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0일(토)

[박란희의 작은 이야기] 이젠 진짜 복지 개혁을 시작할 때

박근혜 정부가 ‘규제 개혁’에 한창입니다. MB 정부 초반에도 대불산단의 ‘전봇대 규제’가 대표 사례로 제시되면서 “규제를 없애자”고 나라가 들썩들썩하던 게 떠오릅니다. 송파 세 모녀 자살 사건이 이슈가 되자, 최근 사회복지 관계자 한 분이 저희에게 이메일을 보내왔습니다. “이명박 정권 때 방송에 보도된 ‘공원 공중 화장실에서 기거하는 3남매’ 때에도 소외 계층 찾아내기 총력전이 벌어져 한 달여 호들갑을 떨었는데, 이번에도 똑같은 방법이 현장에서 반복돼 너무 답답하다”고 했습니다.

당시는 지금보다 더했습니다. 동사무소뿐만 아니라 세탁소협회, 목욕탕협회, 음식점협회, 사회복지 관련 단체들까지 모두 나서 띠를 두르고 “사각지대를 찾자”고 나섰지요. 하지만 찾는다고 해결되지는 않습니다. 100명을 찾았으면, 이 100명에 대한 맞춤형 지원이 이뤄질 대책이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그 대책이란 게 대개 이런 식입니다. 시·군·구, 지역사회에 흩어져 있는 복지 서비스망을 통합 지원하는 시스템 ‘○○센터’가 만들어집니다. 정부 부처나 지자체는 그곳에 3년 정도 사업비를 주고, 민간단체에 입찰을 통해 운영을 맡기거나 퇴직 공무원을 센터장으로 내려보냅니다. 흩어진 지역사회 네트워크를 엮는 초특급 전문적인 일은 월 100만원짜리 단기계약직들이 맡게 되고, ‘○○ 시범사업’이라는 이름으로 기존에 해왔던 비슷한 종류의 일을 반복합니다.

만약 이 와중에 이번 송파 사건과 같은 대형사건이 나면, 언론과 정치권, 시민단체 등은 “정부는 왜 제대로 된 대책을 세우지 않느냐”고 질타합니다. 그러면 정부는 또다시 예전의 써먹었던 대책을 이름과 콘텐츠만 약간 바꾼 채 발표합니다. 이러다 보니 지역사회의 복지 서비스망을 들여다보면, 정부로부터 일정한 사업비를 받아 운영하는 고만고만한 중간지원조직이나 종합지원센터 등이 많습니다. 물은 안 나오는데, 이곳저곳 우물만 파느라 돈만 낭비하는 구조입니다.

정부와 지자체는 국가가 당연히 해야 하는 수많은 복지 사업에 대한 위탁 운영권을 민간에 맡기면서, 이 권한을 무기로 사회복지 시설 수천 곳을 치열한 생존경쟁의 장으로 밀어넣습니다. 지자체에선 3년마다 지역복지관을 위탁운영하는 법인을 재심사하는 권한을 갖고 있다 보니, 사회복지법인은 지자체의 눈 밖에 나면 안 됩니다. 어느 지역에선 한 대학교가 복지관 위탁운영을 신규로 받기 위해 지자체장을 학교의 명예박사로 앉히려고 시도한 일도 있었다고 합니다. 상황이 이러니 현장에선 ‘눈치 보기’와 ‘밥그릇 싸움’이 이뤄집니다. 이 시스템은 규제보다 더한 부작용이 있지만, 그 누구도 수십 년째 이어져온 이 시스템을 혁파할 생각을 감히 못 합니다.

사회복지 전문 인력을 키워내고, 복지 전달 체계를 민간 주도로 바꾸고, 효율적인 민관 협력 시스템을 만들어야 합니다. 요즘 동사무소의 사회복지사들은 너무 힘들다고 합니다. 기초생활수급자에 탈락한 이들이 ‘지금이 기회다’ 싶어 민원을 제기하기 때문이지요. 작년 한 해 쏟아지는 행정 업무로 사회복지 공무원이 4명이나 자살해 “동사무소에 악성 민원인이 너무 많다”는 보도가 이어졌던 게 떠오릅니다.

다행히 공원 삼남매는 방송 보도로 온 국민의 관심을 끈 덕분에, 집도 구하고 학교도 다닙니다. 하지만 이슈가 있을 때만 해결되는 반짝 복지로는 아무런 문제를 해결할 수 없습니다. 송파 세모녀 자살사건도 곧 잊혀지겠지요. ‘양치기 소년’을 너무 많이 봐서일까요. 복지부에서 떠들어도 현장 사회복지사들은 기대하지 않는 눈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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