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0일(토)

허브 농가 주민 웃음 짓게 한 가난한 산간마을 사회적기업

굿네이버스, 네팔에 사회적기업 세우다
코이카와 함께 에이치플랜트 설립
지역에 숨겨진 자원, 소득원으로 발굴
마을 창고 짓고 유통체계 개선 노력도
LG생활건강과 허브 사업 협력 결실

지난 1일, ㈜LG생활건강이 특별한 제품을 선보였다. ‘비욘드 히말라야 세럼인오일<사진>’이라는 화장품이다. 멀리 네팔의 꺼날리(Kar nali)지역, 무구·훔라 마을에서 채취한 네 종류의 허브(herb·약초)가 주원료다. 꺼날리 지역은 해발 7000m까지 치솟은 산악지대로, 신발 하나를 사기 위해 왕복 8일을 걸어야 하는 곳이다. 5가구 중 한 곳만 전기가 들어올 정도로 가난해 네팔의 75개 행정구역 중에서도 최빈곤층으로 분류된다. 그나마 쓸 만한 땅을 찾아 한 가정 먹을 정도의 경작을 하는 게 소득원의 전부인 이 마을이 어떻게 국내 대기업과 거래했을까. 이 어울리지 않는 조합의 연결고리는 바로 지난해 5월 설립된 굿네이버스 네팔 사회적기업인 ‘에이치 플랜트(H plant)’다.

에이치플랜트는 훔라 지역 레미빌리지(Remi Village)에 허브오일 추출시설을 설치해 운영하고 있는데, 주민들에게 이곳은 일자리와 교육장의 역할을 한다. /굿네이버스 제공
에이치플랜트는 훔라 지역 레미빌리지(Remi Village)에 허브오일 추출시설을 설치해 운영하고 있는데, 주민들에게 이곳은 일자리와 교육장의 역할을 한다. /굿네이버스 제공

◇민·관·기업이 함께 만든 지렛대, 가난한 산간마을을 일으키다

‘이 지역은 도대체 무엇으로 먹고살 수 있을까.’ 2010년 꺼날리 지역에서 지역개발 사업을 시작했던 이수형 굿네이버스 네팔 지부 사무장의 고민이었다. 계곡 사이에서 위태로이 사는 주민들은 음식은 물론 옷가지까지 자급자족으로 해결하며 살고 있었다. 훔라 마을에 사는 카라나 에이디(30·Karana Aidi)씨는 “할 수 있는 게 없어 조그만 텃밭에서 감자·밀·보리 등을 키우며 다섯 식구가 살았는데, 험난한 지형 탓에 수확도 들쑥날쑥했다”고 했다.

꺼날리 지역은 네팔 내에서도 최빈곤 지역으로 분류되고 있지만, 지리적 접근성과 열악한 사회ㆍ경제적 환경으로 인해 개발에 어려움을 겪었다. /굿네이버스 제공
꺼날리 지역은 네팔 내에서도 최빈곤 지역으로 분류되고 있지만, 지리적 접근성과 열악한 사회ㆍ경제적 환경으로 인해 개발에 어려움을 겪었다. /굿네이버스 제공

그러던 와중 ‘지역자원을 개발해 커뮤니티를 먹이자’는 철학에서 찾아낸 것이 바로 ‘허브’였다. 주민들이 산속에서 약초를 캐와 차로 끓여 먹기도 하고, 조금 남으면 내다 팔기도 하는 걸 접하곤 내친김에 허브 몇 종을 발굴해 농경을 시작했다. 하지만 만만치 않았다. 네팔의 불균형한 유통구조 때문이었다. 이 사무장은 “나라에서 허가를 내준 소수의 중간상인이 대대로 유통을 독점하고 있었는데, 이 때문에 농민들이 온 산을 뒤지며 고생해도 제값을 받지 못하더라”고 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도입된 것이 ‘사회적기업’ 모델이다. 마을에는 4개의 농민조합이 있었는데, 이들을 실질적으로 지원하기 위해선 기업이 효과적이라는 판단에서다. 2012년 1월엔 ‘한국국제협력단'(이하 코이카)이 힘을 보탰다.

굿네이버스와 코이카가 히말라야 무구·훔라 지역의 허브산업을 활성화시키기 위해 내년 5월까지 진행할 ‘시민사회협력프로그램(CSO Partnership Program)’, 일명 ‘비바 프로젝트(VIVA: Village Income through Value Addition)는 그렇게 시작됐다. 남지영 코이카 네팔사무소 전문관은 “코이카 역시 같은 지역에서 개발사업을 하는데, 접근성 등의 문제로 난항을 겪었다”며 “굿네이버스 같은 민간단체와 협력하면 현지 주민들에게 더 밀착할 수 있어 정부 간 차원의 사업에서 부족한 점을 보완할 수 있다”고 했다.

◇돈 아닌 사람 위해… 가장 외진 곳에 세운 기업 ‘에이치플랜트’

굿네이버스 인터내셔날은 외국인 투자 형태로 네팔 현지(카트만두 본부, 무구·훔라 지역 공장시설 2곳 포함)에 사회적기업 에이치플랜트를 세웠다. 1년 반의 사전 준비 끝에 나온 결과다. 이수형 사무장을 프로젝트 매니저(PM)로 총 10명의 직원으로 구성됐는데, 그중 6명은 현지 주민이다. 에이치플랜트의 역할은 주민들이 신나게 일하도록 돕는 것. 사업전략을 수립하고, 농민조합에 대한 교육도 진행한다. 취약한 유통망을 개선하는 활동은 이 기업의 핵심 업무 중 하나다. 마을창고를 지어 물류 효율을 높이고, 농민들의 물건을 공정하게 수매해 네팔의 중간상인이나 인도의 상인들과 직접 상대하는 한편, 농민들도 직접 판매에 나설 수 있도록 정부로부터 ‘허가권’을 취득하는 절차도 진행하고 있다. 온라인 홈페이지(www.hiumherb.com)를 개설해 해외시장 공략에도 나섰다.

새로운 약초를 발굴해 이를 상품화하기도 한다. 지난해 6월 굿네이버스와 LG생활건강이 ‘네팔 히말라야 허브사업 협력을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한 것도 이러한 과정 중 하나다. 에이치플랜트는 가능성이 있는 허브 오일을 LG 측에 보냈고, LG생활건강은 이를 분석하고 제품화로 연결하는 등 공유가치창출(CSV) 활동에 적극적인 모습을 보였다. 이번 신상품 출시를 기념해 판매 수익금의 일부로 네팔 현지에 노새 20마리를 보내는 이벤트도 펼치고 있다. 노새는 꺼날리 지역의 유일한 교통수단이다. 이수형 사무장은 “새로운 허브로 향초도 만들고, 디퓨저(diffuser·살포기)나 티백의 상품화도 타진하는 등 지역의 수익성을 높이려는 시도는 계속되고 있다”고 했다.

◇멀지만, 명확한 ‘자립의 길’

민간단체, 국가기관, 대기업, 중간상인, 주민을 이어주는 에이치플랜트를 통해 무구·훔라 마을은 지속 가능한 자립을 꿈꿀 수 있을까. 이수형 사무장은 “아직 갈 길이 멀다”고 했다. ‘비바 프로젝트’ 출범에 앞서 주민들의 협의를 얻어내는 데만 1년 넘게 걸렸을 정도로, 지역민들의 인식은 저조하다.

현재 무구 마을의 한 농민조합 의장을 맡고 있는 샨카 바하다르 부다(38)씨는 “프로젝트에 참여하면서 가장 힘들 때는 사업을 위해 사람들을 모을 때”라며 “지역 주민들에게 자립을 이해시키고 함께 움직이도록 하는 건 굉장히 어렵다”고 했다. 그래도 일한 만큼 공정하게 돈을 벌 수 있다는 걸 깨달으며, 주민들의 호응이 일고 있는 추세다. 조현영 코이카 민관협력실 전문관은 “개발협력 사업에서 현지주민의 자립과 지속 가능성 측면은 사업이 종료된 이후가 더 중요한데, 사회적기업과 조합이 안정적으로 정착되면 지역사회 자립에도 청신호가 켜질 수 있을 것”이라며 “이를 위해선 주민의 자체적인 관리역량 강화 등 풀어야 할 과제가 많다”고 말했다. 에이치플랜트의 목표는 하나다. 바로 ‘회사를 주민들 손에 온전히 맡기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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