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데믹과 기후위기로 혼란한 시대에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하고 어디로 나아가야 할까. 코로나 이후 사회의 흐름을 진단하고 삶의 방향성을 제시하는 ‘제2회 현대차정몽구재단 미래지식 포럼’이 17일 온라인 생중계로 개최됐다. 현대차정몽구재단과 조선일보 더나은미래가 공동 주최한 이번 포럼에서는 ‘선택은 어떻게 세상을 바꾸는가’라는 주제로 여섯 가지의 주제 강연이 차례로 진행됐다. 이날 ‘선택’을 주제로 인지심리학·수학·서양철학·국어국문학·진화심리학·사회학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전하는 지식을 차례로 공유한다. |
“사람들은 흔히 내 안에 일관되고 합리적인 선택을 하는 하나의 ‘자아’가 있다고 흔히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런 자아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옳고 그름을 떠나 상황에 따라 생존에 유리한 선택을 할 뿐이죠. 이를 인정하는 것이 사회적 갈등 해결의 시작이 될 수 있습니다.”
전중환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는 17일 ‘제2회 미래지식 포럼’에서 “우리의 선택은 내 행동의 총감독과 같은 ‘자아’가 내리는 것이 아니다”라며 “어떤 상황에 처했는가에 따라서 그에 맞는 행동을 취할 뿐”이라고 강조했다. 사람들은 종종 어떠한 선택의 이유를 스스로도 설명하지 못한다. 일관된 자아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전 교수는 이러한 사례로 심리학자인 로버트 커즈번의 연구를 소개했다.
“연구 참가자들에게 묘비에 소변을 보는 행동처럼 피해자를 꼭 집어내기 어려운 행동을 보여주고 도덕적 판단을 묻습니다. 참가자들은 ‘돌아가신 분의 지인이 정신적 피해를 받을 수 있어 잘못된 행동’이라고 답하죠. 이때 연구진이 ‘살아있는 지인이 없다면 소변을 봐도 되느냐’ 재차 물으면 말을 바꿔 다른 이유를 내놓습니다. 즉 참가자들의 도덕 판단은 지인들의 피해를 고려한 것이 아니라 상황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을 알 수 있죠.”
상황에 따라 다른 선택을 내리는 인간의 마음이 어떻게 형성됐는지는 찰스 다윈의 ‘자연 선택’ 이론에서 해답을 찾을 수 있다. 자연 선택은 환경에 적합한 특성을 가진 생물체가 다른 생물체에 비해 보다 더 잘 생존하고 생식한다는 이론이다. 전 교수는 “인류 진화의 역사를 보면 99%의 시간은 수렵과 채집 생활에 해당한다”며 “인간의 마음 역시 수렵과 채집 생활을 보내며 생존과 번식에 유리하도록 진화해온 모듈의 집합이라고 할 수 있다”고 했다.
자연 선택에 따라 형성된 인간의 마음은 생존과 번식에 유리하도록 자신을 포장한다. 인간의 행동은 합리적인 자아의 선택이 아니라 일종의 ‘언론 담당관’이 수행하는 ‘평판 관리’라는 것이다. 전 교수는 “100명 남짓한 수렵, 채집 사회에 살았던 조상은 자신이 유능하고, 착하고, 오래 살 것이라는 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적극적으로 홍보해야 사회적 상호작용의 파트너로 쉽게 선택받을 수 있었다”라고 설명했다. 전 교수는 “심지어 바람피우는 행동을 했을 때에도 그 이유를 성적 쾌락이 아닌 불가피한 이유가 있었다고 둘러대게 된다”며 “충동에 못 이기는 사람으로 인식될 경우 생존의 어려움을 겪을 수 있어 이유를 꾸며내는 것”이라고 했다.
인간의 마음속에 있는 ‘언론 담당관’ 모듈은 스스로 과대평가하고 자신의 미래를 지나치게 낙관하게 한다. 전 교수는 “스스로를 포장할 때 나부터 참이라고 믿어야만 남들을 설득할 수 있다”며 “대부분의 사람에게선 평균적인 사람들에 비해 자신이 더 착하고 유능하다고 믿는 경향이 나타난다”고 했다. 문제는 이러한 성향이 외부 세계를 부정확하게 인식하게 해 사회적 갈등을 유발한다는 점이다. 전 교수는 “자연 선택에 따라 진화한 인간의 마음은 결과적으로 번식과 생존에만 도움이 된다면 외부 세계를 부정확하게 인식하도록 한다”며 “이러한 편향은 정치, 사회 등 모든 분야에서 ‘내 편’과 ‘네 편’을 나누는 양극화를 만들어 낸다”고 했다.
정치·사회적 갈등이 진화에 따른 것이라고 해서 이를 체념하고 그대로 받아들일 순 없다. 갈등 해결을 위해선 나 자신이 외부 세계를 부정확하게 인식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인정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전 교수는 “우리가 본성에 따라 각자에게 유리한 선택을 했을 뿐이라는 것을 인정하고 실질적이고 객관적인 자료에 입각해 사회문제 해결을 위한 건강한 논의가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내가 상대방에게서 느끼는 부정적인 감정들은 외부 세계를 정확하고 객관적으로 반영하고 있지 않습니다. 우리 안에 항상 합리적인 판단을 내리는 자아가 없기 때문이죠. 이러한 사실을 기억한다면 일상생활에서 나와 다른 선택을 한 이들에게 품는 부정적인 감정을 좀 더 쉽게 다스릴 수 있을 겁니다.”
강명윤 더나은미래 기자 mymy@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