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6일(금)

[조선일보 더나은미래·초록우산어린이재단의 ‘기쁜 기부, 해피플’ 캠페인] ③ “기부는 마약 같아… 기쁨 알면 멈출 수 없죠”

조선일보 더나은미래·초록우산어린이재단의
‘기쁜 기부, 해피플’ 캠페인(3)

친구 제안으로 시작한 나눔,
25년째 이어와 회사 매출 1% 나눔…
‘기부의 달인’으로 불려

유종국 솔로문산업(주) 대표
유종국 솔로문산업(주) 대표

“너무 찾고 싶은 친군데, 찾을 길이 없네요.” 지난 2일, 서울 중구의 초록우산어린이재단(이하 어린이재단)에서 만난 유종국(60·사진) 솔로몬산업㈜ 대표가 안타까운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나눔이고 기부고 전 그런 게 있는 줄도 몰랐어요. 아등바등 살기도 힘들었죠. 그때 제게 나눔을 알게 해준 친구였어요. 내 인생 이야기를 듣더니 함께 어린이를 돕자고 했죠.” 1991년의 일이다. 유 대표의 인생이 바뀐 시점이기도 하다. 유 대표는 “진짜 고마운 친구”라고 몇 번이고 강조했다. 은인을 찾을 순 없지만, 보답할 길은 있다. 자신도 누군가에게 ‘그 맛’을 알게 해주는 것이다. “제가 후원자로 끌어들인 사람들도 훗날 저한테 큰 은혜를 느낄 거예요(웃음). 제가 지금 그 친구에게 그런 것처럼요.” 유대표가 기부 중독자에 더해 나눔 전도사라는 별칭을 얻게 된 이유다.

◇25년간 기부 손길 이어온 ‘기부의 달인’

유종국 대표의 삶에서 ‘기부’라는 두 글자의 비중은 크다. 1991년에 처음 시작한 이래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끊긴 적이 없는 어린이재단 정기 후원은 월 10만원까지 금액이 늘었고, 2005년부터는 자신이 운영하는 회사 매출액(현재 약 50억)의 1%를 기부하고 있다. 모교인 강원도의 속초중학교와 재단법인 금강장학회를 통해서도 매년 장학금을 지급하며 고향 후배들을 챙긴다. 발달장애인인 딸이 다녔던 밀알학교(밀알복지재단)에서 후원과 봉사를 한 지도 5년이 넘었다. 올여름엔 자신의 후원 인생 25주년을 맞아 결식아동 25명에게는 방학 기간 급식비를, 가정 형편이 어려운 25가정에는 휴가비를 지원하는 기념일 기부를 직접 기획하기도 했다.

1997년 IMF외환 위기 당시 사업이 망해 신용 불량자 신세가 됐을 때도, 회사가 어려워 몇억원 빚에 쪼들릴 때도 그는 정기 후원을 끊지 않았다. 2005년 한쪽 눈의 시력을 잃는 사고를 겪었을 때는 오히려 ‘매출액 1% 기부’라는 미션을 새로 새우기도 했다. 출퇴근 시간을 아끼기 위해 집을 회사 근처인 경기도 안양으로 옮기고도 매일 새벽 6시 반에 출근할 정도로 일에 몰두하는 이유도, 매출을 늘려야 기부액도 늘기 때문이란다. “기부는 마약 같아요. 기쁨을 알면 멈출 수가 없죠. 제가 가장 다행스럽게 생각하는 건 아무리 어려운 순간이 와도 기부를 포기하지 않았다는 겁니다.”

◇절망 속에 허덕이던 어린 시절, 나눔의 동력 되다

유 대표가 가진 나눔 엔진의 동력은 어린 시절에서 찾을 수 있었다. “아무리 힘든 때가 와도 ‘그때보다 어려울까’ 싶은 생각을 하면 버텨낼 수 있었죠.” 그는 지독히도 불우한 청소년기를 보냈다. 어머니는 항상 병상에 있었고, 아버지는 술로 매일을 보냈다. 하나뿐인 형은 전쟁통에 한 손을 잃었다. 가장 역할은 자연스레 그에게로 넘겨졌다. 중학교도 졸업하기 전의 일이다. 여섯 식구를 먹이고 두 동생의 뒷바라지를 해야 했다. 오리농장부터 음식물 하역 처리장까지 전전했고, 한 달 넘게 오징어 배를 타기도 했다. “그 시절 한겨울에 밤새 무릎을 꿇고 생선을 걷어 올렸어요. 바닷바람 쌩쌩 부는 바다 한복판에서요. 그래서인지 지금도 무릎이 아픕니다.” 서러운 마음에 쥐약까지 먹어 봤다고 한다. 유 대표는 “죽지는 못하고, 3일 정도 죽을 듯이 고생만 하더라”고 했다.

그랬던 그가 동생들을 모두 공부시킨 후 뒤늦게 검정고시에 붙고 도전한 직장이 바로 봉사단체 ‘한국라이온스클럽’이었다. 지난 1959년에 만들어진 1세대 자선단체다. “돈이 없으면 몸으로 때워서라도, 우리나라 사람들을 지긋지긋한 가난에서 벗어나게 하고 싶었다”고 했다. 지금은 어엿한 사업가이지만, 그 시절의 고난과 절망, 상처를 잊었을 리 없다. 그런 그에게 기부는 상처 치료제였다. “후원해 오고 있는 아이 중 예은이가 있어요. 시각장애를 가졌는데도 피아노 치는 실력이 뛰어나죠. 세계적인 피아니스트가 되겠다는 의지도 대단합니다. 어려운 상황에서도 작은 손길만 있으면 그들은 밝게 변해요. 꿈을 키우면서 행복해하죠. 그 모습에 제 상처가 치유됩니다.”

◇나눔의 기쁨 함께하고 싶어, 후원자에서 모금가로

유종국 대표는 지난 2011년부터 초록우산어린이재단 서울후원회 회장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후원자에 그쳤던 그의 역할도 점점 펀드레이저(fundraiser·기부 모금 전문가)로 변해간다. “후원자 개발은 기존 후원자들이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얼마나 좋은 세계인지 가장 잘 알거든요. 많이 전파하고, 동참시키는 게 저를 포함한 후원자들의 역할이죠.” 그의 목표는 현재 30만명 정도인 후원자를 100만명까지 늘리는 것. 유 대표는 후원회장으로 위촉된 이후 ‘콤스포럼'(민관 합동 창조경제인 모임) 부회장, 벤처기업협회 부회장 등의 요직을 자처하며 네트워크를 넓혔다. 주위 기업 임원들에게 개인 후원을 독려하고 후원자 개발을 해온 게 어느덧 5년째다. “5년 동안 같은 이야기를 하니, 이제 도와주겠다는 중소기업 사장님이 많아요(웃음). 후원회 임원이 된 사람이 있는가 하면, 어떻게 하면 매출액 기부에 동참할 수 있느냐 묻기도 합니다.”

◇어려운 아이들에게 영원한 ‘부자 아빠’ 되어 줄 것

그의 철학은 ‘부자가 베푸는 게 아니라, 베푸는 자가 부자’라는 것이다. 유 회장의 나눔과 봉사는 자연히 자녀들에게도 이어졌다. “딸은 장애로 몸이 불편한데도 어릴 적부터 내가 봉사활동을 갈 때면, 먼저 따라 나섰죠. 아들 녀석은 사회복지학 석박사 과정(서울대)을 마치고 장애인들의 심리상담가로 일하고 있습니다.” 그는 “아이들이 내 나눔DNA를 닮은 것 같다”며 환한 웃음을 보였다. 유 대표는 스스로가 베푸는 가운데 축복을 받은 ‘산증인’이라고 했다. “창업을 하면서 매출 1% 기부를 스스로 약속했는데, 초창기 2~3년은 계속 적자였어요. 나누고 싶어 최선을 다했는데, 3년 차부터 매년 10억, 20억씩 매출이 올랐죠. ‘베풀면 축복으로 돌아오는구나’ 하는 것을 절실하게 느꼈죠. 더 열심히 할 겁니다. 평생을 가난과 씨름하는 아이들에게 ‘부자 아빠’가 되어줘야 하니까요.”

※조선일보 더나은미래와 초록우산어린이재단은 기념일 혹은 특별한 날에 기부를 실천하는 문화를 확대하고자 ‘기쁜 기부, 해피플’캠페인을 진행한다. 해피플은 ‘해피(Happy)’와 ‘피플(People)’의 합성어로, 기쁜 기부를 실천하는 이들을 말한다. 참여문의는 초록우산 어린이재단 대표번호(1588-1940)로 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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