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1일(일)

1년간 272명 가입… 이웃사랑은 가족·친구 따라 전염된다

아너 소사이어티 성장 전략은
가족 구성원 전원이 함께하는 ‘가족 회원’
부부·父子·母女 등 동시 가입 늘어
함께 가입식 가지며 나눔의 가치 공유

충청·호남권의 ‘지인 네트워크’
고액 기부의 불모지서 서로 권하는 문화로
작년만 전남 11명·대전 17명 신규 가입

“원래 집에 음식이 많으면 옆집, 앞집에도 돌리잖아요. 그냥 지금 우리가 조금 더 여유가 있으니까 다른 데랑 나누는 건데, 이런 인터뷰까지 하는 게 아무래도 떠벌리는 것 같아 영 부담스러워서….”

지난 2013년 5월, 가족 아너 소사이어티 회원들을 초청해 열린 ‘제1회 패밀리 아너스데이(Family Honors Day)’ 현장. 가족이 함께 가입하는 사례가 늘면서 이날 현장에선 가족 아너 모임 ‘패밀리 아너스클럽(Family Honors Club)’이 발족됐다. /사회복지공동모금회 제공
지난 2013년 5월, 가족 아너 소사이어티 회원들을 초청해 열린 ‘제1회 패밀리 아너스데이(Family Honors Day)’ 현장. 가족이 함께 가입하는 사례가 늘면서 이날 현장에선 가족 아너 모임 ‘패밀리 아너스클럽(Family Honors Club)’이 발족됐다. /사회복지공동모금회 제공

지난 5일, 대전 대덕구의 산업용 밸브 생산 중소기업 ‘삼진정밀’ 사무실에서 만난 정태희(57)·이준임(56)씨 부부. “내세울 일이 아닌데 사진촬영은 민망하다”며 연신 손을 내저은 이들이지만, 지역 내에선 이미 알아주는 ‘기부쟁이’다. 지역 중·고등학교 장학금 지원, 다문화 가정 지원, 공단 내 초등학교 방과후활동 지원, 위기청소년 쉼터 지원, 지역아동센터 합창단 공연 후원…. 후원하는 비영리단체만도 수십 곳에 이른다. 20여년간 크고 작은 나눔을 함께해 온 이들이 이제는 아너 소사이어티 ‘가족 회원’에도 이름을 올렸다. 삼진정밀 대표인 정씨가 2012년 아너 소사이어티에 가입한 뒤, 지난해 이씨도 가입한 것이다.

‘제1회 패밀리 아너스데이’ 에 참석한 송경애(오른쪽·SM C&C 사장) 유원희(왼쪽)씨 부부 아너 소사이어 티. 현재 부부나 모녀, 부자 등 가족이 함께 아너 소사이어티에 가입한 ‘가족 회원’은 총 58가구다. /사회복지공동모금회 제공
‘제1회 패밀리 아너스데이’ 에 참석한 송경애(오른쪽·SM C&C 사장) 유원희(왼쪽)씨 부부 아너 소사이어 티. 현재 부부나 모녀, 부자 등 가족이 함께 아너 소사이어티에 가입한 ‘가족 회원’은 총 58가구다. /사회복지공동모금회 제공

“남편이 처음 아너 소사이어티를 얘기했을 때, ‘기부야 좋지만, 꼭 이름 알리면서 해야 하느냐’고 했어요. 형편 넉넉하다고 자랑하는 듯 비칠까 걱정도 됐고요. 남편이 ‘안 좋게 보는 이들이 있다 해도 좋은 뜻이지 않으냐’며 설득하더라고요.”(이준임)

이 부부는 결혼한 지 1년쯤 지나 어느 날 갑자기 뇌졸중으로 쓰러진 어머니 병간호를 위해 하던 일을 관두고 내려온 대전에서 여태껏 터를 잡고 살게 될 줄은 몰랐다고 한다. 비닐을 주워 고무 대야 만드는 아버지 일을 돕다 ‘내 인생이 이렇게 끝나나’ 싶어, 맨주먹으로 시작한 사업이 올해로 24년째. 15평 남짓한 공장에서 시작한 사업은 지난해 매출 750억원, 300여명의 직원, 업계 1위를 자랑하는 어엿한 중견기업으로 성장했다. 정 대표는 “지금껏 아내와 둘이 ‘필요 없는 데는 단 1원도 쓰지 않고, 꼭 필요한 데는 절대 아끼지 않아야 한다’는 생각으로, 기업도 운영하고 나눔도 이어왔다”며 “돈 버는 것 자체가 목적이면 계속 욕심만 커지고 절대 마음이 채워지지 않는데, ‘기부’도 하다 보면 결국 내가 좋아서 자꾸 하게 돼서 그냥 우리 먹을 것 조금 나눠 먹는다는 생각으로 한다”고 했다.

◇’먼저’ 시작해 이제는 ‘함께’… ‘가족 회원’ 부쩍 늘어

미상_그래픽_기부_지역별아너소사이어티현황_2015

지난 한 해 새롭게 가입한 아너 소사이어티 회원 272명. 총 710명 중 3분의 1에 달하는 그 숫자 뒤에는 눈에 띄게 증가한 ‘가족 회원’이 있었다. 정태희·이준임씨와 같은 부부 회원뿐 아니라 부자(父子), 모녀(母女), 가족 전원 등 그 면면도 다양하다. 전체 가족회원(58가족) 중 절반 이상인 32가족이 지난해에 새롭게 합류했다. 2011년엔 2가족, 2012년까지도 9가족에 불과했었다. 손기훈 사회복지공동모금회(이하 ‘공동모금회’) 아너 소사이어티 사무국 펀드레이저(모금전문가)는 “한 부부가 동시에 가입하기로 결정했을 때 따님과 아드님, 손녀까지 모이거나, 아버지의 가입식에 해외 유학 중인 아들들이 함께하도록 일정을 맞추는 등 ‘아너 소사이어티 가입식’을 가족이 한데 모여 진행했다”며 “가족 내에서 기부자의 선택을 축하하고 자랑스럽게 받아들이면서, 자연스레 나눔의 가치를 공유하게 된 게 가족회원이 늘어난 힘”이라고 밝혔다. 아너 소사이어티가 만들어진 초기에는 개인이 혼자 오랜 시간 고민하고 결정해 기부하는 데서 그쳤지만, 이후 기존 기부자들을 따라 가입하는 사례가 점점 늘고 있는 것이다.

◇불모지였던 충청·호남권 약진, 전 지역 골고루 늘어

특정 지역이 아닌 전 지역에 걸쳐 회원이 늘어난 것도 지난 한 해 주목할 만한 변화다. 그간 큰 기업이 많지 않거나 경제 규모가 크지 않아 ‘고액 기부의 불모지’로 여겨져 왔던 충청·호남권에서 신규 회원이 상당히 늘었기 때문. 급증한 신규 가입자 뒤에는 각 지역에 맞는 노하우와 전략들이 뒷받침됐다. 지난해 11명의 회원이 신규 가입한 전남 지역에선 ‘네트워크 전략’이 통했던 사례다. 노진선 전남모금회 전략모금팀장은 “지역사회 유력 인사, 사회복지협의체 등 네트워크를 통해서 평소 나눔에 관심이 많고 여력이 있는 분들을 소개받거나 파악해 ‘이런 좋은 프로그램이 있으니 해주십사’ 하고 다가갔다”며 “목포지역에선 새롭게 가입한 분이 즉시 다른 분을 또 소개해 주셔서 기부자로 연결되기도 했다”고 했다. 지인 네트워크가 통한 건 충남지역에서도 마찬가지. 지난해 11명의 신규 회원을 발굴한 충남모금회의 박은희 모금사업팀장은 “충남분들이 대체로 드러내놓고 하는 기부를 꺼려서, 그간 아너 소사이어티 분들을 찾는 게 쉽지 않았다”며 “문은수 충남 아너 소사이어티 대표가 주변에 많이 홍보를 해주신 덕분에, 천안 지역에서 다섯 분이 동시에 가입하기도 했다”고 했다. 지난해 17명의 신규 회원을 확보한 대전지회의 전략은 ‘부부가 함께하는 기부’. 오세헌 대전모금회 모금사업팀장은 “현재 총 32분의 아너 소사이어티 중 7쌍(14명)이 부부이고, 그중 총 5쌍의 부부 아너가 지난해 새롭게 탄생해, 대전은 ‘부부 아너의 메카’인 셈”이라며 “좋은 일도 같이 하는 게 훨씬 더 아름답고, 자식들에게도 큰 인상을 준다고 강조하며, 앞으로도 부부 아너 위주로 가입을 권유할 것”이라고 했다.

◇아너 소사이어티 전용 상품으로 지속성, 전문성 높여

이렇게 지난 7년간 아너 소사이어티 회원 710명이 기부한 금액은 총 791억원. 이는 철저히 기부자의 의사에 따라 사용되고 있다. 사용 방법과 내용을 공동모금회에 일임할 수도 있고, 원하는 단체를 직접 지정해 기부(지정기탁)할 수도 있다. 아너 소사이어티 회원들은 사업 진행 내용을 비롯한 피드백을 정기적으로 받고 있다. 손 펀드레이저는 “현재까진 공동모금회에 일임하거나 지정기탁한 회원의 비중이 약 5대5로 비슷하다”면서 “그러나 매년 기부가 지속되지 않는 한 특정 수혜자에 대한 지원이 중단될 수 있기 때문에, 지난해 여름부터 아너 소사이어티 회원 전용 브랜드 상품을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미래세대 육성사업(교육), 위기계층 보호사업(보호), 의료취약계층 지원사업(건강), 기초생계 돌봄사업(생계), 경제적 자립 지원사업(자립), 복지 인프라 구축사업(인프라) 등 6가지 상품 중 하나를 선택해 기부할 수 있도록 한 것. 같은 상품을 선택한 아너 소사이어티 회원들은 공동으로 기금을 조성해 지속적으로 사회문제를 함께 해결해나가게 된다. 반응은 뜨겁다. 아너 소사이어티 브랜드 사업을 오픈한 지 두 달 만에 10명의 회원이 상품에 가입했다. ‘장학금으로 써달라’며 1억원씩 기부한 부부 회원은 브랜드 사업 설명을 듣고 미래세대 육성사업에 기부하기도 했다. 각 브랜드 사업은 공모를 통해 전문성을 지닌 사업기관에 배분, 시행될 예정이다. 그 첫 시작으로 공동모금회는 2014년 신규 가입한 아너 소사이어티 회원 3명의 기금을 모아 ‘미래세대 육성사업’을 론칭, 지난 12월 29일부터 사업을 진행할 기관을 공모 중이다. 3년간 3억원씩 총 3개 기관에 지원되며, 신청은 1월 16일까지다. 강학봉 공동모금회 일반모금사업본부장은 “비슷한 뜻을 품은 회원들의 기금을 모은 덕분에, 좀 더 지속적이고 예측 가능한 지원이 가능해졌다”면서 “기부자와 수혜자 모두가 윈윈할 수 있도록 열심히 뛰겠다”고 말했다.

정유진 기자

주선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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