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3일(화)

빗물 모아 만든 식수, 베트남 농촌에 생명수 되다

롯데백화점·환경재단이 만든 빗물관리시설
깨끗한 식수 제공해 경제·보건 문제 개선될 것

“느억 므어 젓 응언(빗물이 맛있어요).”

베트남 하노이 도심에서 약 15㎞ 떨어진 자그마한 농촌 ‘쿠케 마을’에 위치한 쿠케 유치원. 500여 명의 유치원생 및 교직원의 시선이 한곳에 모였다. 물맛을 본 오옛(3)양이 갈증을 해소한 듯 개운한 표정을 지었다. 이 물은 바로 12톤(t) 규모의 빗물관리시설에서 나흘간 모은 빗물을 정화해 만든 것이다.

빗물관리시설이 마을에 들어서기 전, 마을 사람들은 생수를 사서 먹어야 했다. 하노이 신도시에서 배출되는 폐수로 마을 하천은 사람의 접근조차 쉽지 않을 정도로 뿌옇게 오염됐고, 지하수에서도 비소를 비롯한 중금속이 검출됐기 때문이다. 쿠케 유치원의 응오 티 리에우 원장은 “쿠케 지역 6인 가족의 월 소득이 80만동(약 4만원) 정도인데, 한 가정이 매달 유치원에 내는 생수값만 10만동(약 5200원)에 달했다”고 밝혔다.

빗물관리시설을 통해 정화된 빗물을 마시는 쿠케초등학교 어린이 모습.
빗물관리시설을 통해 정화된 빗물을 마시는 쿠케초등학교 어린이 모습.

문제를 해결할 방법은 없을까. 우물을 만들어주는 것보다 지속 가능한 방법은 없을까. 이를 고민하던 환경재단은 오는 9월 하노이 지점 오픈을 앞두고 글로벌 사회공헌 활동을 준비하던 롯데백화점과 ‘빗물을 식수로 만들자’고 의기투합했다. 임수연 환경재단 NGO네트워크 부장은 “비가 많이 오는 베트남의 특성을 활용해 빗물관리시설을 제작하는 게 훨씬 효과적이라는 결론을 냈다”고 밝혔다. 이미 지하수가 오염돼 있기 때문에 우물을 파는 것은 효과가 떨어질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 반면, 연평균 강우량이 2151㎜에 달할 정도로 비도 많이 내리고 주민들도 물이 부족할 경우 빗물을 모아 대체 식수로 활용할 정도로 빗물 이용에 익숙한 점에 주목한 것이다. 재단은 사업의 전문성을 강화하기 위해 현지에서 5년 넘게 빗물관리시설 도입을 연구하던 서울대 빗물이용연구센터와도 협력했다.

쿠케유치원에 설치된 12톤 규모의 빗물관리시설 전경.
쿠케유치원에 설치된 12톤 규모의 빗물관리시설 전경.

쿠케 초등학교와 유치원에 각각 10톤과 12톤 크기로 설치된 빗물관리시설을 살펴보면 깨끗한 식수를 만들기 위한 다양한 장치를 확인할 수 있다. 우선 막 내리기 시작한 비는 공기 중의 먼지나 매연을 머금을 수 있다는 점을 고려, 초기 100리터의 빗물을 따로 제거하는 장치를 설치했다. 시설 설계를 맡은 한무영 서울대학교 빗물이용연구센터 소장은 “물이 차면 장치 내부에 있던 공이 떠올라 입구를 막고 나머지 물을 물탱크로 보내는 구조”라고 설명했다. 또한 스테인리스 저장탱크 2개를 마련해, 앞의 탱크에서는 큰 이물질을 가라앉히고 뒤쪽 탱크에서는 대장균을 거를 수 있는 정수필터를 설치했다. 시설이 고장 날 경우를 대비해 제작 과정에서 현지 자재를 최대한 활용하고 베트남 엔지니어링 업체 ‘IESE’를 시공에 참여시켰다.

약 3개월의 공정을 거쳐 지난달 22일 탄생한 빗물관리시설은 등장과 동시에 단숨에 쿠케 마을의 주요 수원(水源)으로 자리매김했다. 시설이 본격적으로 가동되기 시작한 7월 23일부터 3일간 무려 3600리터의 물이 사용돼, 209만동(약 10만원)의 생수값을 절감하게 된 것이다. 누엔 반 봉 탕와이현 당서기는 “5000명의 주민이 깨끗한 물을 마실 수 있게 됨에 따라 마을의 경제·보건 문제가 크게 나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원준 롯데백화점 대표이사는 “기업과 학계, NGO가 함께 머리를 맞대 만들어낸 글로벌 사회공헌 모델인 만큼 이번 사업이 지속적으로 베트남 전역에 확산될 수 있도록 노력해나가겠다”고 말했다. 환경재단은 서울대 빗물이용센터, 하노이공과대학과 함께 6개월간 지속적으로 시설의 수질 관리 활동을 가질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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