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0일(토)

안전 먹을거리 찾는 18만 조합원, 농업도시 구례를 구하다

조합원들 모금으로 만든 공장 거대 먹을거리 단지로 거듭나
지역민 고용해 생산성 늘고 지자체는 설비비 지원하기도

“허름한 창고 같은 곳에서 어렵사리 친환경 제품을 개발하고, 여기저기서 ‘OEM'(주문자 상표 부착 생산)으로 물건 만들어내고…. 불과 2~3년 전만 해도 그렇게 물품을 공급했죠.”

박인자 아이쿱친환경유기인증센터 회장이 드넓게 펼쳐진 단지를 둘러보며 말했다. 전남 구례군 용방면 죽정리에 있는 ‘구례자연드림파크’. 지난 9일 찾은 이곳은, 잠실주경기장의 두 배 규모인 4만5000평(약 14만9000㎡) 대지에 물류센터와 저장창고를 비롯해 라면·만두·육가공 제품 공장 등 30여개 업체가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아이쿱생협(iCOOP소비자활동연합회)’의 18만 조합원을 위해 물품을 만드는 생산단지다. 오항식 쿱 서비스 경영대표는 “구례에는 종업원이 50명 넘는 사업체도 하나 없는데, 이곳에는 230여명이 일하고 있다”고 했다.

왼쪽 사진은 단지 내 라면 공장의 작업 전경. 아이쿱 생협 측은 "구례자연드림파크를 향후 '소비자가 찾아오는 식품단지'로 가꿔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아이쿱생협 제공
왼쪽 사진은 단지 내 라면 공장의 작업 전경. 아이쿱 생협 측은 “구례자연드림파크를 향후 ‘소비자가 찾아오는 식품단지’로 가꿔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아이쿱생협 제공

처음 방문한 곳은 단지 내에서 가장 먼저 완공(작년 5월)된 라면 공장이다. 전북, 전남, 경남 지역에서 나는 우리 밀이 사용되고 있다고 한다. 이 공장에서 생산되는 라면은 한 달 평균 50만개. 전국아이쿱 생협 매장에서 소비된다. 오항식 대표는 “대기업에서 만드는 라면이 700원 정도인데, 이곳에서 만드는 우리 밀 라면은 3배가 넘는 원가를 씀에도 630원 수준”이라며 “단지가 규모화될수록 친환경, 유기농 등 상품 경쟁력과 원가 절감 효과도 커진다”고 했다. 라면 공장에는 총 40억원 정도가 들었는데, 모두 조합원들의 자발적인 참여로 모아진 것이라고 한다.

현재까지 이 클러스트에 투자된 금액은 약 600억원. 2011년도부터 시작된 조합원들의 모금(출자·차입) 행렬이 조그만 공장을 거대 단지로 바꿨다. 라면, 도우(빵을 만드는 생지), 만두 공장 등 필요한 설비가 생기면 홈페이지, 매장 등을 통해 도움을 호소했고, 그때마다 조합원들의 참여가 이어졌다. 50만원부터 3000만원까지, 차입금(조합 상대 신용대출의 일종)을 낸 조합원만 전국적으로 2만5000여명에 이른다. 오 대표는 “이번 달에 쌀, 콩, 밀의 수매 자금을 조합원들에게 요청했는데, 조합원 4000명이 일주일 만에 100억원을 모으기도 했다”고 한다.

이날 방문 행사에 참여한 구리모토 아키라(Kurimoto Akira) 일본생협총합연구소 이사는 “일본에서는 대부분 생산자 측에서 먼저 시도하는데, 한국에서는 소비자가 주도하고 있다는 점이 매우 인상 깊다”며 “세계적으로도 굉장히 보기 드문 사례”라고 말했다.

“15년 전쯤 조합원들이 쌀이나 계란(유정란) 등의 안전한 생산지를 직접 찾았죠. 그런 물품들이 하나둘 늘어났어요. 2000년, 시흥시 물류센터에 큰불이 났는데, 조합원들이 돈을 모아 복구 비용을 냈어요. 조합원의 힘을 확인하는 계기였죠. 조합원들이 제품에 대한 의견을 내면, 직원 그룹에서 이를 개발하거나 생산지를 찾고, 이에 필요한 비용은 다시 조합원들이 모으고…. 이런 선순환구조가 지금의 클러스터를 탄생시킨 것이죠(박인자 회장).”

협동조합의 원칙 중 하나인 ‘지역사회 기여’도 자연스럽게 이뤄진다. 오 대표는 “최근 전북 지역의 농민 수가 줄어 농업 생산성이 떨어지고 있는데, 클러스터를 통해 1차 생산자의 참여와 생산물 소비의 안정을 도모할 수 있다”고 했다. 올해 이곳에서 소비되는 우리 밀 총 6000톤은 10년 전 국내 우리 밀 총생산량과 맞먹는 규모다. 단지의 지역민 고용 효과는 약 300명 이상으로 추산된다. 지자체(구례군)도 단지 내 전(前)처리시설(APC) 건설비(약 40억원) 등을 지원하며 힘을 실었다. 오 대표는 “구례 클러스터는 사람 중심의 가치와 협동 경제의 저력을 잘 보여준 사례”라며 “오랫동안 쌓아왔던 신뢰를 기반으로 하지 않고서는 흉내조차 낼 수 없는 일”이라고 했다.

구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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