지먼트를 병행하고 있었기 때문에, 장애인 음악가들을 위한 교육 지원과 잘 맞아 떨어졌습니다. 사회적기업이 되면 저희의 소셜 미션이 더 잘 실현될 수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예비사회적기업 인증을 받은 후, 정대표는 올해 처음으로 장애인 음악가 지원에 사비를 들이지 않고 사업을 진행했다. 툴뮤직을 통한 사회공헌 활동도 활발해졌다. 서울시의 사회적기업 지원 기금을 통해 최양을 비롯한 제자들의 공연제작비와 음반제작비를 지원할 수 있었고, 장애인 음악콩쿠르도 열었다. 최양은 툴뮤직의 정식 아티스트로 등록됐다.

“지금의 툴뮤직은 해보고 싶은 것 다 해보고, 쳐낼 비즈니스 모델 다 쳐내고 시작하는 느낌의 회사입니다. 아직까지는 저희가 추구하는 가치와 비즈니스 모델이 완전히 일치하지 않는 것이 아쉽지만, 생각해보면 툴뮤직은 돈을 많이 버는 회사라기 보단 ‘행복한 회사’인거죠. 세상에 그런 회사가 많지 않잖아요? 우리만의 장점인거죠.”

툴뮤직 장애인 음악콩쿠르 수상자들이 '수상자 음악회'를 통해 다시 무대에 섰다. /정다솜 청년기자
툴뮤직 장애인 음악콩쿠르 수상자들이 ‘수상자 음악회’를 통해 다시 무대에 섰다. /정다솜 청년기자

◇ 특수음악교육 체계화 노력… ‘월급 주는 장애인 예술단’ 창단의 꿈

 

“오른쪽 손이 없는 혜연이를 가르치면서 왼손만을 위한 연주곡을 주로 찾았어요. 오른손 멜로디가 좋은 곡은 툴뮤직에 소속된 작곡가 분이 혜연이를 위해 편곡을 해주고요. 발달장애 아이들은 오른손과 왼손을 따로 쓰는 데 어려움이 많아요. 왼손 반주는 작게, 오른손 멜로디는 크게 치는 식의 디테일한 표현이 힘들죠. 그래서 곡을 고를 때 가급적이면 양 손이 같이 움직이는 작품을 선곡합니다. 전맹(시력이 아예 없는 상태)인 친구들은 귀로 듣고 연주를 하지만, 시력이 남아있는 친구들은 악보가 필요한 경우도 있어요.”

장애가 있는 아이들에게 음악을 가르치며 정은현 대표는 ‘참고할만한 교육 모델’에 대한 갈증을 자주 느꼈다. 지금은 경험이 쌓였지만, 처음에는 일일이 몸으로 부딪히고 난 뒤에 해결책을 찾는 수밖에 없었다. 현재 우리나라 대학 중 특수음악교육과정을 별도로 두고 있는 곳은 없다. 장애인의 재활치료나 심리정서 지원을 위해 음악을 ‘매체’로 다루는 전공은 있어도 음악가를 키워내기 위한 교육은 없는 셈이다. 장애인 음악교육을 체계적으로 정리한 교수법도 없고 관련 연구도 활발하지 않다. 이에 정대표는 자신의 음악학 박사논문 주제를 ‘장애인 음악 지도법’으로 정했다. 지난 8월에는 특수음악교육 현장에서 활동하는 선생님들과 학생들을 한데 모으는 자리도 마련했다. 툴뮤직 주최로 지난 8월 6일 ‘제1회 장애인 음악포럼’을 개최한 것이다. 권수미 한국교원대학교 교수가 ‘음악교육에서 점자 악보의 소개와 활용’, 박민재 국립서울맹학교 강사가 ‘시각장애인을 위한 피아노 교수법’, 윤주희 이노클래식 실장이 ‘발달장애인의 예술교육 사례를 발표했다.

“음악을 배우고 싶은 애들이 많은데 정식적으로 힘을 쏟는 단체가 너무 없어요. 장애인을 위한 음악교수법이 있어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장애인구는 증가하는데 우리나라의 장애인 직업재활교육은 대부분 제빵, 마사지, 단순제조업 정도에 그치거든요. 아이들이라고 언제까지 제빵사만 할 수 있는 건 아니잖아요. 안드레이 보첼리, 스티비 원더, 레이 찰스는 모두 장애인 아티스트예요. 우리나라에서도 이런 아이들이 나와야죠. 가능성 있는 아이들을 발굴하고 가르칠 수 있는 길이 많이 만들어지고 공유되길 바랐습니다.”

정 대표의 다음 꿈은 ‘월급 주는 장애인 예술단’ 창단이다. 음악에 재능이 있어 대한민국 최고의 대학을 나와도 음악가로서 다음 행보를 이어가지 못하는 장애인 아티스트들이 더 이상 생기지 않도록, 그들을 직접 채용하겠다는 포부다.

“아직은 꿈이지만, 장애인 음악가들을 채용하는 것은 인력고용형 사회적기업으로 초반 지원을 받으면 가능할 것 같아요. 장애인 음악교육의 가치를 증명하기 위한 연주회도 계속 할 생각입니다. 대중이 음악을 통해 ‘장애’를 이해할 수 있는 접점도 많이 만들고요. 툴뮤직은 음악과 사람을 잇는 ‘도구’를 꿈으로 시작한 회사입니다. 앞으로도 누군가의 연장으로서, 도우미로서 역할하고 싶어요.”

정다솜 더나은미래 청년기자(청세담 6기) 

관련 기사

Copyrights ⓒ 더나은미래 & futurechosun.com

전체 댓글

제261호 2024.3.19.

저출생은 '우리 아이가 행복하지 않다'는 마지막 경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