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왔습니다. 코로나도 이제 막바지로 치닫고 있습니다. 인류가 농경을 시작한 이래 수많은 전염병에 시달려 왔지만, 지금까지 잘 살아왔듯이 사스와 메르스, 그리고 코로나를 지나 또 어떤 바이러스가 찾아오더라도 우리는 잘 이겨낼 것입니다. 이번에는 RNA 백신이라는 걸출한 과학기술 덕분에 글로벌 팬데믹이라는 초유의 사태에도 피해를 줄일 수 있었습니다. 이제 코로나도 전파력은 커지고 치명률은 떨어지는 경로에 접어들면서 그 끝이 보이는 듯합니다.
지난 두 해는 마스크와 거리두기로 모두에게 힘든 시간이었습니다. 우리 이웃들은 알록달록하던 색을 잃고 점점 더 무채색으로 바뀌어 갔고, 이웃 간 거리만큼 사회는 생기를 잃어갔습니다. 그렇게 힘든 시간을 지나왔습니다. 이제 봄과 함께 다시 우리가 잃어버린 색을 찾아갈 때입니다.
남도로부터 시작된 꽃 소식은 이제 수도권에 다다라 절정을 치닫고 있습니다. 코로나의 두려움에서 벗어나 수많은 사람이 산과 들을 찾고 있습니다. 또 많은 사람은 해외로 떠날 준비를 하는 듯합니다. 사회학자들은 보복 소비가 일어나면서 거리로 관광지로 인파가 몰릴 것으로 예상합니다. 이럴 때 농촌으로 여행을 떠나보는 건 어떨까요!
흰 매화가 지고 벚꽃이 만개하는 시절이 지나면 붉은 복숭아 꽃이 온 산을 물들이는 때가 옵니다. 지천으로 깔린 노란 민들레는 은빛 씨앗을 하늘로 흩뿌리고 영산홍이 길거리를 수놓을 때면 사과꽃이 수줍게 피기 시작합니다. 마늘과 양파밭에 녹음이 짙어지면 감나무에서는 연노란 잎이 녹색을 더해가면서 때늦은 감꽃이 있는 듯 없는 듯 잎사귀 사이에 자리를 잡습니다. 가끔 마을 입구나 산 어귀에서 마주치는 연보라색 오동나무 꽃을 볼 때면 그 감동은 몇 배로 증폭됩니다. 수십 년 동안 4월 한 달 동안 일어나는 자연의 변화를 봐왔지만 결코 질리는 법이 없습니다. 제가 농업 분야에서 일하면서 얻는 최고의 보상입니다.
시골에 가면 체험농장이라는 곳도 한번 찾아보시길 바랍니다. 지금은 가장 부드러운 딸기를 맛볼 수 있는 때입니다. 도시의 슈퍼에서 살 수도 있지만 농장에서 맛보는 딸기는 또 다릅니다. 음식을 눈으로 먹는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를 깨닫게 되는 순간이죠. 아이들과 또는 부모님들과 함께하면 더 멋진 경험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4월부터는 맛있는 참외가 익어가는 계절입니다. 아마도 올해는 참외가 유난히 맛있을 것입니다. 겨울 가뭄이 심했을 때 좋아지는 한 가지를 놓치면 안타깝죠.
전국에는 농촌을 경험할 수 있는 체험농장이 1100개가 넘어갑니다. 딸기와 참외뿐 아니라 복숭아, 자두, 수박, 사과, 바나나 등 수많은 농산물을 눈과 손과 입으로 맛을 볼 수 있습니다. 때를 잘 맞추어 여행을 계획하면 1년 내내 농촌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예산의 은성농원에서는 과수원에서 바비큐와 파스타를 즐기고, 춘천의 해피초원목장에서는 춘천호가 내려다보이는 언덕에서 한우로 만든 음식을 맛볼 수 있습니다. 커다란 눈망울을 가진 누렁이 소와 눈을 맞추고 농장주처럼 사과나무 사이를 걷다 보면 왜 많은 은퇴자가 농촌을 꿈꾸는지도 절로 수긍하게 됩니다.
농촌을 이렇게 짧게 경험하는 것도 좋지만 커가는 아이들이 농촌과 함께 자연과 좀 더 교감하는 걸 기대한다면 농촌교육농장도 눈여겨 볼만합니다. 체험농장이 농촌을 둘러보고 맛을 보는 짧은 방문이 중심이라면 교육농장은 아이들이 직접 참여해서 그리고, 만들고, 심고 가꾸는 교육프로그램이 중심인 농촌교육장입니다. 가지치기한 딸기를 포트에 옮겨 심고, 참나무에 버섯균을 접종하고, 곤충을 키우는 과정을 여러 친구와 함께 해나갑니다. 용인시에 있는 곤충테마파크를 찾아서 애들과 함께 풍뎅이가 장수하늘소가 되는 과정에 참여하는 것도 잊지 못할 추억이 될 것입니다. 전국에는 국가 인증을 받은 농촌교육농장이 250곳이나 있습니다. 모두가 도시와 농촌의 거리를 좁히기 위한 농업인들의 마음입니다.
소설가 히가시노 게이고는 사람은 자신이 서 있는 땅의 색에 따라 자신의 색이 결정된다고 합니다. 우리의 아이들은 시시각각 색이 바뀌어 가는 자연과 좀 더 가까워지게 하면 어떨까요? 아이들이 발을 딛고 선 땅만큼 다양하고 풍부한 천연색 인생을 살아갈 수 있도록 말이죠.
남재작 한국정밀농업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