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6일(금)

“사회문제, 정부 지원금만으로 해결 안돼… 사회적 금융 키워야”

한국사회투자 3년간 694억원 집행
소셜하우징, 사회적기업 지원 등 사회혁신 사업에 마중물

“작은 사회적기업이 담보와 신용 등급만 중요시하는 기존 금융 서비스를 이용하기란 거의 불가능했다. 개인 돈이 아니면 급한 자금을 운용할 길이 없어 직접 대출을 받기 시작했고, 카드론을 쓰기도 했다.”

전남의 사회적기업 ‘해들녘애’는 결혼 이주 여성, 고령자 등 취약 계층과 함께 강진 특산품을 직접 개발, 제조하는 사회적기업이다. 기형적 유통 구조에 눌려있던 지역의 ‘명인’을 발굴해 소비자와 이어주는 역할도 하고 있다. 지금은 연매출 10억원을 웃돌아 안정적이지만, 박상선 대표가 창업 초기부터 지난 6년간 감당해야 했던 짐은 상상 이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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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진 한국사회혁신금융㈜ 대표이사. /한국사회투자제공

하지만 올해는 한층 수월하게 신제품 개발에 매진할 수 있었다. 해들녘애의 사회적 가치를 보고 선뜻 제조비 1500만원을 빌려준 곳이 있었기 때문이다. 대출을 해준 곳은 사회적기업들의 자조기금(‘사회혁신기금’)에서 출발한 ‘한국사회혁신금융㈜’. 소셜벤처·NGO 등을 위한 금융상품을 개발해 저금리(연 4%)로 대출을 제공하고 있다. 현재까지 총 38건, 6억8000만원 상당의 융자금을 지급했고 연체율은 ‘0%’다.

◇담보·신용 등급보다 가치를 보는 투자

한국사회혁신금융㈜이 처음부터 이런 규모의 융자 사업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니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회원사 88곳이 출자한 1억8000만원이 대출재원의 전부였다. 기업당 대출도 3개월 단위 평균 500만원 정도였다. 하지만 올해 6월, (재)한국사회투자에서 2억원을 지원받은 후부터 사정이 달라졌다. 6개월 단기 상품(2000만원 한도)과 1년 중기 상품(5000만원 한도)을 신설하는 등 대출 서비스의 폭이 넓어진 것.

“기업이 크려면 먼저 관련 금융시스템이 발전해야 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국내에는 사회적기업의 옥석을 가려줄 리서치 기관, 사회적 투자로 인한 손실을 보증해 줄 인프라가 거의 없는 상황이다. 현장에서 뛰는 사회 혁신가들의 가치를 이해하는 ‘사회적금융’이 더욱 활성화 돼야 한다.” (이상진 한국사회혁신금융㈜ 대표이사·사진)

위기 청소년의 자립을 지원하면서 매년 연매출을 두 배씩 키워온 카페 ‘자리’는 경영 자금 운용을 위해 최근 한국사회혁신금융에서 5000만원을 빌렸다. 사회적기업 티팟은 온라인 뉴스, 댓글 서명을 통해 시민과 지역사회 유휴 공간을 연결하는 소셜 플랫폼 ‘아이메이크공공'(imake00.com)을 론칭하며 5000만원을 대출했다. 한국사회혁신금융㈜에서 운영위원으로 활동 중인 ‘오요리아시아’의 이지혜 대표는 “사회적기업에 ‘대안도 만들고, 돈도 벌라’고 하는데, 정부 지원금은 ‘씨앗 자금’일 수밖에 없다”면서 “착한 일을 계속할 수 있게 하려면 그들과 가치를 공유하는 금융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사회문제 해결 ‘혁신’ 이루려면 사회적금융 먼저 커야

더나은미래_한국사회투자_사회투자기금_융자사업금_집행내용_2016
2013~2016년 사업별 사회투자기금 집행 내용

 
2013년부터 올해까지 한국사회투자를 통해 조성된 사회투자기금은 약 703억원(서울시 조성 기금 526억원·민간 기부금 177억원, 약정금액 포함). 이 중 융자사업금은 약 694억원에 달한다. ‘한국사회혁신금융’ 외에도 취약 계층 고용과 주거 개선 사업에 앞장서는 ‘일촌나눔하우징’, 국내 최초로 변호사 수임료와 서비스 요금을 투명하게 공개한 법률 플랫폼 ‘로앤컴퍼니’ 등이 대출 서비스를 받았다. ‘보후너스’는 한국사회투자에서 받은 대출금을 바탕으로 최근 길음동에 주거 취약 청년들을 위한 셰어하우스(공동체주택)를 오픈하기도 했다. 융자받은 곳 모두가 일자리, 주거, 공정 거래 등 사회적 문제를 현장에서 해결하고 있는 ‘선수’들이다.

이종수 한국사회투자 이사장은 “사회문제가 더 이상 ‘정부 지원금’만으로 해결되지 않는다는 것이 국제사회의 중론”이라면서 “GSBV(국제사회적은행연합체) 가입 조직이 최근 36개로 늘어나는 등 곳곳에서 ‘사회적금융’을 통한 혁신이 일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 7월 포르투갈에서 열린 ‘GSG(글로벌사회영향투자운영그룹·2013년 G8 정상회의를 통해 결성된 ‘임팩트투자태스크포스’의 후속 기구)’ 콘퍼런스에서 국제사회의 공통 과제로 떠오른 난민 문제를 사회적금융으로 풀어보자는 이야기가 활발히 논의됐다. 그만큼 ‘사회문제 해결의 열쇠가 민간 자본에 있다’는 합의가 생긴 것이다. 앞으로 국내에서 사회적금융을 전담하는 ‘소셜 뱅크’, 사회 투자에 초점을 맞춘 민간 기금이 계속해서 형성돼야 선진적인 사회문제 해결이 가능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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