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1월 24일(일)

“세상 떠난 당신 우리가 기억합니다”… 대구 희움 ‘위안부’ 역사관

대구 중심가인 동성로에서 10분 정도 걷다 보면 대구의 관광지, 근대 골목이 나온다. 1920년대 번화가였던 이 곳에는 근대 시대의 변천사가 곳곳에 여전히 남아있다. 북성로의 대구 근대 역사관을 지나고 나면 새로이 지어진 건물들 사이로 나지막하게 자리 잡은 일본식 건물이 눈에 들어온다. 지난해 12월 개관한 희움 일본군 ‘위안부’ 역사관(이하 희움 역사관)이다. 경기도 광주시의 ‘일본군 ‘위안부’ 역사관’, 부산 수영구의 ‘민족과 여성 역사관’, 서울의 ‘전쟁과 여성인권 박물관’에 이어 전국에서 네 번째로 문을 연 위안부 역사관이다. 지난 10월 26일부터 ‘故문옥주 20주기 추모전’을 열고 있는 희움 일본군 ‘위안부’ 역사관(이하 희움 역사관)을 이소영 더나은미래 청년기자가 찾았다.

희움역사관 전경
희움역사관 전경 ⓒ이소영 청년기자

희움 역사관은 1920년대 경일은행 자본으로 지어졌던 건물을 그대로 개조해 만들었다. 2층으로 이뤄진 목조건물의 뼈대는 남기되 내부를 개조해, 높은 빌딩에 둘러 쌓여서도 단단한 모습이었다. 건물이 담고 있던 아픈 역사와는 달리 내부는 고즈넉했다. 이날 만난 이인순(52) ㈔정신대할머니와함께하는시민모임 사무처장은 지난 6년여간 ‘희움 역사관’ 건립을 위해 백방으로 뛰어 온 장본인이다. ㈔정신대할머니와함께하는시민모임은 대구·경북 지역 위안부 피해 여성들을 돕기 위해 1997년 만들어진 시민 단체다. 그가 역사관을 건립하기로 결심한 계기는 무엇이었을까.

“2006년에 여성 인권 운동에 관심을 갖게 되어 시민모임에 참여하게 되면서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 분들을 처음으로 뵙게 됐어요. 말벗도 해드리고 애뜻한 이야기도 들어드리는 일이었는데, 한 두 분씩 세상을 떠나시는 걸 지켜봐야 했습니다. 위안부 문제 진실 규명을 위해서도, 그리고 이후 역사적인 교훈을 남기기 위해서도 역사관을 건립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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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층 상설전시관 전경. 일본군’위안부’ 문제를 연대기로 구성했다. 시민단체에서 위안부 문제해결을 위해 활동해 왔던 운동의 역사도 나와있다. ⓒ이소영 청년기자

◇‘내가 죽어도 나를 잊지 말아 달라’

 내가 죽어도 내게 일어났던 일을 잊지 말아달라

2010년 1월 세상을 뜨는 고(故) 김순악 할머니(당시 84세)의 유언이 직접적인 계기가 됐다. 이 사무처장은 “작은 시민단체가 역사관을 건립한다는 게 거의 불가능한 목표처럼 느껴졌는데 ‘꼭 필요한 일’이라는 생각으로 조금씩 힘을 모아나갔다”고 했다. 고 김순악씨가 남긴 5000여만원이 ‘씨앗기금’이 됐다. 지역 예술가들은 재능기부로 동참했다. 2011년에는 고 김순악·심달연 할머니의 원예 압화작품을 바탕으로 제품을 만들어 판매하는 ‘희움’이라는 브랜드도 만들었다. 수익금은 전액 위안부 역사관 건립에 쓰이도록 했다. 고려대 사회적기업 동아리 블루밍팀에서 희움 제품의 판매와 홍보를 도왔고, 희움의 ‘의식팔찌’가 화제가 되며 입소문을 탔다. 역사관 건립비 12억5천여만원 중 절반이 넘는 7억원이 희움 판매 수익금으로 마련됐다. “10년은 걸릴 것”이라고 생각했던 일에 사람들의 뜻이 모여들면서, 지난 2015년 ‘희움 역사관’이 문을 열었다.

희움역사관 2층 내부 전경 ⓒ이소영 청년기자 촬영
희움역사관 2층 내부 전경 ⓒ이소영 청년기자 촬영

“일본군 ‘위안부’ 자료는 국내에도 많지가 않아요. 민간 단체가 갖고 있는 자료는 더더욱 적고요. 희움 역사관은 대구·경북 지역에 계시는 위안부 피해자들에 관한 증언이나 생활용품, 유품을 모아둔 곳이에요. 1997년 이후로 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해 온 살아있는 역사가 담겨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1층 상설전시실에서는 ‘위안부’ 문제 전반을 조명하는 전시가 마련됐다. 중국·미얀마·필리핀·인도네시아 등 곳곳에서 일본군이 전쟁 중 저지른 만행이 각종 지도와 연표, 피해자 증언이 전시됐다.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 벽면에는 고 심달연 할머니와 김순악 할머니의 압화 작품 5점이 걸려있다. 피해자 정서치료사업의 일환으로 진행된 원예 압화프로그램에 참여한 할머니들이 전시를 개최했던 작품들이다. 2층에는 기획전시실과 교육관, 야외 전시장 및 공연장으로 이용되는 공간이 있다. 2층에서는 고 문옥주 할머니  20주기 추모전이 전시 중이다.

◇ 우리가 기억하는 당신, 고(故) 문옥주 20주기 추모전

문옥주 할머니 개인전 전시. '전쟁이 끝나도 삶은 계속 된다.' 문옥주 할머니 일대기 책에 나오는 말이다. 전쟁이 끝난 후에도 할머니의 삶은 계속 되었다. ⓒ이소영 청년기자
‘전쟁이 끝나도 삶은 계속 된다.’ 문옥주 할머니 일대기 책에 나오는 말이다. 전쟁이 끝난 후에도 할머니의 삶은 계속 됐다. ⓒ이소영 청년기자

“전쟁이 끝나도 삶은 계속된다. 가족들은 버마에서 뭘 했는지 물었지만 나는 결코 입을 열지 않았다.” (고 문옥주)

2층 전시장 곳곳에는 문옥주씨를 기억하는 자료들이 전시됐다. 문옥주씨를 기억하는 이들의 인터뷰 영상이 지역 예술가들의 손을 거쳐 화면으로 탄생했다.

“위안부 할머니라고 하면 늘 고통에 대해서만 이야기 하잖아요. 그런데 모두가 각자의 인생이 있으셨던 분들이거든요. 우리와 다를 바 없는 분들이고요. 획일화된 ‘위안부 할머니’ 이미지를 벗어나 개인 인생 이야기를 들려드리면서 사실 우리와 같은 분들이었다는 느낌을 주고 싶었어요.”

이씨가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 개인적을 기획했던 이유다. 그가 몸 담고 있는 시민단체에서 오랜 기간 대구•경북 지역의 위안부 피해 여성들과 함께 해왔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생전에 문옥주 할머니를 만나 본 적 있는 PD, 시민단체 사람들 등 사람들이 기억하는 할머니를 말하는 작품. ⓒ이소영 청년기자
생전에 문옥주 할머니를 만나 본 적 있는 PD, 시민단체 사람들 등이 기억하는 할머니의 모습을 엮어낸 작품. ⓒ이소영 청년기자

고 문옥주씨는 대구에서 태어나 16살의 나이에 만주 동안성으로 강제 연행됐다. 1년 뒤 가까스로 고향에 돌아왔지만 이후 다시 미얀마 일본군 위안소로 보내졌다. ‘고향에 다시 돌아가려면 돈이라도 많이 벌어야 한다’고 생각했던 문씨는 위안부 생활 동안 군인들로부터 받은 팁이나 돈을 군사우편에 저축했지만, 일본 패전 후 빈손으로 고향에 돌아왔다. 일본 정부에서 1965년에 체결된 한∙일 기본조약의 청구권협정으로 ‘군사우편’에 저축된 자금을 지급하는 걸 거부했기 때문. 

일본에서 위안부 문제를 알리려고 오랫동안 활동했던 저자 모리카와 마치코씨는 2005년에 문옥주 할머니의 일대기를 담은 책 ‘버마 전선, 일본군 ‘위안부’ 문옥주’을 펴내기도 했다. 3년에 걸친 심층 인터뷰와 미얀마 현장조사를 거쳐 나온 책이다. ‘희움 역사관’은 지난 11월 12일 모리카와 마치코로부터 문옥주씨 이야기를 듣는 자리를 마련하기도 했다. 

◇사회·역사적인 문제, 개개인의 문제로 치환하지 말아야

‘위안부 피해자’가 아닌, 한 명의 삶과 마주하는 자리를 만들고 싶었다는 희움역사관. 그러나 이 사무처장은 “위안부 문제 해결은 개인의 문제로 치환해선 안되고 사회·역사적인 문제로 접근해 해결해야 한다”고 선을 그었다. 지난해 12월 한·일 정부가 맺은 ‘한·일 위안부 합의’에 대해서도 목소리를 높였다.

지난해 12월, 한국 정부는 재단을 설립하고 일본 정부가 10억 엔(약 100억 원)을 출연해 위로금을 지급하겠다고 합의했다. 그 결과 ‘화해치유재단’이 출범했지만 위안부 피해자 당사자와 시민사회에서는 합의 무효와 함께 재단 활동을 즉각 멈추고 해체하기를 요구하고 있다. 당사자의 의견이 반영되지 않은 합의라는 것.

“기본적으로 피해자 할머니들과 국민의 의견을 떠난 협약이기 때문에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위안부 문제는 그냥 몇몇 사람들의 문제가 아니라, 한 국가가 다른 국가의 여성 인권을 침해한 문제에요. 그럼 국제법에 따라서 진상 규명을 하고,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잘못을 인정하고 법적 책임을 져야 하는데, 지금은 이런 기준 없이 개인적으로 돈 줘서 문제를 끝내려는 거니까요. 합의 자체는 무효로 하거나 철회하고 문제가 올바르게 해결될 수 있도록 재협상을 추진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최근에는 일본군 ‘위안부’ 기록물의 유네스코 세계기록문화유산 등재 추진 관련해서도 목소리를 내는 중이다. 정부가 올해 관련 예산으로 4억4000만원을 책정했지만 전혀 집행되지 않았고, 내년도 사업 예산도 전액 삭감됐기 때문. 지난 5월, 한국·중국·일본 등 8개국 시민단체가 ‘국제연대위원회’를 만들어 총 2744점의 자료를 등재 신청했지만 일본의 항의로 중단된 상태다.

쉽지 않은 싸움을 이어가는 ㈔정신대할머니와함께하는시민모임과 ‘희움 역사관’. 이 사무처장이 ‘희움 역사관’에서 그리는 미래는 무엇일까. 

“내년이면 시민모임이 20주년이 돼요. 오는 1월까지 추모전을 진행하고, 이후에는 역사 강좌 등 다양한 행사를 열 예정이에요. 현재 희움역사관 방문객 6·70%는 청소년 단체관람이거든요. 일본 시민단체나 대학생들이 평화기행으로 찾아오는 경우도 있구요. 역사 교육 장으로 역할을 해내고 있다는 점에서 앞으로도 적극적으로 활동해 나가려고 합니다.”

이소영 더나은미래 청년기자(청세담 6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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