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4일(수)

[Cover story] 산모 생존 戰場, 잠비아를 가다

양수 터져도 자전거로 이동… 세 쌍둥이 모두 잃어…
산모 10만명당 830명 사망 우리나라 59배에 달해
구급차 요청 이틀 후에 도착 이동 중 산모·아이 숨져
2009년 9월 후원 시작돼 올 3월 다섯번째 보건소 지어

지역사회에 설치되는 보건소가 산모와 아기 모두에게 희망과 웃음을 주고있다.
지역사회에 설치되는 보건소가 산모와 아기 모두에게 희망과 웃음을 주고있다.

건기의 끝자락에 다다른 잠비아에서는 조금만 걸어도 흙먼지가 날렸다. 수도 루사카(Lusaka)에서 서쪽으로 165㎞ 떨어진 뭄브와(Mumbwa) 음푸수(Mpusu) 보건소 근처에서 만난 조세핀(53)은 흙구덩이 속에 앉아 딸의 죽음에 대해 담담하게 말했다. 22세였던 그녀의 딸 루스는 세 번째 아이를 낳다 지난 7월 말라리아로 배속 태아와 함께 숨졌다.

“죽기 이틀 전에 머리가 아프다고 근처의 보건소를 갔어요. 말라리아 진단을 받고 더 큰 병원으로 가기 위해 구급차를 요청했는데 오지 않았죠.”

보건소보다 한 단계 높은 의료기관인 뭄브와 지역병원(district hospital)에는 두 대의 구급차가 있다. 하지만 조세핀이 구급차를 불렀을 때 한 대는 일 년에 한 번 있는 ‘아동보건주간’ 캠페인 때문에 수도 루사카로 차출됐고, 나머지 한 대는 의료 물품을 실어 나르느라 자리를 비웠다. 루스는 그 다음 날 구급차가 오는 도중 숨을 거뒀다. 조세핀은 “내 딸과 손녀를 앗아간 말라리아가 두렵다”며 고개를 떨어뜨렸다.

뭄브와의 또 다른 카인두(Kaindu) 보건소에서 만난 로다(50)씨는 2006년 함께 살던 조카 손녀를 잃었다. 16세의 나이로 임신해 첫 아이를 출산하는 과정에서 과다출혈로 사망했다. 직계가족이 모두 죽어 10년 넘게 친손녀처럼 길렀던 아이였다. 그녀는 “잠비아에 에이즈 환자가 많아 일반 보건소에서는 피 보관이 안 되는 걸 몰랐다”며 “더 큰 병원에 갔어야 했다”고 한숨을 쉬었다.

모성(母性) 사망률 등 산모 보건 개선 부분은 2000년 유엔에서 결의한 새천년개발목표(MDGs)의 8개 세부항목 중 진척이 가장 더딘 부분이다. 매년 53만6000명의 여성이 임신, 출산 혹은 출산 후 6주 이내에 합병증으로 사망하며 그 중 절반은 사하라 사막 이남의 아프리카에서 발생한다. 부족하고 열악한 출산시설, 전문 인력의 부족, 말라리아와 같은 질병 때문이다. 이번에 찾은 잠비아의 모성사망률은 10만명당 830명으로 우리나라의 59배에 달한다.

잠비아 뭄브와 지역의 규모는 서울의 35배에 달하지만 총 5개의 보건소와 하나의 지역병원밖에 없다. 5개의 보건소에는 출산을 위한 분만실이나 산모가 위급할 경우 수술할 수 있는 수술실이 없다. 산모들은 일반 환자가 진료받는 곳에 누워 아이를 낳는다. 그 침대마저 보건소당 하나뿐이다. 월드비전 잠비아 모자보건 담당자인 앤(50)은 “뭄브와 지역의 보건소에는 전기도 들어오지 않아 밤에 아이를 낳을 때는 촛불을 켜놓는다”며 “병동 역시 부족해 산모는 출산 후 6시간 내에 무조건 퇴원해야 한다”고 열악한 출산 시설에 대해 설명했다.

출산 관련 전문 인력이 부족한 것도 잠비아 모성사망률을 높이는 이유 중 하나다. 일반 간호사를 양성하는 2년제 간호전문대를 졸업하고 올 1월 뭄브와 룬고베(Lungobe) 보건소에 발령받은 네타(22)는 현재 산부인과와 관련된 모든 업무를 맡고 있다. “지금까지 100명도 넘는 산모의 출산을 도왔다”고 자랑스레 말하는 그녀지만 임신이나 출산과 관련된 교육을 따로 받지 않아 위험한 상황을 초래한 경우도 있었다.

1 매년 전 세계 5세 미만 영·유아 500만명이 쉽게 치료 가능한 질병으로 숨지고 있다. 2 세 쌍둥이를 잃은 므와바씨의 꿈은 딸 캐서린이 건강하게 자라는 것 뿐이다. 3 앰뷸런스만 있었다면 조세핀은 딸과 손녀를 잃지 않았을 것이다.
1 매년 전 세계 5세 미만 영·유아 500만명이 쉽게 치료 가능한 질병으로 숨지고 있다. 2 세 쌍둥이를 잃은 므와바씨의 꿈은 딸 캐서린이 건강하게 자라는 것 뿐이다. 3 앰뷸런스만 있었다면 조세핀은 딸과 손녀를 잃지 않았을 것이다.

“제가 돌보던 산모가 배가 아프다고 해서 보건소에 왔어요. 이틀 정도 지나니 괜찮다고 해서 출산을 했는데, 아이의 머리뼈가 다 부서진 상태였어요.” 아이는 결국 목숨을 잃었고 산모 역시 위독했다. 하지만 네타는 그 상황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고 말했다.

문제는 이런 열악한 의료환경이 산모뿐만 아니라 태어날 아이와 갓 태어난 영아에게도 최악의 상황을 초래한다는 것이다. 룬고베 보건소 밖 갈대밭에서 만난 캐서린(9)의 엄마 므와바(44)는 너무 멀리 있는 보건소 때문에 아이를 잃은 경우다. 그녀는 2000년에 세 쌍둥이를 임신했었다. 하지만 임신 7개월 만에 갑자기 양수가 터졌다. 남편은 돈을 벌기 위해 집을 비운 상태였다.

“보건소가 너무 멀어 걸어갈 수 없었어요. 일주일 만에 남편이 돌아와, 자전거 뒷좌석에 앉아 보건소를 갔죠. 세 쌍둥이 중 한 명은 하루 만에, 나머지 두 명도 3주 만에 숨졌습니다.”

세 쌍둥이가 죽고 난 후 태어난 캐서린은 얼마 전부터 원인을 알 수 없는 병을 앓고 있다. 한쪽 얼굴이 부어 오르고 상처에서 고름이 나와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한다. 므와바씨는 벌레가 떠다니는 회색빛 물웅덩이에서 먹을 물을 길으며 “죽은 세 쌍둥이 대신 캐서린이라도 건강하게 자랐으면 좋겠다”고 눈물을 글썽였다.

끝나지 않을 것 같던 이 악순환은, 2009년 9월 월드비전한국과 후원자들의 지원이 시작되며 해결의 실마리가 보이고 있다. 월드비전한국은 잠비아 보건당국, 지역 보건정부와 함께 뭄브와 지역 내 기존 4개의 보건소에 직원 숙소와 산모병동을 지었고, 올 3월에는 강원도의 여러 단체가 모금해 기부한 돈으로 다섯 번째 보건소인 카밀람보(Kamilambo) 보건소를 지었다.

지역 주민들 또한 이번 보건 프로젝트에 열정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잠비아 정부에서 모성사망률을 낮추기 위해 2008년 만든 ‘산모 보호를 위한 실천 모임(Safe Motherhood Action Group)’의 각 지역 자원봉사자들은 일주일에 두 번, 아침부터 저녁까지 각 가정을 돌아다니며 임신과 출산 관련 교육을 한다. 그들의 기초교육은 월드비전한국 뭄브와 사업장이 맡고 있다.

한국에서 잠비아 뭄브와까지 오는 길은 꼬박 하루가 걸렸다. 한국서 내민 도움의 손길이 이처럼 멀리 떨어진 곳에서 죽어가는 산모와 영아를 살리고 있다. 더 많은 희망의 씨앗이 아프리카 잠비아 땅에 뿌리내리길 기대해본다.

※월드비전한국을 통해 잠비아의 엄마와 갓 태어난 어린 생명을 구하실 분은 (02)2078-7000번으로 연락하면 됩니다.

☞ MDGs(새천년 개발목표·Millennium Development Goals)

2000년부터 2015년까지 빈곤을 반으로 감소시킬 것을 목표로 전 세계 189개국 정상들이 모여 UN에서 채택한 의제다. 주요 내용으로 ①절대 빈곤과 기아 퇴치 ②보편적 초등교육 달성 ③양성평등과 여성능력 고양 ④아동사망률 감소 ⑤모성보건 증진 ⑥HIV/AIDS, 말라리아 및 기타 질병퇴치 ⑦지속가능한 환경보호 ⑧개발을 위한 범지구적 파트너십 구축의 8개 목표와 그에 따른 21개 세부 목표, 60여개 실증지표로 구성되어 있다.

잠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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