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19일(금)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도와주지는 못할망정… 발달장애인 고용정책 되레 후퇴하나

연계고용 고시 개정, 장애인 고용 감면 한도가
절반으로 줄어들어 장애인표준사업장 타격
정부는 연계고용 많으면 직접고용 줄어든다고 생각
심각한 발달장애인 고용문제 정부가 싹조차 잘라버린 꼴

지난달 말 “안녕하세요. 저는 베어베터 대표 이진희입니다”로 시작하는 이메일 한 통이 도착했다. 핵심 내용은 ▲지난달 14일 ‘연계고용’ 관련 고시가 개정돼, 기업들이 장애인고용부담금을 감면받는 한도가 전에 비해 절반으로 줄었고 ▲이로 인해 베어베터의 가격경쟁력이 없어져 기업들이 거래를 끊게 되면, 더이상 발달장애인을 채용하기 어렵다는 것이었다. 베어베터는 창업한 지 1년 반 만에 발달장애인을 70명이나 고용한 예비 사회적기업이자 장애인 표준사업장이다. 베어베터가 커진 것은 ‘연계고용’제도 덕분이다. 하지만 이제 고시 개정으로 인해 제2, 제3의 베어베터를 만들고, 발달장애인 1500명을 채용하겠다는 꿈도 이루기 힘들어졌다고 한다. 왜 이런 일이 생긴 걸까. ‘더나은미래’가 뒷이야기를 취재했다. 편집자 주


로이터 뉴시스
로이터 뉴시스

“몸이 불편한 지체장애인과 사회성이나 지적능력이 떨어지는 발달장애인 중 기업이 누구를 선택하겠어요? 정부에서는 기업의 직접고용만을 강조하지만, 현실적으로 중증장애인, 그중 발달장애인은 고용되기 어려워요. 직접고용이 되지 않는 상태에서, 민간에서 이들을 포용하기 위한 움직임을 막아서는 안 되는 것 아닌가요?”

베어베터 이진희 대표의 말이다. 베어베터는 발달장애인(지적·자폐성 장애인)을 고용해 제과나 인쇄물을 기업에 판매한다. 발달장애인은 장애인 고용의 사각지대다. 중증장애인 1명을 채용하면 2명으로 인정해주는 ‘더블카운트’제도가 있음에도, 고용 대신 벌금을 낸다. 장애인 평균 고용률은 36%, 지체장애인 고용률은 45.4%지만, 지적장애인 고용률은 14.3%다. 자폐성 장애인의 고용률은 0.6%다(2012년 보건복지부). 지적장애인이 16만7500명, 자폐성 장애인이 1만5900명이니, 15만명가량의 발달장애인이 백수인 셈이다. 이들은 고스란히 복지서비스 부담으로 남는다. 한국자폐인사랑협회 한 관계자는 “대기업 콜센터에서는 지체장애인을 더 고용하려 해도 사람이 없어 웃돈을 얹어 스카우트하기도 한다”며 “기업들 대부분이 청소나 콜센터같이 단순기술직 중심으로 지체장애인을 주로 고용해 고용할당량을 채우는 상황에서 자폐와 같은 발달장애인들은 고용되기 어렵다”고 했다.

단체복을 차려입은 베어베터 직원들이 파이팅을 외치며 환하게 웃고 있다. 베어베터의 총 직원 81명 중 70명이 발달장애인이다. /주선영 기자
단체복을 차려입은 베어베터 직원들이 파이팅을 외치며 환하게 웃고 있다. 베어베터의 총 직원 81명 중 70명이 발달장애인이다. /주선영 기자

‘어떻게 하면 더 많은 발달장애인을 위한 안정적이고 행복한 일자리를 만들 수 있을까’. 자폐아들을 둔 엄마인 이진희 대표가 베어베터를 만든 이유다. NHN 인사담당 임원직을 2010년에 그만둔 이진희 대표는 NHN 공동창업자 중 한 명인 김정호 대표와 함께 작년 5월 베어베터를 만들었다. 연 매출 20억원을 바라보고, 곧 손익분기점도 넘긴다. 직원들의 한달 월급도 105만원으로, 일반적인 장애인 일터보다 훨씬 높다. 김 대표는 서울 성수동 사업장 확보와 기계값 등 25억원을 투자했다. 발달장애인을 고용해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을까. 해답은 ‘연계고용’에 있었다.

“일반 기업에선 명함 한 통에 3500원이면 만들어요. 저희는 1만원이에요. 발달장애인이 만들다 보니 공정도 느리고 비용이 더 들죠. 그럼에도 기업이 저희랑 거래했던 건 연계고용으로 7500원 정도를 감면받게 되거든요. 저희는 그걸로 계속 장애인을 고용하고, 기업은 필요한 물품도 구매하면서 부담금도 감면받으니 서로 윈윈(win-win)이죠.”

3261억원. 지난해 기업들이 낸 장애인고용부담금 총액이다. 상시 50인 이상의 근로자를 고용하는 사업주는 직원의 2.5%를 장애인으로 고용할 의무가 있는데, 이를 지키지 않으면 부담금을 내야 한다. 삼성전자의 경우 의무고용인원(2274명) 중 1342명만을 고용해, 지난해 62억7000만원을 부담금으로 냈다. 장애인의 직접고용을 보완하기 위해 정부가 만든 게 ‘간접고용’이다. 장애인을 10명 이상 고용한 자회사(자회사형 표준사업장)를 만들거나, 장애인이 일하는 회사와 거래하면 된다(장애인표준사업장 연계고용). 장애인표준사업장과 거래하면 그만큼 장애인 고용이 창출됐다고 보는 게 ‘연계고용’의 핵심이다. 고용한 장애인 수가 많으면, 감면 정도도 커진다.

하지만 개정된 고시로 인해 연계고용으로 인한 혜택은 대폭 줄었다. 지난 10월말 베어베터는 C기업과의 명함 계약 거래가 틀어졌다. 10명을 추가로 채용하려던 베어베터의 계획도 물거품이 됐다.

“기업으로선 연계고용이 크게 달갑지만은 않아요. 장애인고용을 담당하는 인사부서와 구매부서의 이해관계가 다르거든요. 부담금 감면은 1년 후에 받고, 구매부서에서는 당장 3500원짜리 명함을 1만원에 샀으니 마이너스잖아요. 이제 부담금 감면 혜택까지 줄었으니 기업으로선 더이상 연계고용을 할 요인이 없어요. 고용 동결뿐만 아니라 이미 고용한 발달장애인들의 일자리 유지마저도 고민하게 됐어요.”

한국장애인고용공단은 왜 고시를 개정한 것일까. 이유는 “연계고용 같은 간접고용이 너무 많아지면 기업이 직접고용을 회피할 유인을 주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중증장애인 고용을 활성화하려고 도입한 연계고용이 너무 활발해질까봐 미리 막는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공기업인 한국장애인고용공단 경영실적 평가 기준이 ‘대기업에 장애인을 몇명 더 고용시켰느냐’가 주요 항목이다보니, ‘간접고용’인 연계고용에 대해 소홀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한다. 김용직 한국자폐인사랑협회 회장은 “발달장애인의 고용은 그간 국가 차원에서도 해결하지 못한 사각지대였는데 민간부문에서 이제 막 활성화되려고 하니 국가에서 그 싹을 잘라버린 것”이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몇몇 기업과 대학교에선 베어베터의 사업모델을 벤치마킹해 장애인 회사를 출범시킬 계획을 갖고 있었다고 한다.

장애인고용관련 한 전문가는 “대기업이 직접고용 대신 간접고용을 택하는 도덕적 해이가 우려된다면 연계고용 자체를 억제할 게 아니라, 현재 중증장애인을 15%만 고용해도 인증되는 표준사업장 기준을 강화하든지 중증장애인 고용인원만 연계고용의 혜택을 주는 등의 장치를 두면 된다”고 했다. 독일도 수십년 전부터 ‘중증장애인고용법’으로 중증장애인의 고용에 초점이 맞춰져 있고, 일본도 ‘신체장애인법’과 ‘정신장애인법’을 따로 제정해서 이들의 일자리를 마련하는 데 주력하는 추세다.

이진희 대표는 “진정 장애인을 위한 ‘좋은 일자리’가 어떤 것인지에 대한 생각의 전환도 필요하다”고 했다. “발달장애인 친구들이 일반 기업에 취직하면 일반인 1000명 중에 자기 혼자만 지적으로 떨어져요. 이해해주는 사람도 없고 자기랑 편안한 환경도 아닌 데다, 조금만 잘못해도 ‘천덕꾸러기’ 취급받기 십상인 거죠. 우리 회사에서는 이들이 중심이에요. 대기업에 취직해서 높은 연봉 받는 것과, 발달장애인들의 특성을 이해하고 그들이 중심이 되는 곳에서 일하는 것, 어느 것이 더 행복한 직장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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