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3월 29일(금)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장애인 대학생 학업지원 부족

점자 컴퓨터도 필기 부탁할 친구도 없는 게 우리 현실

#1. 지난해 서울 소재 한 대학교에 합격한 청각 장애인 김모(22)씨는 입학하자마자 찾은 장애학생지원센터에서 절망적인 소식을 접했다. “청각 장애인 학생 두 명부터 지원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학교에 지원하기 전 김씨는 장애학생지원센터가 설치돼 있는지부터 확인했었다. 수차례 지원을 요청했지만 “예산이 없으니 기다리라”는 답변뿐이었다. 끝내 김씨는 직접 수업을 대필해줄 친구를 구하거나 교수님의 입 모양을 보며 수업을 쫓아가야 했다. 김씨는 올해 학교에 휴학계를 제출했다. “더 이상 다닐 엄두가 안 나더라고요.”

#2. 지방 국립대를 다니는 시각 장애인 이지훈(가명·25)씨는 장애학생지원센터 때문에 오히려 피해를 봤다. 시험 기간 중 교수님께서 점자 컴퓨터 사용을 허락했지만, 센터 담당자들이 이를 막은 것이다. 이씨는 “점자 컴퓨터를 통해 부정행위를 할 수 있는 가능성만 차단하면 되는데, 센터 담당자들이 장애 학생들이 이용하는 장비를 잘 모르다 보니 아예 이용 자체를 못하게 했다”고 설명했다.

장애인 대학생 수가 1만 명에 가깝지만 이들을 지원하는 장애학생지원센터의 전문 인력은 턱없이 부족한 상황. 이로 인해 학생들의 정당한 교육받을 권리가 침해되고 있다. /조선일보 DB
장애인 대학생 수가 1만 명에 가깝지만 이들을 지원하는 장애학생지원센터의 전문 인력은 턱없이 부족한 상황. 이로 인해 학생들의 정당한 교육받을 권리가 침해되고 있다. /조선일보 DB

◇지원센터 ‘인력 부족’ ‘전문성 결여’…학생들만 ‘이중고’

장애 대학생들에게 전문적이고 체계적인 지원을 하기 위해 마련된 ‘장애학생지원센터’. 지난 2008년 ‘장애인 등에 대한 특수교육법’상 대학교 내 장애 학생이 10인 이상일 경우 의무 설치토록 됐지만, 규정이 마련된 지 10년이 가깝도록 센터는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장애 대학생이 100명 가까이 되는데 장애학생지원센터 직원은 한 분뿐이었다. 이분마저 1년 계약직인 탓에 매년 장애 학생들은 낯선 담당자에게 또다시 자기소개를 되풀이해야 했다.”

지체 장애 대학생인 이모(26)씨가 학교 장애학생지원센터를 꺼리는 이유다. 교육부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장애 대학생 수는 8271명. 2010년부터 평균 10%가량 증가하는 추세지만 전국 장애학생지원센터의 평균 직원 수는 지난 3년간 한 명을 넘지 못하고 있다. 이 적은 인원마저 대부분 장애 학생 업무를 전문 전담하는 것이 아닌 다른 일반 행정 업무와 겸직한 상태다. 서울 소재 한 대학교 관계자는 “보건실, 학생상담실, 장애학생지원센터 3개까지 맡는 직원도 있다”며 “학교 측에서 장애 학생이 몇 안 되다 보니 겸직을 시키고, 결국 장애 학생들에 대해 솔직히 전문적이고 집중적인 지원을 못 한다”고 전했다.

인원 부족과 전문성 결여로 인한 피해는 오롯이 장애 학생들의 몫이 되고 있다. 이지훈 학생은 “장애 학생 도우미 신청 기간을 놓쳐 장애학생지원센터를 찾아가 도움을 청했지만 지원해줄 수 없다고 해서 한 학기 내내 친구들의 도움으로 겨우 학교에 다녔다”며 “다음 학기에 지원을 신청하니 도우미 없이도 잘 다니지 않았느냐고 해서 담당 직원과 크게 싸웠다”고 했다. 김형수 장애인학생지원네트워크 사무국장은 “장애 학생에 대한 전문적인 지원 부족으로 대학과 인권위 제소나 소송과 같은 갈등을 빚고 있는 사례가 늘고 있다”고 지적했다.

◇버클리대, 장애 학생 지원 담당자만 30여명

세계 최대의 장애 복지 시설을 갖췄다고 평가받는 버클리대는 장애 학생 지원을 담당하는 인력만 30여명이다. 스웨덴에선 장애 학생이 장애로 인해 강의를 따라갈 수 없다고 판단되면 학기가 시작하기 전 학과장과 담당 상담자가 상의해 교과과정을 변경하기도 한다. 선진국에서만 실현 가능한 얘기일까. 9년째 서강대 장애학생지원센터에서 근무하고 있는 정연희 센터장은 “학생이 휠체어를 타고 다니기에 불편할 경우 사진을 찍어 보내면 사진을 바로 해당 시설 팀장과 담당 과장에 첨부해 보내 개선토록 한다”면서 “장애 학생 1명을 키우기 위해서는 10여개 부서의 상호 협조가 이뤄져야 한다. 그 컨트롤 타워가 장애학생 지원센터다”고 설명했다.

강병호 전국대학교 장애인학생지원협의회 회장은 “장애에 관한 기본적인 소양을 갖춘 인력을 채용토록 하고, 잦은 담당자 교체를 해결할 필요성을 교육부와 협의해 대학 기관장들에게 인식시킬 계획”이라고 밝혔다.

관련 기사

Copyrights ⓒ 더나은미래 & futurechosun.com

전체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