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19일(금)

왜 청춘들에게 ‘열정 페이’를 요구하는가

청년 노동문제 활동가 3인 좌담회
구교현 “알바도 또 하나의 직장”
정준영 “블랙기업 지표 개발할 것”
배트맨D “해외처럼 제도적 안전장치 필요”

(위부터) 정준영 청년유니온 정책국장 / 배트맨D 패션노조 대표 / 구교현 알바노조 위원장
(위부터) 정준영 청년유니온 정책국장 / 배트맨D 패션노조 대표 / 구교현 알바노조 위원장

우리 사회는 언젠가부터 청년들에게 ‘경험’이라는 이름으로 부당근로를 강요하고 있다. 오늘날의 젊음이 정당한 대가를 받으며 일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구교현(38) 아르바이트노동조합(이하 알바노조) 위원장, 배트맨D(미상) 패션노조 대표, 정준영(28) 청년유니온 정책국장(이상 ‘가나다순’)이 ‘더나은미래’를 찾아 ‘젊은 노동자’를 위한 좌담회를 진행했다. 배트맨D 대표는 얼굴과 신분을 드러내지 않는다. 패션노조 ‘비밀조직원’들도 마찬가지다. “부당한 일을 당해도 생계 때문에 함부로 나설 수 없는 젊은이들을 대변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사회=지난해 말, 여기 모인 세 단체가 패션업계 노동착취 실태를 수면 위로 끌어올려 화제가 됐다. 이전에도 청년유니온은 ’30분 배달제 폐지’ 등 현장 문제를 적극 해결했고, 알바노조는 ‘최저임금 1만원 운동’으로 사회에 신선한 충격을 안겼다. 세 단체의 정체가 궁금하다.

구교현(이하 구)=한 정당에서 무급 상근직으로 일하면서 생계를 위해 패스트푸드점 아르바이트를 했다. 학생, 주부, 투잡(Two-Job) 회사원, 정년퇴직자까지 많은 알바노동자를 만났고 이들의 처우 문제가 남의 일이 아니라는 생각에 노조활동에 뛰어들게 됐다. 알바노조는 2013년 8월 설립됐고 조합원 수는 360명 정도 된다. 상근자는 모두 7명이다. 주 업무는 노동 상담으로 공인노무사들과의 협업을 통해 내방·전화·온라인 상담 등을 진행하고, 노동법 관련 교육도 한다.

정준영(이하 정)=대학시절 청년 주거문제를 다루는 ‘민달팽이 유니온’에서 활동하다가 같은 세대 담론을 나누는 청년유니온에 가입하게 됐다. 청년유니온은 국내 첫 세대별 노조로 2010년 3월 창립됐고 조합원은 대략 1000여명이다. 하는 일은 알바노조와 유사하다. 노동상담을 신청하면 도움이 필요한 분들에게 자문노무사의 조언과 함께 진정 절차를 안내하고 있다. 정책국에서는 실태조사 등 노동 현안과 관련된 자료를 만든다.

배트맨D(이하 D)=국내 대기업과 외국계 무역회사에서 5년간 근무하다 2011년 패션스쿨에서 공부를 시작했다. 전세 보증금 빼서 패션을 하겠다고 뛰어들었는데, 수억대의 광고로 치장된 이면에서 악당들이 청춘을 착취하고 있었다. 알바노조의 도움을 받아 지난해 10월 17일 ‘서울패션위크 인권 퍼포먼스’를 시작으로 패션계의 불합리한 청년노동 실태를 알렸다. 지금은 패션업계 종사자와 그 관계자로 구성된 비밀조직원 40명이 SNS와 오프라인에서 활동 중이다.

◇변화한 노동시장, 문제 제기 방식도 다양해져 사회=패션노조 폭로 이후 달라진 점은 무엇인가.

D=이상봉씨의 경우 지난해 11월부터 근로계약서를 다시 작성하고 임금을 인상해줬다. 고용노동부에서도 근로감독을 실시했다. 우리가 유명한 분들의 이면을 건드려서 그런지 패션업계에서도 눈치를 많이 보고 있다.

사회=이번 사건을 위해 세 단체가 힘을 모은 것으로 알고 있다.

D=불안한 고용 형태로 고통 받는 청년이라는 공통의 이슈를 갖고 있기 때문에 내가 먼저 두 단체에 도움을 청했다. 노동자의 권리를 위해 활동해본 경험이 없는 패션노조에 이들의 노하우는 큰 힘이 됐다. =패션노조가 현장의 목소리를 수집해주면, 행사를 기획하고 실행하는 단계에서 알바노조와 청년유니온이 힘을 보탰다. 각자 잘 할 수 있는 영역이 있어 시너지가 난 것 같다.

=앞으로 패션노조처럼 세대·업종·지역 등 특정 카테고리 안의 문제에 대해 “이대론 못 참겠다”고 나오는 집단과 개인이 있을 것이다. 이들 사이에 교집합이 있다면, 연대 또한 활발하게 진행될 거다.

◇불합리한 구조가 낳은 청년 노동문제

사회=’열정페이’ 등 청년 노동문제의 원인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대기업들이 만든 관행이 사회 전반에 퍼져 있다. 상근자가 필요한 일도 알바를 채용하고, 최저임금을 안 지키거나 함부로 잘라도 크게 문제가 안 된다는 식이다.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제도를 바꿔야 하는데, 정부의 비정규직종합대책은 오히려 불안정 일자리를 늘리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 D=빠른 자동차일수록 튼튼한 에어백과 브레이크가 필요하다. 성장을 위해 경쟁을 유도하는 사회라면 그만큼 견고한 안전장치가 필요하지 않겠나. 해외의 경우 무급 인턴 채용 시 사전에 반드시 공지를 해야 하고, 내부적으로 커리큘럼이 명확히 갖춰져 있어야 하는 등 제도가 갖춰져 있다. =두 분의 의견에 동의한다. 문제를 청년 개인의 잘못으로 돌리지 말아야 한다. 손해는 사회화하고 이윤은 개인화하는 시스템이 지금의 상황을 만들었다.

◇청년노동자, 보호 대상 아냐…사회 전체 인식 변해야 사회=우리나라의 청년노동자에 대한 인식은 어느 정도라고 보나.

=대학생은 학비가 비싸고 생활비를 벌어야 하니까, 은퇴한 중년세대는 자식이 취직을 못하고 노후가 불안해서 알바를 한다. 알바노동은 이제 보편화된 일자리다. 알바가 하나의 직장, 직업이라는 걸 인정해야 한다.

D=패션업계에 ‘도제’라는 특성이 있으니, 이런 처우들은 불가피한 것 아니냐는 시선이 있었다. 하지만 패션은 산업이다. 일을 하면 당연히 대가를 받아야 한다. 신입을 교육해야 하는 건 어느 분야나 마찬가지다. 법이 보장하는 노동자의 권리 위에 ‘산업적 특수성’을 들이미는 건 오만이다.

=’보호의 대상은 주체여선 안 된다’는 인식이 청년노동자에게도 적용되는 듯하다. 부당한 대우를 받아도 “좋은 경험 아니었냐”며 인턴 경험을 꼭 필요한 스펙인 양 주입하는 이데올로기도 문제다.

◇블랙기업 지표 개발, 사례집 발간… 청년 노동문제 해결 위해 뛸 것

사회=앞으로 어떤 일들을 계획하고 있나.

D=패션업계 노동 실태조사를 실시할 예정이다. 질문지는 완성됐고, 표본집단을 어떻게 구성할지 고민 중이다. 체불 임금이나 미지급 수당을 시효 전에 받을 수 있도록 진정 및 고소 절차를 통한 과거 청산 작업도 하고 있다.

=올해는 1년 기획으로 ‘블랙기업 지표개발’을 준비 중이다. 7월에는 이 지표들을 토대로 부문별 시상식도 개최할 계획이다.

=최근 맥도날드에서 자행되고 있는 꺾기(근무시간 강제단축)·부당해고·임금체불 등 불법적 관행을 해결하고자 한국지사 점거, 피켓시위 등을 진행했다. 알바노동자들이 현장의 문제와 맞닥뜨렸을 때 가이드라인을 줄 수 있는 사례집도 발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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