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3월 30일(토)

“제가 죽인 지렁이만 1톤… 커피·한약재 먹인 지렁이로 유기농 비료 만듭니다”

친환경 농업에 도전한 사회적기업 ‘삼사라’ 박건태 대표

화려한 스펙과 IT 기술을 활용한 아이디어로 넘쳐나는 청년 사회적기업·소셜벤처 업계에 ‘지렁이에 미친 친환경 비료 회사’를 만드는 이색 청년이 있다. 친환경 비료를 만드는 (예비)사회적기업 ‘삼사라’ 박건태(30·사진) 대표다. 사단법인 스파크가 매월 마지막 주 수요일 소셜 이노베이터들을 초청해 전문가 패널과 참가한 청중이 함께 대담을 나누는 ‘스파크포럼’을 마련하는데, 그곳에서 그의 이야기는 화제가 됐다. 경영학과 출신의 이색 농업 도전기가 궁금해 직접 경기도 용인의 제조 공장을 찾아갔다.

“제가 죽인 지렁이만 1톤(t)이 넘을 거예요.”

박건태 대표가 공장 한편에 놓인 길쭉한 나무 상자를 보며 말을 이었다. “저게 지렁이 집이거든요. 저에게는 장사 밑천이고요.(웃음)”

미상_사진_사회적기업_박건태대표_2015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완장리 마을에 위치한 이곳은 친환경 비료를 만드는 공장이다. 그런데 비료 공장 특유의 악취가 없었다. 660㎡(200평) 규모의 공장 안은 쌉싸름한 커피 향과 은은한 한약 내음이 감돌았다. 동네 주민들이 “퇴비 냄새 못 맡았는데, 우리 마을에 퇴비 공장이 있었냐”고 반문할 정도. 공장 분위기만큼 깨끗한 게 여기서 만들어지는 퇴비 제품이다.

“2011년 유럽 전역을 휩쓸고 30여 명의 목숨까지 앗아간 바이러스가 있었는데, 원인이 오염된 퇴비에서 자란 오이로 지목됐죠. 가축의 변을 이용한 퇴비에는 사람에게 나쁜 영향을 주는 대장균이 포함될 수 있거든요. 그런데 지렁이는 달라요. 소화 과정에서 유해균을 분해하죠. 지렁이가 커피 찌꺼기와 한약 찌꺼기를 먹으면 친환경 비료 ‘분변토(지렁이 배설물을 이용해 만드는 자연 발생적 천연비료)’를 만들어 냅니다.

인도어로 ‘순환’이라는 뜻을 가진 ‘삼사라’가 첫 발을 내디딘 건 2012년. 시작은 단순했다. 환경 다큐멘터리를 보던 박 대표가 ‘지렁이에게 쓰레기를 먹이면 비료가 나온다’는 걸 처음 알고 이를 사업화했던 것. “재료비도 안 들고 비싸게 팔 수 있겠다, 수익성이 좋겠다는 간단한 생각에서 시작했죠.

하지만 생각처럼 순탄하지 않았다. 온갖 쓰레기를 다 먹여봤지만, 지렁이들은 버텨내지 못했다. 수십만 마리의 지렁이가 죽어나갔다. 지렁이 사체(死體) 때문에 날파리와 해충들이 꼬이는 걸 본 어머니는 지렁이를 밖에 던져버리기까지 할 정도였다. 결국 집에서 나와 사무실까지 얻어야 했다. 하루 7시간씩 쪼그리고 앉아 지렁이를 알아갔다. 6개월의 실험 끝에 발견한 게 커피와 한약재였다. 대량으로 균일하게 배출되는 데다, 오염에도 자유로운 ‘먹잇감’이었다. 그 길로 커피숍과 한약방을 뒤졌다. 지금은 한 제약회사 공장에서 한약재를, 더치커피 공장에서 커피 찌꺼기를 수거한다. 지렁이가 잘 먹을 수 있는 ‘온도점’을 찾는 것도 필요했다. 찌꺼기를 약처럼 정성스레 달이는 날이 몇 달이고 계속 됐다. 그렇게 꼬박 2년. 분변토는 물론, 여기에 영양분을 더한 배양토 2종이 완성됐다.(삼사라의 제품은 모두 지난해 ‘유기농 인증’을 받았다.)

미상_사진_사회적기업_지렁이친환경비료_2015

영업은 더 큰 ‘맨땅의 헤딩’이었다. 총판에 가서 거절당하고 또 부탁하고, 몇 번을 반복해서 3곳을 뚫은 게 첫 시작이었다. 지난해 3월, 첫 결실이었다. 입소문이 나자 영업은 점점 쉬워졌다. 작년 매출은 2억원. 올해 목표는 5억원이다.

삼사라는 지금까지 3번 창업대회를 나가 3번 모두 입상했다. 2012년 ㈜쿨리지코너인베스트먼트가 주최한 ‘청년기업가 창업경진대회’에 출전했을 당시, 담당자였던 오진석 쿨리지코너인베스트먼트 과장은 “대부분의 창업팀이 어플리케이션만 얘기하던 차였는데, 갑자기 젊은 사람이 지렁이와 농업 얘기를 하니까 눈길이 가더라”며 “전문가 못지않은 지식과 열정에 모두들 놀랐다”고 회상했다.

박 대표는 여전히 개발 ‘삼매경’에 빠져 있다. 최근에는 화초, 블루베리 등 식물별로 다른 거름 8종류를 출시했다. 액체로 만든 분변토도 출시를 앞두고 있다. 박 대표는 “액체 비료는 특히 골프장에서 유용할 것으로 보이는데, 골프장의 환경오염을 줄이는 데도 크게 공헌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많은 도움을 받은 만큼, 이젠 ‘도움주는 기업’이 되고 싶은 욕심도 크다. 지난해에는 옥상 유휴지를 텃밭으로 개발하는 ‘파릇한 젊은이 협동조합’에 5t 차량 2대 분량의 비료(도매가 1000만원 상당)를 30%의 금액만 받고 기부했다. 올해는 대학생들이 유휴지에 꽃을 심는 ‘게릴라 가드닝’ 활동에 비료나 모종을 무료로 후원할 계획이다. 자타공인 ‘지렁이 박사’로 통하는 박 대표는 “지렁이를 통해 얻은 교훈도 있다”고 했다.”빚진 게 많습니다. 하지만 저는조금씩 천천히 갚아나가고 싶습니다. 마치 지렁이가 앞으로 나아가듯 말이죠.(웃음)”

용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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