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6일(금)

다문화 장애인 가족의 첫 여행… 휠체어 타고 제주도 누비다

하이원 행복더하기 희망여행

부부는 한결같았다. 3살배기 아들을 무릎에 앉힌 남편은 전동휠체어 방향을 바꿀 때마다 아내를 바라보며 웃었다. 생소한 나무, 꽃이 보일 때마다 아내는 어눌한 발음으로 남편을 불렀다. 그러곤 “너무 좋다~”며 연신 감탄했다. 팔을 움직이려면 얼굴이 찡그려질 정도로 힘겨운데도, 부부는 틈날 때마다 손을 포갰다. 두 사람을 태운 휠체어는 더디더라도 항상 나란히 서서, 같은 곳을 향했다. 결혼 5년 만의 첫 여행, 제주도에서 맞이한 부부의 신혼여행이다.

지난 11월 17일부터 3박 4일간 ‘하이원 행복더하기 희망여행’ 에 참여한 다문화 장애 가족들은 제주도에서 첫 가족여행의 추억을 다졌다. /김태훈 작가 제공
지난 11월 17일부터 3박 4일간 ‘하이원 행복더하기 희망여행’ 에 참여한 다문화 장애 가족들은 제주도에서 첫 가족여행의 추억을 다졌다. /김태훈 작가 제공

남편 난송(34·뇌병변 1급)씨와 아내 김기애(43·지체장애 2급)씨 부부는 2010년 봄, 장애인자립생활센터에서 처음 만났다. 살아온 환경도, 문화도 달랐지만 두 사람은 상담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동안 누구보다 가까워졌다. “말도 안 통하는 제 이야길 귀 기울여 들어주고, 존중해주던 모습이 감동이었어요.” 난송씨가 먼저 입을 열었다. 생후 한 달 무렵, 머리를 부딪혀 뇌성마비를 앓게 된 그는 중국에서 태어나 자랐다. 조선족 어머니가 한국인 남편과 재혼하면서, 2009년에야 한국 땅을 처음 밟았다. 김씨는 난송씨의 한글 선생님이자, 상담사가 돼줬다. 겪어온 사연이 비슷한 두 사람이었다. 김씨 역시 한 살 때 뇌성마비를 앓아 말하는 것과 걷는 것이 힘겨웠다. 부모와 떨어져 홀로 살아온 그녀는 “남편과 함께하니 이겨낼 수 있었다”면서 미소를 보인다. 물론 어려움도 많았다. 2년간의 열애 끝에 아이도 생겼지만, 결혼식은 물론 혼인신고조차 못했다. 남편이 아직 한국 국적을 얻지 못했기 때문. 결국 김씨가 정부에서 받는 100만원 남짓한 기초생활수급비로 세 가족이 살아간다. 난송씨는 “국적도 없고, 변변한 직업도 없는 남편이라 항상 미안하다”면서 “가족이 함께하는 첫 여행이라 그런지 더 행복하다”고 웃었다.

다문화장애가정 30가구가 제주도로 여행을 떠났다. 하이원리조트가 사회복지공동모금회를 통해 지원하는 ‘중증장애인 가족을 위한 하이원 행복더하기 희망여행’ 덕분이었다. 캄보디아에서 온 아내와 5년 만에 신혼여행을 온 남편(지체장애 2급)도 있었고, 고려인 아내와 여덟 살짜리 딸과 가족여행을 온 아빠(지체장애 2급)도 있었다. 이들은 지난 11월 17일부터 3박4일 동안 여미지박물관·메이즈랜드·소인국테마파크 등 제주도 곳곳을 관광하며, 첫 가족여행의 추억을 다졌다.

“다문화장애인가정 대부분이 공연이나 여행 등 문화생활을 하지 못합니다. 이중고(二重苦)에 시달리기 때문입니다.”

박장우 한국장애인인권포럼 차장이 안타까운 듯 말했다. 다문화장애인가정이란 가족 중 1인 이상 장애인으로 등록돼 있는 다문화 가정을 말한다. 다문화장애인가정의 빈곤율은 59.7%로, 일반 다문화 가정의 빈곤율(41.9%)보다 약 20%가량 높다(2012년 기준). 박 차장은 “결혼 이주여성들은 언어·문화적인 장벽 때문에 취업이 어렵고, 장애를 가진 남편은 수입이 없어 생활고에 시달린다”고 설명했다.

중증장애인과 그 가족을 대상으로 하는 ‘하이원 행복더하기 희망여행’이 다문화장애가정을 대상으로 하는 프로그램을 마련한 것도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하이원리조트에 기금지원을 받아, 한국장애인인권포럼이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참가자들에게 프로그램을 제공했다. 가족이 편히 여행할 수 있도록 한 가구당 1~2명의 자원봉사자도 함께했다. 79세 어머니, 전동휠체어를 탄 57세 딸의 첫 여행을 함께한 봉사자 설은정(33)씨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모녀(母女)여행에 동행했다”고 말했다.

17일 밤엔, 30가정이 한자리에 모여 가족 심리 치유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아빠는 아들 역할을, 딸은 아빠 입장이 돼서 상황극을 시작했다. “엄마랑 말이 잘 안 통해서 힘들지 않았니?”, “아픈 아빠 돌보느라 고생했다” 등 맘 속에 묻어뒀던 솔직한 이야기들이 쏟아졌다. 여행 마지막 날, 해수와 담수가 만나는 논짓물 올레길을 걷던 가족들은 저마다 “아쉽다”, “또 오고 싶다”고 입을 모았다. 2009년 베트남 여성과 결혼한 황웅호(56·지체장애 3급)씨는 “손에 장애가 생겨 하루 벌어 하루 살아가는데도, 항상 씩씩하게 ‘괜찮다’고 말하는 아내와 아들·딸에게 아주 고맙다”면서 “정말 잊지 못할 가족여행이 될 것 같다”는 감사함을 전했다.

제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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