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3월 29일(금)

한국 사회적기업 세계적 수준… 공유와 협력 늘려야

사회적기업월드포럼 2014

재범률 낮추는 영국 ‘센트럴 키친’
요리사·영양사 교육으로 일자리 창출
감옥에서 출소 후 재범률 2.5% 불과

대만 사회적기업 ‘칠드런포어스’
정신장애 있는 아이들에게 일자리 제공
年 수익 930만달러 달해

한국의 활발한 아이디어에도 주목
유일하게 사회적기업 인증제도 있어
아름다운가게 등 이미 세계적인 수준

“밥 대신 일자리를 주자.”

25년 전, 미국 워싱턴 DC의 로버트 에거(Robert Egger)는 가난한 이들에게 밥을 나눠주는 것에서 한계를 발견했다. 대안은 간단했다. ‘고기 잡는 법’을 가르치자는 것. 밥을 먹으러 찾아오는 이들에게 요리를 가르쳤다. ‘신선하지만, 상품 가치가 떨어져서 안 팔리는’ 지역 농가의 식재료를 썼다. 지역 급식소에서 음식을 나눠주는 서비스도 시작했다. 소문이 나면서 지역 저소득 학생들이 다니는 학교 급식으로도 들어갔다. 1989년에 워싱턴 DC에서 시작한 사회적기업 ‘센트럴 키친(Central Kitchen)’ 이야기다. 오늘날 센트럴 키친에서 교육해 배출하는 요리사·영양사는 한 해 100여명. 매일 5000끼가 급식소에, 5000끼가 학교에 공급된다. ‘밥 대신 요리’가 가져온 변화는 컸다. 지난 15일, 사회적기업 월드포럼에 참여한 마이클 커틴(Michael Curtin) DC 센트럴 키친 대표는 “보통 감옥에서 출소한 이들은 마땅한 일자리가 없어 재범률이 60%에 이르는데, 센트럴 키친에서 교육받은 이들은 재범률이 2.5%에 불과하고, 워싱턴 내 최저임금보다도 높은 임금을 받는다”면서 “신선한 음식으로 학교 급식을 제공하다 보니, 지역사회 내 저소득층 아이들의 영양 상태도 좋아졌다”고 말했다. 사회적기업의 역발상이 ‘음식’을 통해 지역사회를 세우고 있다는 것이다.

◇정부·사회적기업이 함께 복지 서비스 ‘공동 생산(Co-production)’ 추세

세계적으로 많은 사회적기업이 지금까지 해결되지 못했던 사회문제를 혁신적인 발상으로 접근하고 있다. 지난 14~16일 열린 ‘제7회 사회적기업 월드포럼 2014’에서는 국내외 연사 50명이 초청돼, 사회적기업이 일으키는 사회 변화를 두고 열띤 논의를 했다.

지난 15일 더케이서울호텔에서 ‘사회적기업월드포럼(SEWF) 2014’가 열렸다. 2008년, 제 1차 사회적기업월드포럼이 스코틀랜드에서 열린 이후 올해로 7회째다. 아시아에서 열린 건 이번이 처음이다. 사진은 피터 홀브룩(첫째 줄 왼쪽에서 둘째부터) SEWF 세계운영위원장, 최종태 SEWF 한국조직위원장, 조지 프리드먼 박사, 안상훈 서울대 교수 등. /사회적기업월드포럼 2014 제공
지난 15일 더케이서울호텔에서 ‘사회적기업월드포럼(SEWF) 2014’가 열렸다. 2008년, 제 1차 사회적기업월드포럼이 스코틀랜드에서 열린 이후 올해로 7회째다. 아시아에서 열린 건 이번이 처음이다. 사진은 피터 홀브룩(첫째 줄 왼쪽에서 둘째부터) SEWF 세계운영위원장, 최종태 SEWF 한국조직위원장, 조지 프리드먼 박사, 안상훈 서울대 교수 등. /사회적기업월드포럼 2014 제공

대만 노동부 혁신센터 스훼이 신 부소장은 “1990년 이후 불황과 실업률 상승으로 고민해오다, 2011년 말부터 고용 증진 정책에 사회적경제를 포함해 다양한 지원을 해왔다”며 “대만은 올해를 ‘사회적기업의 해’로 정하고 사회적기업 전략 방향과 생태계 조성 계획을 세울 것”이라고 했다. 1995년에 설립된 대만 사회적기업 ‘칠드런포어스(Children for us)’는 제과점·식당을 세워 정신장애가 있는 아이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하는 사회적기업이다. 팔에 힘이 없는 아이들의 특성을 반영해 손님에게 면과 국물을 따로 제공하는 서비스도 개발했다고 한다. 칠드런포어스의 연 수익은 930만달러(약 98억원)다. 이 밖에도 두오포(차량 픽업 서비스), 포웨이보이스(외국인 근로자 신문), 알로하홀딩(농업인 지원), 소셜엔터프라이즈 인사이트(대만 최초 중국어 정보 플랫폼) 등 다양한 사회적기업이 만들어지고 있다.

유럽에선 국가가 제공하던 복지 서비스를, 사회적기업과 주·지역정부가 협력해 함께 제공하는 ‘공동 생산(Co-production)’도 증가하는 추세다. 게리 히긴스(Gerry Higgins) 영국 사회적기업 지원 단체 CEIS 대표는 “영국에서는 ‘장애인들을 위한 돌봄 센터 운영’부터 ‘입양 서비스 및 절차’ 등에 이르기까지 정부와 비영리단체, 사회적기업의 ‘공동 생산’으로 바뀌고 있다”며 “스코틀랜드에서도 2015~2025년까지 10년짜리 사회적기업 정책을 짜고, 그 안에 ‘공동 생산’을 포함했다”고 말했다. ‘공동 생산’이란 전통적으로 국가가 제공해온 복지 서비스를 사회적기업과 정부가 함께 논의해 새롭게 디자인하는 것이다.

◇아시아에서 사회적기업 아이디어 가장 활발한 나라, 한국

이번 포럼에서는 우리나라 사회적기업의 성과에 주목하는 목소리도 높았다. 피터 홀브룩 사회적기업협의회장은 “아시아에서 대한민국만큼 사회적기업이란 아이디어를 깊게 받아들인 나라는 없다”고 했다. 2007년 사회적기업육성법이 도입된 이후 우리나라의 사회적기업은 1012개나 된다. 길현종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은 “한국만이 유일하게 사회적기업 인증 제도를 갖고 있는데, 현재 2만명이 사회적기업에 고용돼있다”며 “2012년 조사해보니, 민간 기업 직원 수 증가율보다 사회적기업 직원 수 증가율이 오히려 20.7%포인트나 높았다”고 말했다. 길 연구위원은 하지만 “35개 사회적기업을 분석한 결과, 사회적기업으로 인증받은 지 1년이 지나면 장애인 직원 수가 급증하지만 정부 지원이 끊기고 나면 취약 계층 직원 수는 오히려 감소했다”며 한계도 지적했다.

한편, 우리나라 사회적기업이 도약하는 데 있어 가장 필요한 것으로 ‘네트워크’의 중요성이 강조됐다. 게리 히긴스 CEIS 대표는 “아름다운가게와 아름다운커피 두 곳을 방문했는데 두 곳 모두 매우 뛰어났고 세계에 내놓아도 손꼽힐 정도의 수준이었다”며 “다만, 한국 사회적기업들은 기업 간 ‘공적 네트워크’가 취약한 편이라, 그 부분을 보완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그는 “영국 내 102개 사회적기업이 함께하는 ‘영국 사회적기업 네트워크’는 사회적기업들 간 정기적 지식공유가 이뤄지며, 캐나다 몬트리올 사회적기업 네트워크와도 연계해 지적재산권 공유, 공동 콘퍼런스 개최, 리더십 교류 프로그램도 운영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임팩트 투자의 중요성도 강조됐다. 왕윤종 SK 수펙스(SUPEX) 추구협의회 전무는 “아직 국내에선 임팩트 투자에 대한 개념도 잘 모르고, 동기가 부족해 ‘돈이 안 된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며 “영국에서도 재무적 가치 외에 공공의 가치(사회적 가치)를 인정하는 측정법을 개발하기 위해 10년 동안 노력했듯이 국내에서도 이 부분을 발전시키고 구체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임창규 한국사회투자 사무국장은 “사회적 투자로 해결할 수 있는 분야를 잘 골라야 하고, 공공·소셜·민간 세 분야의 협력이 매우 중요하다”며 “공공 영역에서 사회적 금융기관을 육성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최태욱·주선영 기자

유성운·문주은 청년기자(청세담 2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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