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5일(목)

[더나은미래·굿네이버스 공동기획 | 교육으로 여는 더 나은 미래] 아프리카의 뿔, 케냐 ①

희망은 역시 학교에 있었습니다

운동장에 펜스 설치한 학교
총기사고·갱단 패싸움 줄어

거리 아이들 위한 수업은
정규 학교 입학으로 연결
책 읽기도 힘들었던 아이가
방과 후 수업으로 토론까지

여성 할례 등 性학대 문화
인형극 동아리가 개선 나서

세계 빈곤을 줄이자는 새천년개발목표(MDGs)의 8가지 목표 중 두 번째는 ‘보편적 초등교육 실현’이다. 배움은 희망의 전제 조건이기 때문이다. 한국전쟁 이후 폐허 속의 나라를 다시 일으킨 힘도 ‘빵’ 아닌 ‘책’으로부터 나왔다. 굿네이버스의 ‘희망학교지원사업’은 그런 취지에서 시작됐다. 학교 지원을 통해 사람이, 마을이, 국가가 변하는 현장을 다녀왔다. 편집자 주


로모샤 스쿨의 아동권리 인형극 동아리 ‘트리플 씨’의 멤버들이 무대 뒤에서 대기 중이다. 그들은 “멀게만 느껴졌던 아동권리를 쉽고 재밌게 이해할 수 있어 좋다”고 입을 모았다. /굿네이버스 제공
로모샤 스쿨의 아동권리 인형극 동아리 ‘트리플 씨’의 멤버들이 무대 뒤에서 대기 중이다. 그들은 “멀게만 느껴졌던 아동권리를 쉽고 재밌게 이해할 수 있어 좋다”고 입을 모았다. /굿네이버스 제공

발을 내딛자, 하얀 신발이 온통 까매졌다. 오물이 뒤섞인 진흙은 금세 운동화 바닥으로 스몄다. 두 사람이 간신히 지나갈 만한 통로. 중앙엔 거무튀튀한 도랑이 흘렀다. 양쪽 벽을 의지해, 5m가량 두 팔을 벌려 엉금엉금 기다시피 했다. “여기가 학교 복도예요.” 케냐의 쓰레기 마을 고로고초에 위치한 ‘케어 테이커스(care takers)’학교의 자블론(Zablon·33) 교장 선생님이 말했다. 벽과 지붕은 한 겹으로 된 양철판을 얼기설기 덧댄 것이 전부. 이 학교의 학생인 재닛(Janet·13)양은 “낡은 양철판 때문에 뛰어놀다 다치는 일이 많다”고 했다. 매캐한 쓰레기 냄새는 걸음마다 코끝을 자극했다. 자블론씨는 “이 지역의 사람들은 대부분 마약 판매나 성매매, 혹은 쓰레기장에서 고철 더미를 팔아 생활한다”고 말했다. 80%의 지역 주민들이 하루 1달러 미만으로 생활하며, 한 달 평균 소득은 20달러(약 2만1000원)에 불과한 곳이다.

◇새로운 교실이 가져온 변화… 쓰레기 마을에도 희망이 피었다

이곳을 떠나 10분 정도 걷자, 승용차 스무 대를 주차할 만큼 널찍한 공간이 눈에 들어왔다. 지난 8월, 굿네이버스와 SBS희망TV가 ‘희망학교’ 사업으로 개축한 글로리학교 운동장이다. 흙돌로 세운 벽과 견고한 강철 지붕으로 18개의 교실이 만들어졌고, 고등학생 교실에는 현대식 새시 창문까지 갖춰졌다. 초·중등생 500명이 채플과 영어 토론을 진행할 수 있는 강당도 만들어졌다. 조셉(Joseph·37) 글로리학교 교장은 “운동장에 펜스를 설치하면서 총기 사고, 불법 갱단과 연계된 패싸움이 줄어들었다”며 “교복과 급식 지원뿐만 아니라 부모 모임까지 진행하자 지역사회도 교육의 필요성에 공감하고 ‘학교=보호받아야 하는 곳’이라는 인식이 확산됐다”고 했다. 자밀라(Jamila·13)양은 “교실이 부족해 7·8학년이 한 공간에서 수업을 받았고, 비가 오면 양철 지붕에 떨어지는 빗소리 때문에 공부할 수 없었다”면서 “친구들이 부러워해 이번 학기에 2명이나 전학 올 정도”라고 말했다.

도심 지역은 물론, 지방에서도 학교가 변하고 있다. 수도 나이로비에서 차로 6시간 정도 달려 도착한 오겜보 마을. 주민 대부분이 옥수수 농사나, 소·양을 키우면서 자급자족하는 시골이다. 이 마을의 21개 학교 중 하나인 망고스쿨은 굿네이버스를 통해 교육 지원을 받으면서 학업 성취도가 높아졌다. 지난 학기 국가시험에서는 구차 주(州) 88개 초등학교 중 61위였지만 11월 초 평가에서 12위를 기록했다. 피터(Peter·30) 망고스쿨 교장은 “이전엔 11개 학급당 교과서가 하나씩 있었지만, 지금은 2명이 한 권의 책으로 공부한다”며 교육 기자재 지원을 주요 요인으로 꼽았다.

지역사회의 문제 해결에 관심을 갖는 학생도 생겨났다. 망고스쿨 7학년에 재학 중인 도로시(Dorothy·13)양의 꿈은 변호사다. 그녀는 “주위에 (마약이나 술에 빠져) 어려움을 당하는 아이들이 있는데 이들을 대신해 도움을 주고 싶다”고 이유를 밝혔다. 조람(Joram) 굿네이버스 케냐지부 매니저는 “교육을 통해 개인이 성장하고 이들은 자연스럽게 다른 어려운 사람을 돕게 된다”면서 “지역 개발에서 교육 사업은 핵심적인 부분”이라고 강조했다.

◇지역이 학교를 바꾸고, 교육이 지역을 바꾼다

“잠보!”(안녕하세요!)

지난 14일 오전, 마사이족이 모여 사는 메구아라 마을에 세워진 ‘대교 아이레벨스쿨’. 한 아주머니가 인사를 하고 학교 안으로 유유히 들어갔다. 메구아라 사업장 협력 매니저 스티븐(Stephen·41)씨는 “자녀가 공부하는 모습을 보러 온 학부모”라고 설명했다. 대교 아이레벨스쿨은 신축 단계에서부터 지역사회의 관심이 높았던 학교다. 메구아라 지역 주민 4명이 20만 실링(약 264만원)가량의 땅을 학교 부지로 기증했고, 대교는 2억원의 건축 자금을 지원했다. 메구아라 지역에서 생산된 벽돌(1장에 130원)을 구입했고, 지역 주민들은 마을위원회를 중심으로 10명씩 조를 짜서 돌과 흙을 나르며 1년 동안 학교 건축에 참여했다.

선생님과 아이들의 학구열은 뜨거웠다. 지난 4월, 대교의 초청으로 한국에서 일주일간 교사 연수를 받은 라엘(Rael·23)씨는 “학습 내용을 색지에 적어 교실 벽면에 붙이거나 노래에 영어 문장을 넣어 부르는 등 한국에서 보고 배운 다양한 교수법을 활용하고 있다”며 “교사당 학생 수도 92명에서 25명으로 4분의 1가량 줄면서 눈높이 교육이 가능해졌다”고 말했다. 웰던(Weldon·11)군은 “책 읽는 방법도 몰라 수업 시간이 힘들었는데 방과 후 교육을 받으면서 이젠 글쓰기는 물론 토론까지 할 수 있다”면서 “지난번 시험에는 120명 중 60등을 했는데 이번엔 45명 중에 7등을 했다”고 말했다.

◇모바일 스쿨, 아동 권리 인형극 동아리… 업그레이드 되는 교육 사업

지역 특색에 따라 교육 내용과 방법도 심화하고 있다. 매일 아침 8시, 고르고초 지역 공립학교 운동장 나무 아래에선 특별한 수업이 열린다. 길거리를 배회하는 모든 아동을 대상으로 한 수업이다. 책상은 칠판, 의자는 땅바닥이다. 박스 형태의 초록 칠판 손잡이를 잡아당기면, 2개의 칠판이 6개로 늘어난다. 학생들은 선생님과 함께 그림을 그리며 영어 단어와 국어(스와힐리어)를 익히거나, 칠판에 붙어진 다트 게임, 보드게임 등 다양한 교구들을 활용해 사칙연산을 배운다. 칠판 아래엔 바퀴가 달려있어 쉽게 이동이 가능하다. 일명 ‘모바일 스쿨’이다.

길거리에서 영어 단어를 공부하고 있는 보니페이스(Boniface·16)군을 만났다. 그는 “마약, 본드, 패싸움 등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해봤다”면서 “4개월 전에 친구 소개로 모바일 스쿨에 오면서 학업에 흥미도 찾고, 내년부터는 선생님의 권유에 따라 직업훈련학교에서 목공일을 배울 계획”이라고 말했다. 빅토르(Victor·32) 모바일 스쿨 강사는 “길거리를 방황하던 학생들이 학습에 재미를 느끼고 정규 코스를 밟는 학교로 이어주는 징검다리 역할을 하고 있다”면서 “국어, 영어, 수학뿐만 아니라 성교육, 아동 권리 등 다양한 주제로 커리큘럼을 만들어, 연령별로 3개의 그룹을 짜서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지난해에는 30명의 졸업생 중 16명 정도가 글로리학교 등 파트너십을 맺고 있는 인근 3개의 학교에 입학했다.

메구아라 지역의 로모샤 스쿨은 지난 9월, 아동 권리 인형극 동아리 ‘트리플 씨(triple C)’를 만들었다. 마사이족은 몇 해 전만 해도 여성 할례가 남아있었고, 지금도 조혼이 이뤄지는 등 어른들 사이에는 가부장적인 문화가 지배적인 편이다. 하지만 로모샤 스쿨의 아이들은 달랐다. 동아리 1차 서류 접수에만 전교생의 30%인 50명이 몰릴 정도로 학생들에게는 인기를 끌었다. 이 중 면접을 통해, 20명의 인원을 선발해 아동 권리 교육과 함께 매주 연기 연습이 진행됐다. 이들은 메구아라 지역의 5개 초등학교를 돌며 성 학대 예방 인형극을 했다.

동아리 회장인 자코(Jako·17)군은 “인형극을 준비하면서 아동의 권리에 대해 완전히 이해하게 됐다”며 “성 학대 문제처럼 앞으로도 우리 삶의 필수적인 부분에 대해 더 많이 배우고 가르치고 싶다”고 말했다. 박용원 굿네이버스 케냐 지부장은 “교육의 또 다른 말은 기회”라며 “빈곤, 건강, 가정환경 등의 이유로 미래가 불투명한 아이들에게 교육은 새로운 세계를 열어줄 수 있다”고 했다.

나이로비·메구아라

관련 기사

Copyrights ⓒ 더나은미래 & futurechosun.com

전체 댓글

제261호 2024.3.19.

저출생은 '우리 아이가 행복하지 않다'는 마지막 경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