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3월 30일(토)

[논문 읽어주는 김교수] 준법경영, ESG 경영의 시작

김민석 지속가능연구소장

최근 ESG(환경·사회·거버넌스)라는 용어가 중요해지면서 많은 조직이 ESG 경영을 선언하고 있다. 하지만 국제적인 ESG 공시기준 또는 평가기관이 요구하는 수준과는 달리 기업의 활동은 아직 갈 길이 멀어 보인다. 횡령을 한 당사자가 기업의 ESG 위원장을 맡거나, 한편으로는 ESG 경영을 강조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최고 경영진이 불법을 저질러 구속되는 사건이 발생하고 있다. 미국의 한 회사는 회사 자체적으로 ‘그린리스트(Greenlist)’라는 지표를 만들고 공신력 있는 환경지표인양 오인토록 한 후, ‘그린리스트 성분’ 표시를 해서 소비자로 하여금 친환경 인증을 받은 것처럼 표시위반을 하여 법원으로부터 위법 판결을 받기도 했다. 이처럼 ESG 경영이 필수가 된 상황에서 기업은 환경적으로, 사회적으로, 거버넌스 측면의 노력과 성과를 알리고 싶어하는데 이에 앞서 선행되어야 할 것이 바로 컴플라이언스, 즉 준법경영과 윤리경영이다.

지난 4월 국제 표준화기구인 ISO는 컴플라이언스 경영시스템, 즉 조직의 준법경영 여부를 확인 할 수 있는 인증기준을 제정하였다. ‘ISO 37301’로 명명된 컴플라이언스 경영시스템은 조직 내부의 효과적인 규정준수 시스템 구축 및 실현, 평가와 개선을 위한 지침을 제공한다. 이러한 컴플라이언스 경영시스템은 조직의 유형, 규모 및 성격에 관계없이 모든 유형의 조직에 적용되며 공공, 민간 또는 비영리 부문에도 적용된다.

국제 표준화기구가 준법경영 인증제도를 만든 이유는 무엇일까? 준법경영에 대한 요구는 사실 국제 표준화기구에서 오래 전부터 강조하고 있던 사항이다. 2010년에 제정된 ‘ISO 26000’은 국제 표준화기구에서 만든 사회적 책임과 관련한 가이드라인으로 각 조직이 자율적으로 지킬 수 있도록 지침서 역할을 하고 있다. ISO 26000은 각 조직이 우리 사회의 지속가능발전에 기여하도록 돕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데, 특히 ‘법 준수가 조직의 근본의무이고 사회적 책임의 핵심 요소’임을 강조하고 있다. 즉 기업이 사회적 책임을 다하기 위해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이 준법경영임을 밝히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ESG 경영과 준법경영, 윤리경영은 어떤 관련이 있을까? 빅토리아 비즈니스 스쿨의 아노나 암스트롱(Anona Armstrong)과 펜실베이니아 대학 로스쿨의 엘리자베스 폴먼(Elizabeth Pollman)은 ESG와 윤리경영, 준법경영에 대한 연구를 하고 다음과 같은 시사점을 언급했다.

먼저 아노나 암스트롱은 그의 연구에서 ESG 문제와 관련된 윤리적 의사 결정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이론과 모델, 관행을 연구했는데, 기업의 리더가 갖고 있는 경제적 목표와 비재무적 목표 사이의 갈등을 해결하려면 ‘경영진의 윤리적인 판단’이 필요함을 주장했다. 연구자는 ‘공리주의’와 칸트의 ‘정언명령’, ‘이해관계자 이론’과 같은 윤리기준을 언급하며 현대 사회에서 기업이 생존하기 위해서는 경영진의 윤리적 의사결정이 비즈니스 전략의 필수 요소가 되어야 함을 언급했다.

엘리자베스 폴먼은 CSR(기업의 사회적 책임), ESG와 컴플라이언스와의 관계를 연구했다. 이 연구에서는 CSR과 ESG가 법을 준수하는 것과 함께 기업이 제정하는 행동강령 등과 같은 법 이상의 것을 추구해야 하고, 무엇보다 말뿐만 아니라 법과 기업이 정한 규정을 ‘준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폴먼은 CSR,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대해 법적인 책임과 더불어 시장이 요구하는 책임과 같은 법 이상의 책임을 져야 한다고 정의하고, ESG 또한 기본적으로 법적인 요구사항을 준수하고 기업이 가진 운영상의 위험과 전략적인 위험까지도 포함하여 관리해야 한다고 하였다. 기업의 책임경영은 ‘자율규제’와 ‘메타규제’로 구분할 수 있는데, 자율규제는 기업 내부의 자발적인 거버넌스 하에서 추진하는 것을 뜻하고, 메타규제는 외부의 요구나 압력으로 진행되는 것을 뜻한다.

폴먼은 자율규제와 메타규제 모두 정부 규제를 보완하며 최근 몇 년 동안 증가하고 있고 외부의 공개 및 표준화 개선에 대한 요구가 점점 더 활발해지고 있다고 하였다. 특히 기업이 갖고 있는 행동강령은, 거창하게 ESG를 선언하지 않더라도 이미 사회에 대한 기업 윤리를 포함하고 있으며 기업이 인권, 노동 및 환경과 같은 다양한 주요 문제에 대해 자발적으로 채택하는 규범과 표준으로 의미가 있지만, 실제로는 기업이 이러한 행동강령을 준수하지 않고 문제를 개선하지 않는 비효율적인 ‘윈도우 드레싱(겉치레, 워싱)’이라는 비판을 하고 있다.

우리 기업을 되돌아 보자. 기업으로서 마땅히 지켜야 하는 법이 있고, 대부분의 기업은 자체적으로 약속한 인권경영, 윤리경영, 환경경영, 상생경영과 같은 행동강령을 갖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행동강령은 지금 어디에 있는가? 책꽂이와 홈페이지 어딘가에 있겠지만 일년에 단 한 번도 꺼내보지 않고, 심지어 어떤 내용이 담겨 있는지 조차도 모르는 임직원이 대다수일지도 모르겠다. 사회적 책임을 다하고 ESG 경영을 하고자 한다면, 가장 먼저 ‘준수’와 ‘약속의 이행’에 대해 생각해야 한다. 첫 단추를 잘 끼워야 한다는 속담이 있다. 마지막에 모든 단추를 풀지 않으려면 윤리경영, 준법경영이라는 첫 단추부터 제대로 끼워야 한다.  

ISO 37301 표준을 개발한 ISO 기술위원회 의장인 하워드 쇼(Howard Shaw)는 “조직은 신뢰할 수 있는 회사와 협력하기를 원하고, 신뢰는 올바른 일을 하는 회사문화를 기반으로 하며, 이것의 중심에는 좋은 리더십과 최고 경영진으로부터 시작되는 명확한 가치가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윤리경영과 준법경영이 벌금을 회피하는 수단이 아니라 최고 경영진을 필두로 모두가 지켜야 하는 거버넌스 원칙임을 기억할 필요가 있겠다.

김민석 지속가능연구소장

▶오늘의 논문
-Anona Armstrong (2020), “Ethics and ESG”,  Australasian Accounting, Business and Finance Journal, 14(3), 2020, 6-17.
-Elizabeth Pollman (2019), “Corporate Social Responsibility, ESG, and Compliance”, Los Angeles Legal Studies Research Paper No. 201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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