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19일(금)

[Cover story] ‘가야금병창 인간문화재’ 꿈꾸는 소녀 은진이

“생활비 때문에 전단 돌리지만 괜찮아요, 제겐 꿈이 있으니까요”
굳세어라, 은진아

가야금 열두 줄 위로 오른손이 춤을 췄다. 왼손은 천천히 현을 짚었다. 구성진 가야금 가락에 맞춰 열다섯 소녀 은진(가명)이는 가야금병창곡 ‘고고천변’을 불렀다. ‘고고천변’은 판소리 ‘수궁가’에 나오는 곡 중 하나로, 자라가 용왕의 약을 구하기 위해 육지로 나왔을 때 처음 본 세상의 아름다움을 노래한 곡이다. 맺고, 풀고, 꺾는 판소리 가락 속에 은진이는 어느새 자라가 되어 있었다. 난생처음 뭍에 오른 자라처럼 목소리에 어떤 경이로움이 묻어났다.

“가야금병창 인간문화재가 되겠다”고 말하는 아이에게 현실은 그리 녹록하지 않다. 전단을 돌리며 생활비를 벌고 무대에 설 한복은 친구에게 빌려 입는다. 그래도 무대에 선 아이에게서는 빛이 났다. 자신의 꿈을 향해 당차게 걸어가는 아이에게 박수를 보낸다.
“가야금병창 인간문화재가 되겠다”고 말하는 아이에게 현실은 그리 녹록하지 않다. 전단을 돌리며 생활비를 벌고 무대에 설 한복은 친구에게 빌려 입는다. 그래도 무대에 선 아이에게서는 빛이 났다. 자신의 꿈을 향해 당차게 걸어가는 아이에게 박수를 보낸다.

“무대가 너무 좋아요. ‘우리 것’인 전통 음악과 한복도 좋고요.”

은진이는 잇달아 네 곡을 부르고서야 무대에서 내려왔다. 숨이 차오를 법도 하건만, 눈빛에 흔들림이 없었다. 목소리에는 강한 확신과 자부심이 느껴졌다.

은진이가 ‘가야금병창’을 처음 배운 건 초등학교 4학년 때 ‘방과후교실’에서였다. 일주일에 두 번 1시간씩 배우는 게 전부였지만 처음부터 가야금병창에 푹 빠져들었다. 소질도 빼어나 1년 4개월 만에 전남도지회 주최 전국학생음악경연대회에서 개인 일등을 차지했다.

“대회에서 입상한 후에 가야금병창을 평생 업으로 삼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그때부터는 내내 ‘더 제대로 배우고 싶다’는 생각만 했어요.”

당시 어려운 집안형편을 몰랐던 은진이는 ‘레슨받고 싶다’며 엄마를 졸랐다. 은진이를 가르치던 선생님도 부모님에게 “은진이는 정말 소질이 있다”며 “레슨비를 조금만 받아도 좋으니 꼭 가르쳐보고 싶다”고 말했다. 은진이는 결국 1시간에 5만원을 내고 다른 친구들보다 저렴하게 개인 레슨을 받게 됐다. 친구들이 방과 후에 분식집에 들러 수다를 떨며 놀 때 은진이는 밥도 거르며 연습을 했다. 개인 레슨에서 배운 것은 테이프에 녹음해두고 듣고 또 들었다. 나중에는 그 긴 노래를 술술 외울 정도가 되었다. 하지만 그마저도 오래 할 수 없었다.

은진이가 6학년이 됐을 때 엄마는 “개인 레슨을 그만두면 안 되겠냐”고 말하며 눈물을 보였다. 유방암에 걸려 수술을 받고 임파선을 제거한 엄마는 일만 하면 한쪽 팔이 퉁퉁 부어올랐다. 기초생활수급자로 지정되어 받는 월 70만~80만원의 정부보조금으로는 은진이나 언니 은선(가명)이의 학비와 생활비조차 감당하기 힘들었다. 이혼한 아빠와는 이미 연락이 끊긴 지 오래였다. 은진이의 엄마 김명숙(가명·47)씨는 “돈도 많이 들고 길도 좁은 국악 공부를 계속 시키는 게 너무 걱정됐다”라고 당시의 심정을 전했다.

개인 레슨은 그만뒀지만 좋아하는 국악까지 관둘 수 없었던 은진이는 매일 혼자서 연습을 했다. 은진이를 가엾게 여긴 이모들은 돈을 모아 가야금을 한 대 사주었다. 은진이는 “그 가야금을 가지고 주말에는 4~5시간 쉬지 않고 가야금을 뜯고 노래를 불렀다”고 말했다. 그렇게 혼자 연습한 시간이 2년이었다.

그런 은진이에게 올해 초 좋은 일이 생겼다. 국제구호개발 NGO인 월드비전이 특별한 재능이 있는 아이들에게 주는 ‘나눔지원사업’ 장학금을 받게 된 것이다. 은진이는 한 달에 6시간씩 개인 레슨을 받을 수 있게 됐다.

하지만 엄마는 여전히 은진이가 국악 공부를 하는 것을 반대했다. 개인 레슨을 받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걸 잘 알기 때문이다. 국악은 공연의상·대회참가비 등 추가로 드는 비용이 많다.

엄마의 마음이 돌아선 것은 지난 5월 호남 지역에서 가장 큰 청소년 예술 대회인 ‘호남예술제’에서 은진이가 하는 공연을 보고 나서다. 김씨는 “처음으로 은진이의 공연을 봤는데 ‘내가 더 이상 말릴 수 있는 것이 아니구나’라는 생각을 했다”라고 고백했다. 무대 위에 선 딸에게선 빛이 났다. 아니나 다를까 은진이는 그 대회에서 당당히 금상을 거머쥐었다. 개인레슨을 다시 시작한 지 4개월 만이었다.

인터뷰를 위해 찾아갔을 때 은진이는 다음 날 복지관에서 있을 공연을 준비하는 중이었다. 리허설 때문에 주홍빛 한복치마와 분홍색 저고리를 차려입고 머리를 곱게 땋고 있었다. “한복이 너무 예쁘다”고 말하자 치마를 한 번 쓰다듬으며 “친구한테 빌린 건데요, 뭐”라고 말한 다음 ‘씩’ 웃었다. 올해 은진이는 길거리에서 전단까지 돌리며 돈을 벌었다. 그러나 그 돈은 고스란히 생활비에 들어갈 뿐, 한 벌에 60만원이 넘는 공연 의상을 사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대회에 나가거나 공연이 있을 때는 친구나 아는 언니에게 항상 한복을 빌려 입는다. 은진이는 “저도 자존심이 있는데 친구들한테, 그것도 같이 국악하는 친구들한테 아쉬운 소리 하며 빌리고 싶진 않죠. 하지만 무대에 설 수만 있다면 괜찮아요”라고 말했다.

은진이는 지난 11월 광주예술고등학교 국악과에 수석으로 합격해 내년 3월 입학을 기다리고 있다. 입학우수자에게는 3월 중순에 선배들과 공연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

김씨는 “이번 공연에 입을 은진이 한복만큼은 꼭 사주고 싶다”고 말했다. “예고는 피아노를 치고 녹음해서 메일로 보내는 숙제를 자주 내준다고 하더라”면서 “은진이는 녹음기도 없는데 그건 또 어떻게 해야 할지 걱정이다”라고도 했다.

그러나 은진이는 꿋꿋했다.

“저는 한국예술종합학교 국악과에 갈 거예요. 나중에는 ‘국립창극단’에 들어가서 공연을 하고 인간문화재도 될 거예요.”

꿈을 이야기할 때의 은진이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어 보였다. 그러나 그 이유를 묻자 여느 열다섯 소녀와 다른 현실적인 답변을 했다.

“좋은 곳에 소속돼 있어야 그다음 일도 할 수 있어요. 공연도 무척 중요하지만 ‘직장’도 필요해요.”

좋아하는 국악을 하기 위해 길거리에서 전단을 돌려본 적 있는 소녀만이 할 수 있는 말이었다.

“착한카드 가입만 해도 은진이를 도울 수 있어요”
‘착한카드'(good.chosun.com)에 가입하는 것만으로도 은진이를 도울 수 있습니다. 한 사람이 가입할 때마다 1만원이 적립되어 은진이를 포함, 비슷한 처지의 아이들에게 지원됩니다.

직접 은진이의 교육비(공연용 한복, 악기와 MP3 플레이어 등 수업 준비물을 마련하는 데 드는 비용)를 지원하고 싶으신 분은 월드비전(02-2078-7000, www.worldvision. or.kr)으로 연락하면 됩니다.

광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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