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속의대화, ‘엔비전스’
“보는 눈을 감고, 통찰의 눈을 떠라.”
지난 28년 동안 유럽·아시아·미국 등 30개국 160여 도시에서 950만 명의 관람객이 경험한 전시 ‘어둠속의대화’의 캐치프레이즈다. 한국에서는 2009년 네이버의 투자를 받은 자회사형 장애인표준사업장인 ‘엔비전스’가 2010년부터 상설 전시를 이어나가고 있다. 엔비전스는 현재 시각장애인 25명과 비장애인 10명, 총 35명을 고용하고 있는 사회적기업이다.
‘어둠속의대화’는 완전한 어둠 속에서 100분간의 전시가 진행된다. 관람객은 오로지 로드마스터에 의지해 시각 외의 청각·촉각·후각 등의 감각만으로 전시를 체험해야 한다. 한국에서는 서울 북촌에 상설 전시장을 운영하고 있으며, 오전 11시부터 저녁 8시(토,일, 공휴일은 오전 10시부터 저녁 7시)까지 15분 간격으로 하루 총 37회 프로그램이 진행된다. 매 회차마다 최소 1명에서부터 8명까지 팀을 이뤄 전시를 체험하게 된다. 인터파크 예매를 통해 분기별로 티켓을 판매하고 있는데, 현재 전시/행사 주간 랭킹에서 10월~12월 전시가 3위를 차지하고 있다.
관람객들의 반응도 뜨겁다. “처음에는 당황스러움이 앞서지만 끝날 때쯤에는 끝내기 싫을 정도로 너무 즐거운 시간이었다”, “30년 동안 겪었던 경험 중 단연 최고의 경험”, “꼭 소중한 사람에게 권하고 싶다”는 등 색다른 데이트나 경험을 원하는 이들에게 안성맞춤이라는 평이 많다. 사실 상설전시장을 열고 초기 몇 년은 적자를 봤지만, 지금 서울 전시장의 누적 관람객 수는 25만 명이 넘는 등 독일 함부르크와 이스라엘 홀론 다음으로 반응이 좋다. 송영희 엔비전스 대표는 “전시 산업은 최소 2년은 지속해야 성과를 낼 수 있다”면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초기 투자를 유치하는 것”이라고 했다. 현재 엔비전스의 월 매출은 1억에서 1억5000만원 정도다.
“중도에 실명을 하고 나서, 여기저기 회사에 다녀도 1년 이상 다니기가 어렵더라고요. 안마업 빼고는 할 게 없는 것이 사실입니다. 시각장애인도 직업 선택의 다양성이 필요해요. 그러기 위해서는 대안 직종도 있어야 하고, 시각장애인에게 적합한 업무 환경도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송영희 대표)
올해는 회사에서 시각장애인용 그룹웨어까지 자체 개발했다. 음성 엔진을 통해 문서를 올리고, 서류를 결재하는 등 시각장애인 직원들이 다른 사람의 도움 없이도 회사 업무를 처리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프로그램이다.
송 대표는 “다른 회사에서도 시각장애인용 스크린 리더기를 활용해서 일을 하지만, 공동으로 업무를 하는 시스템에서는 불편함이 많다”면서 “자체 개발한 그룹웨어 소프트웨어가 안정화돼서 다른 기업이나 복지관에도 널리 사용될 수 있다면 장애인들의 고용 환경 개선에도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기대감을 표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