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수진 시민모임 발자국 대표 인터뷰
경기도 여주군의 한 주택가. 한 40대 아저씨는 집 근처 수돗가에서 물놀이 중이던 4살 짜리 여자 아이를 아이스크림을 사주겠다고 유인했다. 그리고는 야산으로 데리고 가, 성추행을 했다. 아이는 생식기를 크게 다쳤다. 세상에 나온지 채 만 4년도 안 된 아이였다. 부모는 충격으로 뇌출혈로 쓰러져 반신이 마비됐고, 어머니는 가게 운영을 중단했다. 아이는 정신연령이 40개월에서 29개월로 퇴행했고, 남성기피증도 생겼다. 그야말로 한 가정이 산산조각이 났다.
2012년 여름, 세상을 떠들썩했던 여주 4세 여아 성추행 사건. 이 사건에 분노한 건 부모뿐만이 아니었다. 네티즌들은 하나, 둘 온라인에서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가해자를 엄중하게 처벌해주세요!” 지난 2008년 조두순 사건으로 아동 성폭력 여론은 들끓었지만, 가벼운 처벌 수위에 대한 논란과 함께 현장은 달라진 것이 그다지 없었다. 4년 후, 다시 벌어진 끔직한 사건에 시민들은 분노했고, 다음 아고라에 아동성범죄 가해자 엄중 처벌을 바라는 청원을 작성했다. 시민들의 움직임 속에 하나의 커뮤니티가 있었으니, 이름하여 ‘시민모임 발자국’이다.
“그 때 피해 아동을 향한 악플을 보며 저뿐만 아니라 많은 부모들이 분노했던 기억이 나요. 제 딸이 네 살이 되던 해였어요.“ 시민모임 발자국의 전수진 대표(39)가 말했다. 온라인으로 시작한 시민모임 발자국은 2012년 제2의 조두순으로 불리는 고종석 성폭행 사건이라는 큰 일이 있고 나서 새로운 국면을 맞이한다. 카페에 더 많은 사람들이 모이게 되었고, 이렇게 모인 사람들은 거리로 나왔다. “피해보다 짧은 형량, 판사들은 각성하라”, “아동 성범죄 최소형량 20년”을 외치며 서울역, 부산, 대전, 수원 등지에서 40회가 넘는 오프라인 집회가 열렸다. 이러한 집회들의 최종목적은 전반적인 아동의 권리보호다. 이를 위해서 일차적으로 아동성범죄자 형량강화를 주장하며 목소리를 내고 있다.
◇ 발자국의 목소리 “아동 성범죄자 최소형량 20년 보장하라!”
아동 학대로 살인까지 이르게 한 가해자의 평균 형량은 7년. 2016년 국회 법사위 소속 박주민 의원이 대법원으로부터 제출받은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2001년부터 올해까지 아동 학대 사망 판결 31건 가운데 살인죄가 인정된 것은 단 5건뿐. 나머지는 상해치사(7건), 유기치사(4건), 폭행치사(4건), 학대치사(3건) 등으로 처벌돼 평균 7년 형량을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전수진 대표는 “피해자 아동과 가해자가 분리되어 보호받을 수 있도록 최소 20년 이상의 형량강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형량이 강화된다고 해서 성범죄가 줄어들지는 않을 것이라는 말도 많이 들어요. 알고 있어요. 하지만 발자국은 피해자의 회복 관점에서 형량 강화를 주장하는 거에요. 피해자의 입장에서 자신에게 상처를 준 사람이 제대로 처벌을 받지 않았다고 생각하면 이 나라의 법체계를 믿을 수 있을까요? 회복할 수 있을까요? 라는 질문을 던지는 거죠.”
성폭력 피해아동에게 음란 댓글을 단 악플러를 고소해 벌금형을 받게 하며 선례를 만들기도 했다. “그 전에 고소하기를 누르면 그냥 댓글이 사라지는 정도였는데, 직접 공소장을 접수하여 벌금형을 받게 했다는 것에 의의가 있다고 생각해요. 전과기록이 남는 것이잖아요. 그리고 선례가 있으면 그런 악플에 대해 계속 벌금형을 주기 쉬워지는 면도 있고요. 이후로 확실히 악플들이 많이 사라지기도 했어요.”
여주 여아 성범죄 사건을 계기로 만들어진 시민모임 발자국은 2014년, 비영리 민간단체로 등록됐다. 전수진 대표가 처음부터 비영리 단체의 일을 해왔던 것은 아니다. 그녀는 회사를 다니던 평범한 직장인이었다. SM엔터테인먼트에서 10년간 일을 했던 그는 2014년 발자국이 민간단체 인가를 받으면서 일해왔던 회사를 그만두고, 현재는 조그만 스타트업에서 일을 하며 대표직을 병행한다.
“비영리 단체의 대표 자리는 그렇게 대단한 무언가는 아니에요. 어떤 사안에 대해 본인이 얘기하고 싶은 무언가가 있다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에요. 발자국이 만들어질 당시에 저와 같은 생각을 하고 함께 분노했던 사람들이 많았어요. 어떻게 보면 그 분들도 저와 같은 일을 했다고 생각해요. 어떤 사안에 대해서 함께 분노하고, 그것이 단초가 되어 모임이 만들어지는 것이죠. 막 무언가를 만들려 노력하지는 않았어요.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모임이 만들어지고 이만큼 커온 것 같아요.”
◇ 집회부터 공연, 노래 제작, 세미나까지… 아이들을 보호하기 위해 나섭니다
발자국은 집회뿐만이 아니라 여러 가지 캠페인도 함께 했다. 발자국의 목표는 ‘감시, 공감, 힐링, 교육’이다. 발자국은 아동성폭력 및 아동학대 피해자들을 위한 기금을 마련하기 위한 프로젝트도 활발하게 진행한다. 2016년 9월, 아이돌 가수 레인보우 김재경도 발자국의 기금 마련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이름하여 ‘도담도담 프로젝트’. 김재경이 직접 스케치한 디자인으로 만들어진 팔찌는, 하나 판매될 때만 33% 수준이 1만 3000원이 아동성폭력 및 아동학대 피해자 아이들을 위해 사용된다. 크라우드펀딩 목표액 645만원만원을 넘긴 720만 8000원 모금을 달성했다.
예방 차원에서 교육도 진행한다. 아동 학대 예방 인형극 ‘꼭! 꼭! 꼭!’을 제작해서 공연하며, 성인들을 대상으로 한 서울 국제 유아교육전에서 관련 세미나를 열기도 했다. 또한 발자국 합창단을 만들어 아동학대 피해자들을 위해 노래 ‘우리가 지켜줄 테니’를 제작해 각종 음악사이트에 등록하였으며 2013년에는 영화 ‘소원’의 시사회 진행을 맡았다.
전 대표는 아동성범죄가 완전히 없어지지 못하는 한계를 가지고 있다면, 이를 최대한으로 줄여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를 위해서는 중요한 것은 “장기적인 호흡으로 이러한 이슈들을 잊지 않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집회를 열고, 피해자 아동들에 대한 악플을 신고해 벌금형을 받게하고, 여러 캠페인들을 벌이는 일들은 이제 전 대표에게 숙명 같은 일이다. “사실 꿈에 대해 생각해보며 살아오지는 않았던 것 같아요. 근데 아이를 낳고 나서 세상을 보는 시각이 많이 바뀌었어요. 모든 부모들이 그럴 것이라고 생각해요. 저는 우리 아이들이 좀 더 행복한 세상에서 살 길 바라는 마음이 컸어요.”
그녀는 결혼 후 아이가 한 살이 되던 해에 입양 가기 전의 아이들을 봉사하고 양육하는 ‘성가정입양원’에서 6개월 정도 봉사를 했다. 봉사자들이 2시간마다 바뀌면서 아이들을 돌봐줬다. 봉사자가 교체될 때마다 아이들은 자신을 돌봐주는 사람이 바뀌어 혼란을 겪는다.
“저 같은 사람이 와서 봉사하는 것도 의미가 있는 일이지만, 아이는 자신을 돌봐줄(입양을 가지 못한다면 고용이 되어서 하루 종일 자신을 돌봐줄 수 있는) 단 한 사람이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를 위해선, 아이들에 대한 정부 시스템이 적절하게 작동해야하는 거죠. 마침 발자국이 하는 일도, 이런 생각과 맥락이 같았어요. 이젠 발자국의 미션이 저의 꿈이고, 숙명이라 생각해요. 제 딸이 4살 때 시작한 일인데, 딸아이가 벌써 8살이 돼서 집회에도 함께 나간답니다(웃음). ”
채수연 더나은미래 청년기자(청세담6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