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3월 28일(목)

實效 없는 정부정책이 기부단체 ‘불신’ 낳았다

성금 비리사건 이후 얼어붙은 나눔
전월 기부액, 작년比 14억 줄어 비영리법인마다 다른 회계양식,현실 반영 못 한 기부금法 원인
“회계양식 통일·공시 의무화” 정부 차원의 제도 마련 시급

그래픽=양인성 기자 in77@chosun.com
그래픽=양인성 기자 in77@chosun.com

연말이 다가온다. 예년 같으면 온정의 손길이 점점 커져야 할 때다. 하지만 올해는 좀 다르다. “돈이 어디에 쓰이는지 믿지 못하겠다”는 사람이 늘었다.

방송작가 김영은(29)씨는 올해 한 인터넷 사이트를 통해 아이티 성금모금에 참여했다. 영은씨는 “유명한 단체를 통한 모금이라 좋은 곳에 쓰일 거라고 믿고 1년 가까이 잊고 있었는데 최근 사회복지공동모금회 사건을 접하고 나니 올 연말에는 성금을 내야 할지 망설여진다”고 말했다. 영은씨만의 얘기는 아니다. 비리 보도 후 지난 10월 한 달간 모금액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4억원가량 줄었다. 지회마다 소액기부를 철회하는 건수는 하루 10~30건에 달했다. 도움의 손길이 더욱 필요해지는 시기에 후원 손길이 줄고 있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불신을 없애고, 이번 사건을 우리 사회의 기부 문화를 더욱 건강하고 투명하게 만드는 계기로 삼기 위해서는 정부의 제도 정비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특히 비영리단체의 특성에 맞는 회계보고양식을 만들어 정확하고 비교 가능하게 공시하는 제도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2008년부터 자산총액 10억원 이상의 공익법인은 외부 전문가로부터 세무확인을 받고 결산서류 등을 국세청에 공시하도록 되어 있다. 대부분의 비영리 단체들은 이 제도에 따라 국세청에 관련 자료를 공시한다. 문제는 비영리 법인을 위한 표준 양식이 없어서, 영리 법인의 회계 양식에 기반해 보고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돈을 버는 것이 목적인 영리법인과 돈을 잘 쓰는 것이 목적인 비영리법인은 설립목적 자체가 다르다. 예를 들어 비영리법인의 자산이 늘어나는 것은 오히려 기부금을 효율적으로 쓰지 못하고 있다는 방증일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또한, 단체별로 쓰는 용어와 세부 항목이 다른 회계보고서는 기부단체의 투명성을 비교해 기부 여부를 결정하고 싶은 기부자의 욕구를 만족시키기 어렵다. 비영리기관의 사업, 회계, 조직 등의 정보를 제공하는 한국 가이드스타 박두준(47) 사무총장은 “기부선진국인 미국의 경우 ‘Form 990’이라는 비영리법인의 회계보고양식이 표준화되어 있다”며 “기부액 공개에 대한 실효성 있는 정책마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현실에 맞지 않는 기부금법도 문제로 지적됐다. ‘기부금품의 모집 및 사용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아이티 성금모금과 같이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1000만원 이상 모금할 경우 행정안전부에 등록하도록 되어 있다. 등록단체는 모금 완료 후 한 달 내에 기부금품 모집완료 보고서를 해당 단체의 홈페이지에 공개하고, 기부금 사용 후 두 달 내에 회계감사기관이 작성한 회계감사보고서를 첨부하여 등록청에 제출해야 한다. 그러나 이런 제도는 현실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기아대책의 이요셉(39) 홍보본부장은 “기아대책의 경우 1000만원 이상 모금프로젝트가 1년에 최소 100건이 넘는데, 관련 보고서를 모두 등록하고 감사하면 불필요한 인적·시간 낭비가 발생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본부장은 또한“최근에는 회원들이 트위터로 모금을 알리는 등 불특정 다수와 회원대상 모금의 경계도 모호해져 현실적인 기부문화를 반영하는 법안이 필요하다” 고 덧붙였다.

비영리단체들의 투명성을 드러내고 살펴볼 수 있는 정부 제도가 미비하자 대부분의 국제구호단체들은 투명성 제고를 위한 자구책을 마련하고 있다. 매년 홈페이지와 연차보고서를 통해 사업경과와 회계보고를 공개하고 회원용 정기간행물을 통해 관련 내용을 후원자들과 소통하고 있다. 국제적 NGO평가기관인 채리티 내비게이터에서 최고 등급인 별 네개를 받은 컴패션의 황상호(34) 재무팀장은 “정기적 뉴스레터 뿐만 아니라 특별 이벤트나 모금행사를 통해 모이고 쓰인 기금들도 공개하려고 노력한다”고 말했다. 올해 삼일투명경영대상을 받은 세이브더칠드런도 내부 윤리규정에 따라 기부자들이 원하는 정보를 적시에 공개해 높은 평가를 받았다. 박두준 총장은 “한국의 기부문화가 발전하고 기부금 규모가 커질수록 개별 비영리단체들의 투명성 제고를 위한 노력이 더욱 확산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기부문화가 위축되고 있지만, 도움의 손길이 필요한 사람들은 도처에 있다. 사진은 아이티 지진 피해자들.
기부문화가 위축되고 있지만, 도움의 손길이 필요한 사람들은 도처에 있다. 사진은 아이티 지진 피해자들.

아름다운 재단이 전문여론조사기관에 의뢰해 전국에 거주하는 만 19세 이상 성인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종교기부와 경조사비 기부를 제외한 한국인의 1인당 순수기부금액은 2000년 1인당 9만9000원에서 지난해 18만2000원으로 2배 가까이 늘었다. 아름다운재단 기부문화연구소 박태규(61) 소장은 “이처럼 개인들이 기부에 동참하는 분위기를 계속 이어나가기 위해서는 NGO의 투명성은 기본이고, 한발 더 나아가 사업의 효율성과 책임성까지 갖춰야 한다”고 말했다. 강남대 사회복지전문대학원 한동우(46) 교수는 “단체의 사업결과나 재무상황을 공개하는 데는 기술적인 능력이 필요하다”며 “이런 능력이 부족한 중소규모의 NGO들을 지원하기 위해 국가와 지자체가 지원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고 말했다.

관련 기사

Copyrights ⓒ 더나은미래 & futurechosun.com

전체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