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6일(금)

관심만 가진다면… 교통카드·이면지·커피 한 잔으로도 기부가 된다

기부와 함께한 24시
기자의 현장 르포

습관(習慣). 거듭 반복해 버릇이 된 이 행동을 두고 도스토옙스키는 “인생을 바꾸는 힘”이라 말했다. 을미년 첫날, 수많은 새해 결심이 오가는 가운데 기자 역시 ‘일상 속 기부’라는 새로운 습관을 익히기 시작했다.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단지 평소처럼 출근하고, 밥을 먹는 동안 약간 관심을 기울였을 뿐이다. 하지만 이 습관은 머지않아 누군가의 인생을 바꾸는 작은 힘이 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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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0am~ 일회용 교통카드의 재발견: 550원

새해를 맞아 한산한 금요일 아침, 지하철역에서 일회용 교통카드를 샀다. 회사로 가는 지하철 운임은 1450원, 여기에 카드 보증금 500원을 더하면 1950원이 된다. 뚝섬역에 도착하자 흰색 교통카드 모금함이 기자를 맞았다. “1000원이면 연탄 2장, 5000원이면 우유 10팩을 지원할 수 있습니다.” 모금함에 쓰인 안내 문구다. 다 쓴 교통카드와 함께 주머니에 있던 잔돈을 집어넣었다. 모금된 카드의 보증금 500원은 서울 사회복지공동모금회로 기부된다. 운임이 남은 카드와 현금도 기부할 수 있다. 그때 청년 한 명이 쭈뼛거리며 다가왔다. “이거 카드도 되는 거예요?” 기자가 고개를 끄덕이자 청년은 들고 있던 교통카드를 어색하게 모금함에 넣었다. 2010년 첫선을 보인 교통카드 모금함은 수도권 지하철 206개 역사에 비치돼 있다. 기부도 꾸준히 늘어 2012년 3083만원에서 2014년 5349만원으로 1.7배 이상 성장했다. 기부금은 서울 사회복지공동모금회를 통해 저소득층의 생계·의료비와 서울시내 사회복지시설 지원에 쓰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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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30pm~ 기부 복권과 함께 매너 있는 점심식사: 3000원

정오를 조금 넘긴 시각, 점심식사를 위해 서울 서대문구 대현동의 레스토랑 ‘포포나무’로 이동했다. 테이블에 앉자마자 아크릴 상자가 눈에 들어왔다. ‘베리굿매너(Very good manners)’란 글씨가 새겨진 상자 속엔 기부 복권 수십 장이 꽂혀있었다. 복권 종류는 ‘0원·500원·1000원·원하는 만큼 기부’ 총 네 가지이지만, 의무 사항은 아니다. 음식을 주문한 뒤, 복권 하나를 골라 은박을 긁었다. ‘당신은 기부천사, 원하는 만큼 기부’란 문구가 나타났다. 3000원을 기부함에 넣고, 복권 뒷면엔 ‘도움이 필요한 이들에게 더 나은 새해가 되길’이란 문구를 적었다. 김성환 포포나무 대표는 “기부 복권함을 설치한 지 한 달 만에 14만원이 모였다”고 말했다. 기부 저금통을 계산대에 설치했을 때 1년 평균 10만원이 모인 것과 대조적이다.

2013년 폴란드 적십자사에서 시작된 베리굿매너는 식사 후 접시 위에 포크와 나이프를 십자 모양으로 올려두면 식사 비용에 우리 돈 약 1700원을 추가 기부하는 캠페인으로, 국내에는 지난해 11월 이화여대 학생들의 제안으로 첫발을 디뎠다. 베리굿매너 캠페인은 포포나무 외에도 음식점 ‘바이타’ ‘하얀면발’ ‘뚝배기스파게티’와 카페 ‘커피소년’ ‘라심’ 등 이화여대 인근 6개 점포에서 참여할 수 있다. 기부금은 대한적십자사의 위기 가정 긴급지원 솔루션에 쓰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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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pm~ 쌓여있는 이면지, 더 필요한 곳으로 옮김

“안녕하세요 옮김입니다!” 점심을 먹고 편집국으로 복귀하자마자 손님이 찾아왔다. 보도 자료 이면지를 수거하기 위해 더나은미래를 찾은 청년NGO ‘옮김’의 전소영(23·숭실대 3년), 이수진(20·숙명여대 1년)씨였다. “기부할 이면지 내용은 확인하셨나요? 혹시 개인·민감 정보가 수거되더라도 검수를 거쳐 즉각 파쇄하니 걱정하지 마세요.” 2010년 국제NPO ‘클린더월드(Clean the world)’의 한국 지부에서 출발한 옮김은 일회용 비누와 크레파스, A4이면지 등 버려지는 자원을 재생해 필요한 곳으로 옮기고 있다. 지금까지 비누 3만8000개, 크레파스 3700개가 필리핀·라오스 등 23개 국가에 전달됐고, 지난해부터 만든 수제 이면지 공책 150권은 청운아동복지센터 어린이들에게 돌아갔다. 김성재 옮길준비사업부 팀장은 “호텔에서 모아온 일회용 비누와 기부자들께서 한 주먹씩 보내주신 크레파스, 이면지는 봉사자들의 손으로 재생된다”면서 “기부부터 나눔까지 모든 과정을 시민과 함께하는 것이 옮김의 취지”라고 말했다. 옮김에 이면지, 크레파스 기부를 원하는 가정 또는 단체는 물품을 선불택배(서울시 은평구 통일로 684 1동 1층 청년허브 미닫이사무실 옮김)로 보내거나, 인터넷카페(cafe.naver.com/ctwk) 또는 홈페이지(www.omkim.org)로 수거 신청을 하면 된다. 수거는 수도권 내, A4종이 5박스(약 12500장)부터 가능하며 단체에서 정기 기부할 경우 수거함을 설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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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0pm~ 커피 한 잔의 기부: 100원

취재 인터뷰를 위해 보광동에 위치한 카페 리비로 이동했다. 인터뷰를 시작하기 전, 구수한 커피향에 끌려 따뜻한 아메리카노를 주문했다. 계산을 마치고 주머니에 영수증을 넣으려는데 아래 붙어있는 ‘도네이션 티켓’이 손에 걸렸다. “오늘 우리가 함께하는 삶의 나눔이 누군가에겐 새로운 희망입니다.” 이곳은 국내 최초의 도네이션 카페를 표방하고 있는 곳이다. 영수증에서 티켓을 떼어 입구 옆의 ‘도네이션 박스’ 앞에 섰다. 유니세프, 월드비전, 사랑의친구들, 샘복지재단, 홀트아동복지회, 밀알복지재단, 한국자폐인사랑협회, 승가원 등 단체별 소식자료가 꽂힌 기부함 8개는 연초인데도 티켓으로 가득했다. 한 장당 100원, 크지 않은 금액이지만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생각에 신중하게 단체를 골라 티켓을 집어넣었다. 리비는 티켓과 박스를 설치해 소비자가 적극적 기부자로서 행동을 할 수 있는 계기를 제공했다. 하루 평균 60테이블 이상의 손님들이 커피 한 잔을 통해 기부천사로 변신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누적된 기부금은 매달 정산을 거쳐 도네이션 박스 상단에 단체별로 게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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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40pm~ 스마트한 전화 한 통으로 함께하는 기부 통신망: 210원

직접 방문할 수 없는 현장 소식부터 자료 전달, 간단한 인터뷰까지. 기자의 하루 중 가장 많은 대화는 전화로 이뤄진다. 평소와 다름없는 통화지만 이날은 번호를 누르기 전 조금 특별한 애플리케이션을 실행했다. 통화 기부 앱 ‘기부톡(Givetalk)’이다. 앱을 실행하자 이달의 기부 횟수를 확인할 수 있는 마이페이지와 기부톡을 홍보할 수 있는 친구 추천 카테고리가 화면에 나타났다. 하단에는 메시지, 최근 통화, 연락처, 키패드 등 메뉴가 있어 일반 통화앱과 같은 방식으로 전화를 걸 수 있다. “그럼 말씀드린 올해 NGO 전망 자료는 다음 주까지 부탁드립니다.” 기부톡을 활용해 통화를 마치자 액정 위로 빨간 선물 상자가 등장했다. 상자를 클릭하니 ‘미리내가게’ ‘온해피’ ‘한국선의복지재단’ 등 따뜻한 손길을 기다리는 단체들의 모금 프로젝트가 차례로 소개됐다. 메뉴 값을 미리 지불하면 다음에 필요한 사람이 쓸 수 있는 미리내가게에 기부를 결정하고 ‘기부클릭’ 버튼을 누르자 10원의 적립금액과 함께 총 누적금액이 팝업창에 표시됐다. 기부톡의 가장 큰 특징은 별도의 비용 없이 원하는 단체에 기부를 할 수 있다는 것이다. 클릭을 통해 발생하는 기부금은 해당 프로젝트를 후원하는 기업에서 부담하기 때문에 사용자들은 쓰고 있는 요금제에 맞춰 통신비용만 결제하면 된다. 2012년부터 지금까지 기부톡을 통해 모인 기부금은 4억5000만원에 달한다. 총 3만명의 사용자가 하루 약 3000건 클릭으로 ‘작지만 큰 기부’를 실천했기에 가능한 금액이다.

※기자의 일일 기부를 합해보니…

교통카드 기부함=550원, 베리굿매너=3000원, 카페 리비=100원, 기부톡 전화 5통=210원

합계 386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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