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5일(목)

젊은이들로 북적북적… 제2의 부흥기 여는 전통시장

서울형 新시장 모델

사람들 어깨를 스치지 않고선 지나치기도 힘든 좁은 시장통, 상인들 목청이 갈수록 높아졌다.

“몸에 정말 좋은 미숫가루가 하나 남았어요!” “한 번밖에 안 입은 옷인데 싸게 드릴게~.” “액자 1000원! 피규어 500원!”

서울 성북구 정릉동에 위치한 ‘정릉시장’. 시장 아래 흐르는 정릉천(貞陵川)을 따라 길게 늘어져 있는 ‘개울장’의 풍경이다. 일종의 ‘시장 속 시장’ 개념인 개울장은 지난해 9월부터 시작된 토요장터(2·4주 토요일 개최)다. ‘서울형 신(新)시장 모델’ 시범사업의 일환으로, 서울시가 침체돼 가는 전통시장을 활성화시키기 위해 진행하고 있다.

정릉천을 따라 100m가량 펼쳐진 정릉시장 ‘개울장’의 전경. 매월 2·4주 토요일에 열리는 개울장은 벼룩시장, 아트마켓, 문화예술 공연 등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지역 주민들의 호응을 얻고있다. /강연우 더나은미래 청년기자
정릉천을 따라 100m가량 펼쳐진 정릉시장 ‘개울장’의 전경. 매월 2·4주 토요일에 열리는 개울장은 벼룩시장, 아트마켓, 문화예술 공연 등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지역 주민들의 호응을 얻고있다. /강연우 더나은미래 청년기자

지난 11일 오후 찾은 이곳은 시장이라기보단 커다란 문화 놀이터에 가까웠다. 개울가에 마련된 공연장에선 인디밴드 ‘마리슈’팀, 거리 공연을 주로 하는 재즈팀 ‘더 뉴 재즈밴드’ 등의 음악이 끊이질 않았다. 개울장 끝에 위치한 ‘개울놀이터’에선 튜브를 두른 아이들의 물놀이가 한창이었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파랑병원’이라고 이름 붙여진 부스. 파랑병원은 ‘병원놀이’를 콘셉트로, 사람들의 지친 마음을 춤과 노래, 상담 등을 통해 치료해 주는 예술 단체다. 시퍼런 눈 화장에 상·하의 모두 파랗게 차려입은 이들이 손님들을 맞았는데, 때론 익살스럽게, 때론 진지하게 처방전을 제시했다. 소심한 어린이가 오면 “간이 뻥튀기 돼서 엄청 커질 거야”라는 말과 함께 뻥튀기 한 봉지를 처방해주는 식이다. 파랑병원 관계자는 “기력이 떨어진 어르신에겐 시장 내 정육점에서 바꿀 수 있는 소꼬리 교환권을, 취업이 힘든 청년이 오면 치킨집에 가서 치킨과 맥주로 바꿀 수 있는 교환권을 준다”고 설명했다.

누구나 쉽게 참여할 수 있다는 것은 이 장터의 가장 큰 매력이다. 집에서 가져온 장난감이나 액자, 문구류를 팔고 있던 박연수(10·서울 성북구)양은 “처음엔 부모님 손을 잡고 구경 왔었는데, 시장이 재밌는 것 같아서 친구들과 같이 판을 펼쳤다”며 미소를 지었다. 초기에 40개팀 정도가 참가했던 개울장엔 현재 100여개 팀이 함께하고 있다.

시장은 자연스레 젊어지고 활기가 넘친다. 실제로 시장 살리기에 동참하려는 젊은이들도 늘고 있다. 정릉시장 내 잡화점 ‘어느 정도의 빈틈’을 창업한 박동염(29·전 협동조합 성북신나 조합원)씨, 이 시장을 새로운 기반으로 활동하는 ‘K2인터내셔널'(학교·사회에 적응하지 못하는 젊은이들의 자립 기술을 돕는 단체)이 대표적이다. 기존 상인들은 신선하다는 반응이다. 1977년부터 양복점을 해온 김태영(65)씨는 “개울장이 열리고 젊은 친구들이 왔다 갔다 하니까 분위기가 훨씬 좋아졌다”고 했다. 김영현 정릉시장 단장은 “지난해 초만 해도 주변 대형 마트 등에 밀려 을씨년스럽기까지 했는데, 1년여 만에 생기를 찾았다”고 말했다.

새로운 시도로 제2의 부흥기를 꾀하고 있는 곳은 정릉시장만이 아니다. 서울시는 2014년 8월부터 정릉시장을 비롯해, 서대문구 영천동의 영천시장, 강동구 길동의 복조리시장, 도봉구 창동의 신창시장, 관악구 신림동의 신원시장 등 5개 시장을 선발해 활성화 가능성을 시험하고 있다. 영천시장은 어린이를 주제로 먹거리·시장 체험, 유아 플리마켓(Flea market·벼룩시장) 등을 운영하고 있으며, 신원시장에서는 시장 내 가게들이 협력해 품목별로 공동 판매를 도모하는 마케팅 모델이, 신창시장에서는 전통시장과 사회적기업가와의 컬래버레이션(Collaboration·협업)이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1년이 채 되지 않았지만 가능성은 곳곳에서 확인되고 있다. 지역 내 전통시장을 통합해 신개념 배송 시스템을 선보이고 있는 길동 복조리시장이 대표적이다.

“시장 물건은 가격이나 크기, 성격이 천차만별이라 배송이 원활치 않아요. 고객 수요도 별로 없어서 한 개 시장에서 배송센터가 제대로 돌아가기 힘들었죠. (서울시 시범사업으로) 인근 5개 전통시장을 통합한 ‘광역배송센터’를 설립하고, 차량과 배송 기사 등을 지원받았는데 6개월 만에 배송 건수가 4배나 늘었습니다. 장 보기 편리해졌다는 입소문이 돌면서 시장을 찾는 손님도 늘었고요.”(김승일 길동시장 단장)

서울시는 이번 시범사업으로 개발된 시장 활성화 모델을 2020년까지 서울 시내 100개 시장까지 확대할 계획이다. 정상택 서울시 소상공인지원과장은 “시장과 고객, 마을을 잇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통해 전통시장을 지역 경제 중심지로 발전시킬 계획”이라고 밝혔다.

최태욱 기자

강연우·정영균·윤선훈 청년기자(청세담 3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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