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19일(금)

[희망 허브] 함께 나눌 동료 많아야 ‘공간의 기적’ 일어납니다

알렉스 힐만 ‘인디홀’ 대표 인터뷰
8년 전 함께 일하는 공동체 꿈꾸며 설립
월 정기회원권 판매… 1일 체험엔 30달러
게임·회화 작품 등 다양한 협업 이뤄져
“우리가 지금까지 성장해 온 이유는 공간보다 유대·신뢰 중시했기 때문”

필라델피아에 위치한 ‘인디홀(Indy Hall)’은 미국 코워킹 스페이스(Coworking Space·공유 공간)의 ‘원조’다. 2006년 15명의 멤버로 처음 시작했는데, 매년 성장을 거듭해 현재 300명 이상의 멤버들이 이곳을 애용한다. 전 세계적으로 코워킹 스페이스 숫자만 3000여개에 달하고, 국내에서도 최근 2~3년 새 10여곳이 문을 열 정도로 ‘붐’을 이루고 있다.

하지만 공간만 만들어 놓는다고 사람이 찾을 것이라는 기대는 금물이다. 늘어가는 공유 공간을 채울 사람과 콘텐츠가 없어 ‘텅 빈 공간’만 덩그러니 있는 경우도 있다. 지난달 30일, 서울시 청년허브 주최 콘퍼런스에 참여한 알렉스 힐만(Alex Hillman) 대표를 만나 지난 8년간의 경험과 노하우를 들었다. 인디홀을 초청한 코워킹 청년기업 ‘앤스페이스’는 역삼동 동그라미재단 공간을 코워킹 플레이스로 위탁 운영하는 ‘오픈콘텐츠랩(www.opencontentslab.org)’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편집자 주


출처: David Kidd:Govering, CJDawsonPhotography.com 알렉스 힐만(Alex Hillan)대표와 인디홀(Indy Hall) 내부 공간의 모습. 그는 “사람들 간의 신뢰가 없고 공동체가 형성되지 않았다면, 모르는 사람들에 둘러싸인 스타벅스에서 일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지 않냐”며 “신뢰가 있는 곳에 관계가 있고, 협력이 만들어지고, 혁신이 만들어진다”고 강조했다.
출처: David Kidd:Govering, CJDawsonPhotography.com 알렉스 힐만(Alex Hillan)대표와 인디홀(Indy Hall) 내부 공간의 모습. 그는 “사람들 간의 신뢰가 없고 공동체가 형성되지 않았다면, 모르는 사람들에 둘러싸인 스타벅스에서 일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지 않냐”며 “신뢰가 있는 곳에 관계가 있고, 협력이 만들어지고, 혁신이 만들어진다”고 강조했다.

―’공유경제’가 트렌드도 아니었던 2006년도에 인디홀을 만들게 된 계기는 무엇이었는가.

“외로워서였다. 2000년대 중반, 웹 개발자로 일하던 직장을 관두고 프리랜서로 전업했다. 근무 장소나 시간도 유연하게 할 수 있을 테고, ‘이래라저래라’ 지시하는 상사도 없으니 능률이 훨씬 오를 거라 생각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함께 일하는 누군가가 없다’는 게 얼마나 아쉬운 일인지 깨달았다. 동료가 없으니 함께 맥주 한잔하며 풀리지 않는 문제를 고민할 수도 없고, 잘됐을 때 함께 기뻐할 수도 없었다. 꼭 ‘공간’을 만들 생각으로 시작한 건 아니었다. 마음 맞는 사람들이 모여 서로에게 힘도 되고 혁신적인 시너지도 낼 수 있는, 일종의 ‘함께 일하는 커뮤니티(Community·공동체)’를 만들어볼 계획이었다. 그게 확장돼 지금의 인디홀이 됐다.”

―인디홀은 어떻게 운영되고, 어떤 사람들이 주로 찾는 공간인가.

“인디홀을 체험해보고 싶으면 하루에 30달러(3만2000원)를 내고 ‘데이패스(Day pass)’를 살 수 있다. 정기적으로 이용하고 싶으면 ‘월 정기회원권’을 사야 한다. 4가지 옵션이 있는데, 월 1회, 월 6회, 일주일 3회, 일주일 5회씩 이용하는 회원권을 각자가 원하는 대로 내면 된다. 일주일에 3회씩 이용하면 200달러(21만원)를 내야 한다.

상상할 수 있는 모든 분야의 사람들이 다 이용한다고 보면 된다. 기술자, 작가, 예술가, 변호사, 보험계약자, 과학자, 대학 종사자, 음악가…. 그들이 이곳을 찾는 이유는 바로 ‘소속감’ 때문이다. 다른 코워킹 스페이스에서는 대부분 공간만을 공유할 뿐 공동체 의식이나 소속감에 대한 고민은 부족한데, 인디홀 멤버가 되면 훌륭한 동료와 지지 체계가 생긴다.”

―낯선 공간을 함께 이용한다고 해서 공동체 의식이 생겨나는 건 아닐 텐데….

“인디홀은 단순히 ‘코워킹 스페이스’가 아닌, ‘코워킹 커뮤니티(Coworking community)’다. 인디홀을 시작한 계기도 ‘공간’이 아니라 ‘공동체’ 때문이었다. 직장을 관둔 이후 1년간 지역사회 안에서 술집이나 이웃집 파티 등 사람이 모이는 곳이라면 어디든 갔다. 공동체에 목마른 사람들이 나 말고도 많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맘 맞고 뜻 맞는 사람들이 한명씩 모이자 공동체가 만들어졌고, 함께 있을 공간이 필요해졌다. 팀을 나눠 좋은 공간을 물색하러 다니게 됐고, 공간 이용도 어떻게 할지 자발적으로 정했다. 인원이 늘면서 오프라인뿐 아니라 온라인 창구를 활성화해, 유대감을 가질 수 있도록 한다.”

―”한 공간에 다양한 주제 간 예상치 못했던 협업과 혁신이 일어난다”고 했는데, ‘공간이 갖는 힘’이 무엇이라고 보는가.

“코워킹 스페이스에서 사람들 간의 관계와 신뢰야말로 ‘혁신’의 기반이다. 혁신적인 아이디어는 혼자 골똘히 생각한다고 해서 어느 날 갑자기 ‘유레카!’ 하고 나타나는 게 아니다. 미국의 유명 작가 스티븐 존슨은 ‘탁월한 아이디어는 어디서 오는가(Where good ideas come from)’란 책에서 역사적으로 혁신적인 아이디어들이 나오게 된 과정을 분석했다.

르네상스시대부터 현재까지, 혁신적인 생각들은 살롱이나 카페, 도서관, 회의실 구석 테이블 등에서 사람들이 ‘설익은’ 생각들을 나누는 과정에서 구체화됐다. 신뢰가 기반이 될 때, 사람들은 각자의 ‘불완전하고 설익은 생각’을 기꺼이 나눈다. 이후 협력하는 데에도 신뢰는 핵심적이다. 처음 인디홀 공간을 구상할 당시 미국에는 다른 몇몇 코워킹 스페이스 모델이 있었지만, 모두가 오래가지는 못했다. ‘혁신’을 강조하면서, ‘사람’에 대한 부분을 놓친 데 이유가 있다.”

―인디홀에서 일어난 여러 협업의 사례들이 궁금하다.

“파커 위트니라는 한 인턴은 입사 당시 ‘무얼 하고 싶으냐’는 질문에 ‘잘 모르겠다. 앞으로 찾아보고 싶다’고 했었다. 인디홀에서 인턴으로 일하면서, 다양한 사람으로부터 그래픽, 디자인 등 기술을 배우더라. 우연히 인디홀을 종종 찾던 세계적인 게임회사 직원 한명과 친해졌는데, 둘이 술자리에서 이야기하다 같이 게임을 만들어보기로 했다.

파커가 일러스트레이션 작업을, 게임회사의 제이코가 게임을 개발했다. 첫 게임은 돈을 많이 벌진 못했지만, 둘은 함께 일하는 게 아주 잘 맞고 즐겁다는 것을 알았다. 이들이 두 번째로 만든 게임인 ‘도미노’는 애플스토어나 안드로이드에서 대박이 났다. 그리고 최근엔 인디홀의 또 다른 멤버가 그 팀에 새롭게 합류했다. 예술가들 간의 협업도 흔하다. 화가들은 늘 영감을 주는 소재에 목말라 있었고, 한 작가는 10개 남짓 되는 문장을 쓴 뒤로 책이 더는 써지질 않아 고민 중이었다. 예술가들끼리 한데 모여 다 같이 맥주를 마시다, 작가가 쓰고 이어가지 못한 문장을 소재로 5명의 화가가 작품을 만들기로 했다. 각기 눈을 가리고 두 문장씩을 골라, 그것으로 총 10개의 회화·조각 작품이 만들어졌다. 이 작품들은 인디홀 갤러리에서 ‘Take what you need(네가 필요한 걸 골라)’라는 제목으로 전시되기도 했다. 그 밖에 다양한 협력과 창의적인 아이디어들이 ‘가벼운 대화’나 편안한 생활 속에서 자신도 모르게 일어나고 있다.”

―지난 2~3년간 우리나라에서 많은 코워킹 스페이스들이 생겨났다. 하고 싶은 조언이 있다면.

“많은 이가 ‘좋은 공간을 만들어놨는데, 사람이 안 온다’며 어떻게 해야 할지 묻는다. 코워킹은 전적으로 선택의 문제다. 내가 카페든 사무실이든 어디서든 일할 수 있지만, 특정 공간에서 일하겠다는 것이고, 혼자 일하거나 상사와 일하는 것이 아니라 ‘너’랑 일하겠다고 선택하는 거다.

이 선택이, 단순히 ‘좋은 건물이나 환경’에만 좌우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내가 믿는 사람들에 둘러싸여서 일하고, 신뢰에 기반을 둬서 일하는 건 중요한 요소다. 사람들과 신뢰를 쌓고, 커뮤니티를 만들어나가는 과정이 시간이 걸리고 느린 것 같지만, 지지 기반이 만들어지고 신뢰가 형성되고 나면, 혁신의 요소는 어디에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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