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0일(토)

국내 시리아 난민 477명, 지금 어디 있나

허점투성이 난민 지원 실태
인도적 체류자, 기본적 생활 보장 없어
보여주기식 행정… 난민법 보완 필요

시리아 내전을 피해 아델(34·가명)씨와 조카 압둘(32)씨가 한국에 온 것은 2014년 3월. 이들은 난민인정 신청 3개월 뒤 인도적 체류를 허가받았다. 그러나 의료·소송 등을 목적으로 입국한 외국인에게 주는 기타(G-1)비자로는 그의 신분조차 제대로 보장할 수 없었다. 그해 말, 살 곳을 찾아 다시 난민선에 오른 압둘씨는 이탈리아로 가던 중 선박 좌초로 목숨을 잃었다.

현재까지 우리나라의 난민 인정을 신청한 시리아인은 모두 648명(2014년 12월 31일·법무부). 이들 중 62명의 시리아인이 1차 심사를 받고 있으며, 2명이 난민 불인정 결정에 대해 이의 신청 중이다. /유엔난민기구(UNHCR) 제공
현재까지 우리나라의 난민 인정을 신청한 시리아인은 모두 648명(2014년 12월 31일·법무부). 이들 중 62명의 시리아인이 1차 심사를 받고 있으며, 2명이 난민 불인정 결정에 대해 이의 신청 중이다. /유엔난민기구(UNHCR) 제공

지난해 5월, 법무부는 ‘시리아 내전으로 인한 난민들에게 최소 인도적 체류를 허가한다’는 방침을 정한 후 477명의 시리아 난민을 받아들였다. 난민을 이렇게 무더기로 받아들인 적 없는 우리나라에서 극히 이례적인 조치였다. 지난해 4월까지 허가된 전체 인도적 체류자 수(208명)의 2배를 넘는 수치였다. 인도적 체류자는 사유(인종·종교·국적·특정사회집단 구성원·정치적 견해로 인한 박해) 불충분으로 ‘난민인정자’가 될 순 없지만 인도적 차원에서 국내 체류를 허가받은 난민을 뜻한다.

◇난민신청자보다 못한 인도적 체류자

하지만 우리 정부가 시리아 난민에 대한 인도적 체류 허가만 했을 뿐, 사후 관리는 나 몰라라 하는 바람에 현재 477명이 어디서, 무엇을 하는지에 대한 아무런 자료도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난민구호단체 ‘피난처’의 이호택 대표는 “지난해 인도적 체류자 급증에 따른 국내 거주 시리아 난민 실태조사를 정부 측에 건의했지만, 별다른 대응은 없었다”고 말했다.

문제는 인도적 체류 허가를 받은 뒤다. 인도적 체류자는 최대 1년 단위로 체류 기간을 갱신해야 한다. 여행증명서 발급 등 인정 난민이 받을 수 있는 별도 권리조차 인정되지 않는다. 지역건강보험도 가입되지 않고 가족 결합도 적용되지 않는다. 심사를 거쳐 생계비·주거시설 등을 지원받을 수 있는 난민신청자보다 훨씬 열악한 것이다. 인도적 체류자 처우에 대한 난민법 조항은 단 한 줄 ‘취업을 허가할 수 있다’는 내용뿐이다. 하지만 기타비자뿐인 이들을 선뜻 고용하는 곳은 거의 없다.

2008년 국가인권위원회는 “인도적 체류 허가자의 의료보호와 사회보장을 위한 대책을 수립하고, 특히 내전 등으로 기약 없이 타국에 체류해야 하는 난민의 기본적 생활권을 보장하라”고 권고한 바 있다. 권익위 권고 후 7년, 그 사이 별도 난민법까지 제정됐지만 인도적 체류자에 대한 처우는 여전히 답보 상태다.

◇”전시 행정 말고 난민 실상 개선해야”

시리아 난민에 대한 인도적 체류 허가 방침 탓에 오히려 피해를 본 난민도 있다. 공익법센터 어필의 이일 변호사는 “시리아인 난민 신청자가 심사 면접 다음 날 곧바로 인도적 체류자로 분류되는 등 사유가 충분한 이들까지 인정난민이 되지 못한 사례가 있었다”면서 “국적을 이유로 난민 개인의 상황을 파악하고 심사하는 과정이 축소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현행 난민 지원 시스템도 제대로 갖춰지지 않았는데 정부는 또다시 새로운 난민 정책을 준비 중이다. ‘재정착희망난민제도’는 국외 난민을 선발해 국내 정착을 지원하는 정책으로, 3~4월쯤 외국인정책위원회를 통해 계획안이 확정되면 금년 말부터 도입될 예정이다. 아시아에서는 일본에 이어 두 번째다.

김성인 난민인권센터 사무국장은 “재정착희망난민제도가 국제 사회에 내세우기 위한 홍보 수단에 그치지 않으려면 기존 난민 심사 과정과 처우부터 확실하게 조사해 고쳐야 한다”며 “국내 체류 난민을 사회에 제대로 통합하지 못한 채로 시간이 지나면 프랑스의 ‘게토(ghetto·소수자 거주지구)’처럼 또 다른 과제가 생길 수 있다”고 지적했다.

‘난민으로 불인정되더라도 소송 등 절차를 밟으면 일정 기간 국내 거주가 보장된다’는 잘못된 인식이 일부 외국인 체류자들 사이에 퍼지는 것도 문제다. 이호택 대표는 “난민지원단체를 소개해주고 브로커 비용을 받는 이들까지 있다고 들었다”면서 “제도 악용 사례를 줄이려면 전문 심사 인력 확보를 통해 기간을 단축해야 한다”고 말했다. 1년 이상 지속되는 심사 기간이 난민들에게는 큰 고통이지만, 제도를 악용하는 이들에게는 합법적으로 국내에 머무르기 위한 빌미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우리 정부가 포용한 난민은 모두 1187명(난민인정자 471명)이다. 난민 전문가들은 “유엔난민기구(UNHCR) 집행이사회 의장국 선출, 130억원 규모의 출입국외국인지원센터 건립 등 겉만 번지르르한 난민 인권 선진국으로 포장하지 말고, 제대로 된 시스템을 갖춰야 할 때”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이에 대해 법무부 관계자는 “내부적으로 연구·조사의 필요성을 느끼고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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