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을 위한 기술(Technology for good)
인공지능, 가상현실, 드론 등으로 대표되는 4차 산업혁명이 시작됐다. 동시에 우리는 경제적 불평등이 심해지고 청년들의 미래에 대한 희망이 줄어드는 시대에 살고 있다. 기술혁신이 교육과 헬스케어 서비스, 정치적 갈등 해소, 경제적인 불평등, 기후변화와 같은 지구적 문제 해결에 어떻게 기여하는가. 기술혁신과 소셜 임팩트 창출이 동시에 이뤄지도록 스타트업 생태계를 발전시킬 수는 없는가. 이런 주제로 이뤄진 세션. 권혁태 쿨리지코너인베스트먼트 대표의 사회로, 이기대 스타트업얼라이언스 이사, 정재호 카이스트청년창업투자지주 이사, 이호찬 KTB 벤처스 대표, 이덕준 D3쥬빌리 대표 4인의 이야기가 펼쳐졌다.
권혁태= 기술의 역할이 확장성을 더 쉽게 만들어주는 게 아닌가 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한국의 많은 기업들이 소셜 미션은 좋은데 확장성은 떨어진다는 생각이 든다. 우선 각자 돌아가면서 패널소개를 해달라.
이기대= 스타트업 얼라이언스는 스타트업들의 글로벌 진출을 도와주고 해외에서 들어온 여러 가지 역할을 잘 응대하기 위해 민간에서 만든 공동체이고 비영리다. 자체수익을 못 만들어서 네이버에서 100억을 출연해서 그 기금으로 운영한다. 개인적으로 한국과 외국의 스타트업에서 일했다. 사회적기업 중에 가장 큰 아름다운 가게에서 일한 경력도 있다. 지금은 스타트업과 비영리가 만나는 곳에서 일한다.
정재호= 카이스트창투는 카이스트에서 100% 출자해서, 그 자본금으로 사회문제 해결하는 혁신적 기업에서 투자하는 곳이다. SK 최태원 회장의 기부를 통해 청년 사회적 기업에 맞게 쓰이도록 한 게 시발점이다. 생긴지는 2년 됐다. 사회적 가치와 재무적 가치를 모두 추구해야 하기 때문에 임팩트 투자가 쉽지는 않다. 시행착오를 겪었고, 지금은 19개 투자 포트폴리오를 갖고 있다.
이호찬= 1981년 투자회사를 설립했다. 저는 미국에 있다. 1988년부터 30년 가까이 한국계 투자로서는 상당히 오랜 기간 투자하고 있다. 2005년부터 미국에서 투자를 진행하고 있다. 투자할 때 꼭 임팩트 투자만 하는 것은 아니고,.개인적으로 사회적 책임 분야에 많은 관심이 있다. 오랜 동안 기술분야 투자를 많이 하다가, 최근에는 생활과학(life Science), 디지털 헬스 케어(health care)에 많이 투자한다. 지난 1년간 미국 투자의 70%는 생활과학 쪽이었다.
이덕준= 서울과 실리콘밸리에 근거지를 두고 있어서, 기술 혁신 소셜 임팩트는 늘 고민하는 주제다.
권혁태= 처음부터 임팩트 투자라고 포지셔닝을 하지 않았는데, 언제부터인가 그렇게 포지셔닝됐다. 우리나라도 사회적인 투자 움직임이 있어서, 처음에 사회적 기업이라는 키워드로 시작됐다. 사회적 기업으로 하다 보니까 너무 사회공헌, 취약계층, 고용으로만 가는 것 같아서 소셜 벤처라는 키워드로 넘어가는 느낌이 살짝 있었다. 최근에는 소셜 벤처도 소셜이라는 느낌이 세서 그런지, 그 다음단계인 임팩트 투자로 넘어가고 있는 것 같다. 여기 있는 패널 분들이 본인이 경험했든, 투자했든, 옆에서 지켜볼 때 그 기업들이 테크놀로지를 원하든, 원하지 않든 수용할 수 밖에 없었던 사례들이 있었던 것 같다. 그 주제에 맞춰서 이야기를 나눠보고 싶다. 저는 스타트업과 소셜벤처(임팩트벤처)들이 시작단계에서는 비슷한 고민이 있다. 좋은 가치와 시장을 바라보면서 사업을 시작하는데, 어느 단계까지는 팀들이 해결할 수 있다. 문제는 사업의 확장성이다. 수많은 사람을 채용해서 사업 확장을 할 수 없기 때문에 결국 기술로 이 확장성 문제를 풀려고 한다. 반대로 한편에서는 기술을 너무 중요하게 생각하는 경향도 있어서, 이 둘의 균형을 맞추는 게 중요한 게 아닌가 생각해봤다.
이기대= 구경꾼의 관점에서 보면, 확장성은 투자하는 분들 입장에서 회수하는 걸 염두에 두고 하는 말 같다. 창업자 입장에서는 살아남는 게 가장 중요하다. 기술이라는 요소가 생존과 확장에 큰 영향을 주는가. 작년 1년 대한민국 벤처 생태계 2조원이 돌았다. 100여개 넘는 벤처투자자가 있고, 1000개 넘는 벤처가 투자 받았다. 15년 정도 걸려서 닷컴 버블이 다시 일어난 것이다. 소셜 섹터를 보면, 투자받은 소셜벤처가 50개쯤 된다. 1000여개 되는 투자 받은 벤처 중에서 50여개 소셜벤처를 보면, 양쪽의 기술수준이 비슷한 것은 그나마 헬스케어밖에 없었다. 이덕준 대표가 투자하는 ‘눔’에 대해, 비만이 사회적 문제라고 생각해서 투자했다고 하듯이 말이다. 나머지 소셜 섹터는 기술보다는 오히려 시장을 만드는데 훨씬 더 좌우된다고 본다. 거기에 기술을 부어 넣는다고 확장되지는 않을 것 같다. 소셜 섹터 시장이 작은데, 시장을 만드는데 우리 사회가 힘을 모으고 있지 않다고 생각한다.
이호찬:= 제가 볼 때 기술이라는 것 자체가 성격상 확장성을 기본적으로 갖고 있다. 기술의 의미가 결국은 시스템 비용을 줄인다. 최근에 만난 회사는 디지털 헬스케어 기술 회사였는데, AI(인공지능)를 이용해서 만성질환을 관리하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었다. 교육 측면에서 봐도 그렇다. 값비싼 대학교를 값싸게 전파할 수 있는 게 기술적인 플랫폼이지 않나. 기술이란 게, 임팩트를 생각하고 있지 않아도 사회 자체에 임팩트를 낼 수 있지 않나.
정재호= 처음에는 사회문제 해결하는 사회적 기업가한테 투자하겠다고 만들었다. 정부가 인증하는 사회적 기업가들을 만나보면, 개인적으로 아쉬운 부분은 저는 사회적 경제 영역이라고 영역을 구분하는 게 이해할 수 없었다. 임팩트는 더 커져야 하는데, 너무 좁게 정의하고 그쪽 문제만 해결하려는 게 아닌가 하는 고민이 됐다. 두 번째는 소셜 벤처이건 사회적 기업 인증이든 관계없이 사회적 문제가 뭔지, 역량을 보니 여러 스펙트럼이 나오더라. 기술역량, 운영역량 등이 좋은 팀을 만나게 되더라. 문제해결을 하려다 보면 이걸 혁신적으로 해야 되는데, 그때 필요한 게 결국 기술이다. 카이스트에는 대전에 가면 각 연구소에 이런 인재들이 숨어있다. 기술을 갖고 사회문제를 보는 팀에 최근에는 많이 투자하려고 한다.
이덕준= 4차산업혁명 시작시점이다. 사실상 AI테크놀로지, 드론, IoT 등 기술의 발전은 막을 수 없는 현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회에는 왜 많은 문제가 생기는가. 예전에 없던 질병들이 나오고, 비만, 사회적 불평등이 여전히 있다. 기술의 발전은 무엇일까. 왜 기술 발전이 일어나야 할까. 기술은 사회적 기업가나 일반적 기업가나 비즈니스 하는 입장에서 활용해야 하고, 스케일업하는데 필요한 툴이다. 기술의 혁신은 계속되고 있는데, 사회적 니즈와 톱니바퀴가 맞물리지 않는 측면이 있다. 미국 최대의 스타트업 투자기관인 와이 컴비네이터가 “지금까지는 헬스케어 등 여러 사회문제를 해결하는데 투자하지 못했지만, 앞으로 하고 싶다”고 밝혔다. 메인 투자자가 이걸 인지하기 시작했다. 교육, 헬스케ㅇ, 주거 불평등 등을 해소하는데 투자하겠다는 쪽으로 메인 투자자들이 반응하고 있다.
권혁태= 이 앞에 큰 돌이 있다. 이 돌을 저쪽으로 옮겨놓아야 하는데. 이 돌을 좀더 쉽게, 연속적으로 하기 위해서 그 밑에 바퀴를 다는 것이다. 이게 기술의 역할이다. 우리는 사회적기업, 소셜벤처라면 이 돌을 저기까지 옮기는데 꼭 힘들어야 하고, 땀을 뻘뻘 흘려야 한다. 굉장히 이상한 고정관념이 쌓여있는 것 같다. 저는 극단적으로 기술력을 강조하는 편이다. 이제는 지속가능성에 대해 얘기를 해보면 좋겠다. 사회적금융, 소셜벤처쪽에 들어온 지 5년쯤 됐다. 5년 전에 큰 열정을 가진 분들이 지금 다 안 계신다. 다른 일을 하고 있다. 그게 조금 더 기술이 뭔가 그걸 부어줬다면, 이 큰 돌을 옮기고, 다른 돌도 옮기면서 임팩트를 확산할 수 있지 않았을까 싶다.
이기대= 기술보다 시장이 있으면 살아남고, 시장이 없으면 살아남기 어렵다. 소셜벤처 쪽은 어차피 기술은 영리쪽에서 받아온다고 생각한다. 시민 사회나 소셜쪽에서 시작하는 분들도 있는데, 정부 보조금이 끝나면 접는 사례도 많다. 그런데 오히려 영리쪽에서 넘어온 분들은 소셜쪽을 디딤돌로 삼아 확장하고, 일반 투자를 받는 등 커나가더라. 소셜뿐 아니라 일반 영리벤처도 지원이 있다. 소셜 쪽에서 지원이 없는 게 아니라 시장이 없다. ‘시장은 창업자가 스스로 만들어야 하는 것 아닌가’라는 말을 하는데, 소셜벤처의 일은 원래 국가가 해야 하는 일이다. 작은 시장에서 경쟁적으로 싸울 게 아니라, 우리 사회에서 조금만 어려운 독거노인 등으로 서비스 확대하고 그걸 예산으로 돌릴 수 있다면 좋을 것 같다. 다음 단계로 넘어가지 못하고, 1단계에서 죽는 친구들이 많은데. 하루 빨리 시장을 만들어야 한다.
권혁태= 주변에서 국가가 해야 할 일을 왜 네가 하냐, 그런 얘기를 많이 들었다. 이기대 이사님이 말했던 데 대해서, 정재호 이사님은 반대 얘기를 해줄 수 있지 않을까.
정재호= 사회적 경제, 소셜 섹터에서 우리를 보면 ‘저기는 돈만 밝히는 것 아니냐’고 얘기한다. 반면, 일반 투자자들은 우리를 보고 ‘저기는 비영리에 투자한대’라고 한다. 양쪽에서 끼어있다. 우리는 명확하게 지속 가능한 팀에만 투자한다. 사회 문제를 해결하는 소셜벤처도 결국 돈을 벌만한 준비와 기술, 역량이 있는지로 귀결된다. 하지만 한국은 시장이 작다. 글로벌 진출을 계속 생각한다. 헬스케어 쪽을 투자 포트폴리오로 갖고 간다. 예를 들면 우리는 장애인기본권에 집착한다. 하지만 한국은 어떤 장애든 30만명을 넘지 않는다. 길게 투자수익까지 생각하다 보면 시장이 안 보인다. 최근에 투자하는 곳은 사지를 못쓰는 사람이 뇌파 이용해서 컴퓨터 활용을 하는 회사다. 이곳은 해외로 나갈 가능성이 있다. 돈을 벌어야 직원도 버티고 회사도 버티고 결국 이긴다.
이덕준= 기술이 인터넷, 이커머스(e-commercial)에서 적용되는 영역이 굉장히 확장되고 있다. 사실 이게 매우 공공적인 영역이다. 우리가 부딪히는 문제는 굉장히 크고 복잡하다. 정부 공공적인 영역인데 정부가 다 할 수는 없다. 세밀한 부분을 어떻게 할 것인가. 거기에 앙트프러너(창업가)의 역할이 있다. 우리가 투자한 프라미솝 이준호 대표님이 최근 아쇼카 펠로로 선정돼 기분이 좋은데, 그분은 장애인, 희귀난치병 환자의 치료. 데이터를 관리하는 회사를 만들었다. 예전에도 그걸 해주는 소프트웨어가 있었지만, 굉장히 효율이 떨어지고 잘 안 돌아갔다. 정부가 못하고, 안 해왔던 영역은 결국 민간이 해야 한다. 그 방식이 시장을 만드는 방식이다. 장애를 가진 분들을 시혜의 대상이 아니라 마켓(시장) 대상으로 보는 방식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권혁태= 앞으로는 조금 더 이런 쪽에 신경을 썼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있다면 공유해달라.
이호찬= 비즈니스를 시작한 동기 자체는 사회 책임이더라도, 비즈니스를 하는 그 자체가 비즈니스가 되어야 한다. 시장에서 받아들여진다는 것은 사회가 그 서비스를 인정하는 것이다. 그걸 인정 안하고 모티브만 좋다는 것은, 맞지 않다. 물론 시장실패는 정부나 공공기관이 해야 할 일이지만. 비즈니스는 비즈니스로서의 의미가 있어야 한다고 본다.
정재호= 우리는 인캠퍼스 벤처 캐피털이어서 사무실이 MBA 경영사무실에 있다. 접촉하는 곳은 마켓이나 비전 오리엔티트된 곳이 많다. 일주일에 1회 카이스트에 가면 기술에 꽂혀있는 천재들이 있다. 저의 미션은 이들을 연결하는 것이다. 시장을 잘 보는 쪽, 제품 내부를 잘 보는 쪽. 어떻게 연결 하는가. 투자하는 쪽에서 보면, 하이테크도 있고 로우테크도 있다. 이 중 시장의 니즈에 맞게 비용을 다운시킬 수 있다면, 식량, 주거, 교육, 헬스문제 등 임팩트를 낼 수 있지 않을까.
이기대= 축구 해설자가 얘기할 때 ‘공을 보지 말고 사람을 보라’고 한다. 기술도 사람 속에 녹아있다. 일반 스타트업이 확 좋아진 시기가 아이비리그가 갔던 청년이나 컨설팅 하던 청년들이 돌아와서 스타트업으로 들어왔다. 이 친구들이 스타트업쪽으로 넘어가면 달라질 것이다. 최소한 플랫폼으로 뭔가 만들려는 팀이 늘 것이다. 경제성장이 지체되고, 복지 영역으로 정부가 돈을 풀기 시작하면 소셜 섹터 쪽도 달라질 것이다.
질의응답= 벤처캐피털에서는 기술의 잠재성을 보고 투자하는데, 개발당사자들은 이 기술은 어떤 용도로 쓰이는지에 대한 사고의 프레임이 있다. 기술기업들이 기회를 못 찾는 이유가 기업의 경영진이 바라보는 시장이 어느 한군데 갇혀있다. 듀퐁사가 나일론을 개발했을 때는 실크를 바꿀 것으로만 생각했지만 실제 시장은 다른 데서 생겼다. 라이선스를 풀었다. 타이어 코드도 개발되고, 낚시줄로 개발될지 전혀 생각 못했다. 구글이 검색엔진을 개발할 때.. 정말 쓸데없는 결과가 나오는 검색결과가 안 나오도록 하면 좋겠다고 생각했듯이 말이다.
이호찬= GPS의 아버지가 만든 회사에 투자했는데, 망했다. 기술만 좋다고 되지는 않는다. 보드미팅에서 시장에서 기회를 찾을 수 있도록 푸시한다. 우리도 기술이 가진 의미를 보고 투자한다. 회사에 투자했을 때, 기술이 생각한 만큼 안 나올 때 매니지먼트와 함께 해결하려고 노력한다.
권혁태= 핵심기술을 가진 기업이 있는데, 구글 무인자동차에 적용한다고 하더라. 정말 기술은 좋은데 어플리케이션까지 가는데 너무 오래 걸릴 것 같았다. 새로운 적용방법을 찾다가 산업용 드론으로 이동했다. 산불을 끄고 인명을 구조하는 드론은 많이 만들어지고 있는데, 어디 부딪혀서 다 망가진다. 우리는 그 대표님과 같이 아주 작고 싸게 만들어서 드론에 적용해보자. 시장이 넓어지고 커진 경험이 있었다. 그런 게 벤처캐피털의 역할이 아닐까 싶다. 얇고 넓게 본다.
정재호= 우리는 19개 포트폴리오가 있는데 절반 이상이 공동투자다. 각자 전문분야를 갖고 제품과 시장의 핏(fit)을 맞추려고 한다. 협력하다 보면 좋아질 것이다.
이덕준= 기술은 툴이라고 생각한다. 사업이 성공하기 위해서 기술만 있어서는 안되고, 제품과 시장이 잘 맞아야 한다. 모든 벤처기업에 다 적용이 될 수 있다. 기술이 사회적인 미션과 어떻게 결합이 될 것인가. 미션은 내가 처음부터 갖고 태어났다는 분도 있겠지만, 하다 보니 어떤 계기에 의해 찾아지는 경우도 있었다. 임팩트 투자하는 입장에서는, 어떻게 하면 우리가 사회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방향으로 앙트프러너십을 이용하면 좋을까 늘 생각한다. 그렇게 되면 전체 생태계가 좋아지지 않을까 싶다. 벤처스타트업 생태계가 사회적인 이슈로 이노베이션이 되는 방향으로 만들어가면 좋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