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0일(토)

은퇴 축구 선수의 ‘플랜B’를 설계합니다

“축구 선수들이 은퇴하고 나면 제대로 직업을 못 가지더라고요. 운동만 하면서 살다보니, 일상적인 것도 잘 몰라요. 보증을 잘못 서서 빚더미에 앉거나, 사업에 실패하는 경우가 많아요. 하루 벌어, 하루 사는 분들도 많고, 사람들한테 사기도 잘 당하곤해요. 마땅히 생업이 없는데, 돈은 벌어야하니깐, 후배 선수들에게 가서 승부 조작을 권유하는 것도 암암리에 퍼져있었습니다.”

경남FC구단 마케터였던 윤소라(27)씨는 프로축구 선수들의 ‘은퇴 후 삶’의 어려움을 목격하게 됐다. 그리고 은퇴 선수들의 문제를 해결하고 싶었다. 먼저, 2002년 한일 월드컵 당시 수석코치였던 박항서 전 상주 상무 감독을 찾아갔다. “감독님, 선수들이 잘하는 것으로 돈을 벌 수는 없을까요?”

운동만 했던 축구 선수들은 일반인과 의사 소통 방법이 조금 달랐다. 선수 시절에는 매니저의 도움이 있었지만, 은퇴 후에는 스스로 일을 해야만 했다. 하지만 은퇴 선수들은 주체적으로 일을 찾아나서는 것을 어려워했다. 이들의 강점을 살린 일자리와 사회화 과정이 필요했다. 박항서 전 감독도 윤씨의 고민에 공감하며 ‘도울 수 있는 부분을 돕겠다’고 했다. 2015년 말, 윤씨는 은퇴 선수를 스포츠 전문 강사로 연결시키는 사업 모델을 생각해냈다.

“정부나 지자체에서 공익적 목적으로 공모 형식의 체육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경우가 많아요. 목적 사업에 부합하는 회사의 모습은 비영리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사단법인은 회원수도 100명이 넘어야하고, 도저히 제가 감당할 수 있는 규모가 아니었습니다. 소규모로 창업하기에는 ‘협동조합’이 적절했어요. 시범 프로그램을 돌렸을 때, 선수들이랑 마찰이 생기곤 했어요. 학생들을 코칭하는 과정에서도 ‘교육’이 많이 필요하겠더라고요. 협동조합의 핵심 가치 중 하나가 ‘교육’이기도 하잖아요. 가장 잘맞는 옷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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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랜비협동조합의 3명의 직원조합원들. 가운데가 윤소라 대표. ⓒ권현정작가

지난 7월, 윤씨는 전 직장 선배 둘과 함께 초기 출자금 500만원으로 ‘사회적협동조합 플랜비스포츠(이하 플랜비스포츠)’를 설립했다. 만들어진지 이제 6개월이지만, 플랜비스포츠의 플랜은 꽤 정교하다. 플랜비스포츠의 모델은 소비자조합원(학부모), 생산자조합원(은퇴 선수), 직원조합원에다 박항서 전 감독과 같은 후원자를 모집해 후원자조합원까지 통합하는 다중이해관계자협동조합이다. 현재 플랜비스포츠에서 선수로 활동하고 있는 사람은 프로축구 은퇴선수 김태민, 박병규와 내셔널리그 출신 최기용 등 총 3명이다. 이들은 아직 예비조합원으로서 스포츠지도자 자격증 취득 등 교육 과정을 거친 후, 생산자조합원으로서 활동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 선수들의 경력 및 교수법에 따라 취미반, 재능진단반, 엘리트반 등 소비자들의 니즈를 다각화한 맞춤 프로그램을 돌릴 예정이다.

윤씨는 “저소득층 스포츠 교실 등 공익적 요소를 강화해 사회적협동조합으로의 전환을 준비중”이라고 덧붙였다. 사회적협동조합은 영리 법인인 일반협동조합과 달리 공익 사업에 40% 이상을 투자해야 하며, 이익금에 대한 배당이 없는 만큼 ‘공공성’이 아주 강한 비영리 법인이다. 설립 신고만 하면 되는 일반 협동조합과 달리, 관련 부처에서 인가 과정을 거쳐 감독까지 받아야 한다. 

2016년 하반기는 플랜비스포츠 사업 모델의 가능성을 실험한 시기였다. 대한체육회의 ‘행복나눔 스포츠교실’ 공모 사업에 선정되면서 10월, 11월 거의 하루도 쉬지 않고 축구교실 프로그램을 돌렸다. 박항서 전 감독도 매주 목요일마다 2시간씩 인천 검단 지역 아동들에게 축구를 가르쳐줬다. 지금까지 이 프로그램을 거쳐간 학생만 440명이 넘는다. 11월에는 구례자연드림파크에서 2박3일 동안 100여명의 아이들을 대상으로 축구와 인문학, 협동조합 교육이 결합된 ‘축구캠프’를 기획ㆍ운영하기도 했다. 윤씨는 “전국 각지에서 아이들이 참여하다보니 먼 지역 친구들과도 소통할 수 있는 시간이 됐다”면서 “롤링페이퍼에 K-리그 선수가 되서 다시 만나자는 메시지를 남긴 학생들이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내년부터는 성인 대상 원데이클래스나 교육 프로그램과 체육 수업이 융합된 캠프 운영을 확대할 계획이다.  플랜비스포츠는 지난 1일, 한국사회적기업진흥원이 주관한 ‘2016 청년협동조합 공모전’에서 우수팀 중 한곳으로도 선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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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랜비협동조합이 진행했던 ‘박항서 리더십 축구교실’ 현장. ⓒ플랜비협동조합

“은퇴 선수들에게도 사회안전망이 필요합니다. 선수들 보면 대부분 세 분류로 나눠져요. 건강이나 생활상의 문제로 중고등학교 때 일찍 은퇴하면서 프로 문턱에도 못 밟은 선수도 있고, 프로에서 1~2년 뛰다가 그만 둔 선수, 프로에서 오래 버티다가 코치나 감독 생활을 하는 선수로요. 특히 청소년기에 그만둔 친구는 막막해요. 배운 것이 운동밖에 없는데 그 다음 스텝으로 나가기가 참 어렵거든요. 평균 은퇴 연령도 23세 정도로 젊어요. 플랜비는 은퇴 선수들의 가능성에 주목해요. 이들이 잘 할 수 있는 것으로 돈을 벌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자는 거죠.”

‘플랜비’의 뜻은 무엇일까. 윤씨는 “은퇴 선수에게는 제2의 기회를 제공하고, 플랜비 선수들을 보면서 다시 일어설 수 있다는 희망을 주는 기업이 됐으면 좋겠다”고 설명했다. ‘은퇴 선수들의 인생 플랜B를 만들고 싶다’는 윤씨, 스포츠마케터를 꿈꾸던 그녀에게도 협동조합 창업으로 새로운 인생이 열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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