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18일(목)

[Cover Story] 비영리단체와 연예인 홍보대사의 세계

한 번의 홍보 대신, 진심을 나누고 싶습니다
단체 이미지와 직결되는 연예인 홍보대사 섭외 전 연령층이 좋아하고 안티팬 없는 인사 1순위
최소 1~2년 준비 후 위촉 모델료 한 푼도 안 받고 봉사활동·기부 나서는…
섭외가 까다로운 만큼 홍보대사 특성 맞춰 관리 신뢰 유지하는 전략 중요

지난해 공공기관 41곳이 연예인 홍보대사에게 모델료와 거마비(車馬費) 등의 명목으로 4년간 60억원을 지출한 것으로 드러나 논란이 일었다. 반면 ‘공익을 위해 봉사한다’는 홍보대사의 역할을 몸소 실천하는 연예인도 많다. 바로 비영리단체에서 활동하는 홍보대사·친선대사들이다. 이들은 화보 촬영 및 광고 모델료를 일절 받지 않고 오히려 해당 단체의 봉사활동과 기부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조선일보 더나은미래는 비영리단체 15곳의 실무자를 만나, 연예인 홍보대사와 단체 간의 파트너십 노하우를 들어봤다.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한국해비타트 홍보대사 배우 이서진, 월드비전 홍보대사 배우 정애리, 기아대책 홍보대사 배우 김정화, BBB코리아 홍보대사 전 야구선수 박찬호, 메이크어위시재단 홍보대사 축구선수 구자철, 굿네이버스 홍보대사 배우 김현주, 사회복지공 동모금회 홍보대사 배우 채시라,글로벌호프 홍보대사 가수 티파니(그룹 소녀시대 멤버).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한국해비타트 홍보대사 배우 이서진, 월드비전 홍보대사 배우 정애리, 기아대책 홍보대사 배우 김정화, BBB코리아 홍보대사 전 야구선수 박찬호, 메이크어위시재단 홍보대사 축구선수 구자철, 굿네이버스 홍보대사 배우 김현주, 사회복지공 동모금회 홍보대사 배우 채시라,글로벌호프 홍보대사 가수 티파니(그룹 소녀시대 멤버).

◇아이돌? 중견 배우?… 고르기도, 섭외하기도 어렵다

“어떤 유명인을 섭외하느냐에 따라 단체에 약이 될 수도 있고, 독이 될 수도 있습니다. 비영리단체의 이미지는 모금과 직결되기 때문입니다. 당장의 홍보를 위해 유명 연예인을 섭외하기보다는, 오랫동안 지켜본 뒤 신뢰할 수 있는 파트너를 섭외하고 있습니다.”

황유미 초록우산 어린이재단(이하 어린이재단) 나눔사업본부 팀장의 말이다. 그는 “신중을 기해 섭외한 만큼, 파트너십도 오래간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어린이재단에는 35년간 홍보대사로 활동한 배우 최불암씨를 비롯, 고두심씨(26년 차)와 이홍렬(25년 차)씨도 20년 넘게 홍보대사를 지속하고 있다.

각 단체는 홍보대사로 선정하고픈 연예인 후보군을 정한 뒤,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한다. S단체 실무자는 “평소 친하게 지내는 방송국 PD, 소속사 관계자 등을 통해 ‘나눔에 관심이 있는지’ ‘홍보대사로서는 부적절한 이슈는 없는지’ 등을 상세하게 묻는다”면서 “실제로 섭외 직전에 ‘곧 사건이 터질 테니 뒤로 미루라’는 조언이 들어맞은 적이 꽤 많다”고 귀띔했다. 이 때문에 비영리단체 실무자들은 “안티 팬이 없고, 전 연령층이 좋아하는 유명인이 섭외 1순위”라고 입을 모았다.

섭외는 더 어렵다. 대부분 소속사에 전화를 걸어 매니저 전화를 묻고, 메일을 보내고, 트위터나 페이스북에 메시지를 남기는 등 그야말로 ‘맨땅에 헤딩’이다. 단체에 기부금을 전달한 연예인을 설득하거나, 기존의 홍보대사를 통해 소개받는 경우도 있다. 대한적십자사는 2010년 기관에 기부금을 전달한 신현준씨를 2년 뒤 홍보대사로 위촉했다. 기부한 이후로도 좋은 행사가 있을 때마다 신현준씨를 초청해 인연을 쌓은 덕분이었다. 사회복지공동모금회도 광고료를 기부하기 위해 기관을 방문한 김성주·김민국 부자에게 자연스레 홍보대사를 요청했다. 홍영표 메이크어위시재단 간사는 “홍보대사 위촉식 때도 해당 연예인을 만나는 게 소원이었던 아동들을 초대하는 등 ‘깜짝 이벤트’를 기획한다”면서 “연예인들이 ‘이 단체에 내가 꼭 필요한 사람’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는 접점을 계속 마련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난치병 환아의 소원을 이뤄주는 메이크어위시재단에는 배우 김태희, 이민정, 전혜빈, 축구선수 구자철 등 유명인들이 홍보대사로 활동하고 있다. 유니세프는 기존 홍보대사를 통해 나눔에 뜻을 가진 연예인을 소개받는다. 배우 김혜수씨는 안성기씨의 소개로, 원빈·이보영씨는 디자이너 고(故) 앙드레 김을 통해 홍보대사로 위촉했다. 정성을 담은 손 편지가 마음을 움직이는 경우도 있다. 아름다운가게 실무자는 A4 용지 두 장 가득 홍보대사 선임을 요청하는 손 편지를 쓴 뒤, 직접 이금희 아나운서를 찾아갔다. 다음 날 흔쾌히 수락을 얻어냈다.

◇비용 대신 진정성으로… 셀레브리티(유명인) 관리 나선 단체들

비영리단체는 후원자의 기부금을 도움이 필요한 곳에 전달하는 중간 기관이다. 후원자의 모금액 관리 및 지출에 신중해질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비영리단체들은 연예인 홍보대사에게 보수나 별도 활동비를 지급하지 못하고 있다. 배우 최수종, 하희라, 박하선, 소이현, 가수 더 원 등이 홍보대사로 활동 중인 하트하트재단의 손은경 과장은 “위촉할 때부터 비영리단체의 특성을 말씀드리고, 나눔활동에 대한 의미를 공감해주실 것을 요청한다”면서 “최수종 씨와 하희라 씨의 경우, 나레이션에 참여해 받으시는 출연료까지 재단에 기부하실 정도”라고 설명했다.

사회복지공동모금회 홍보대사인 가수 현영씨와 현숙씨는 비용을 일절 받지 않고 기관 홍보 영상을 촬영한 뒤 1억원을 기부해 ‘아너소사이어티(1억원 이상 고액 기부자 클럽)’ 회원이 된 바 있다. 반면 터무니없는 모델료나 거마비를 요구하면서, 홍보대사 기부를 ‘밀고 당기기’ 하는 연예인도 있다고 한다. B단체 실무자는 “첫 만남부터 ‘영상이 한 번 나갈 때마다 얼마를 달라’ ‘홍보대사 활동을 하면 기사가 몇 건 보도될 수 있느냐’고 묻는 연예인은 즉시 섭외를 중단한다”면서 “단체의 상황과 비전에 진심으로 공감하지 못하면, 홍보대사 역할을 제대로 해내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홍보대사 전담 인력을 두고,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하는 곳도 있다. 월드비전은 미디어기업팀 내에 ‘셀레브리티(Celebrity)’ 전담 인력을 2명 배치했다. 우선 후원자 데이터베이스(이하 DB)를 분석했다. 추가로 발견한 연예인 후원자 100여명에게는 담당자 명함과 편지를 담은 우편물을 일일이 배송하는 등 본격적인 파트너십 관리에 나섰다. 이들은 매일 오전 1시간 동안 해당 연예인의 스케줄과 관련 이슈를 체크하고, 안부 문자를 남긴다. 홍보대사의 매니저 생일과 경조사까지 챙긴다. 아프리카 등 저개발국 봉사 일정이 잡히면, 홍보대사의 식성·건강 상태까지 고려해 준비한다. 김 과장은 “김효진 홍보대사님은 채식을 하기 때문에, 소고기 고추장 대신 기본 고추장을 준비한다”면서 “시사회나 행사에 초대받으면 아무리 멀고 비가 와도 꼭 참석해 감사 인사를 전한다”고 말했다. 정현주 사회복지공동모금회 홍보팀 대리는 홍보대사가 참여한 행사나 봉사활동이 끝나면, 이들의 모습을 따로 담은 영상과 사진을 앨범으로 만들어 직접 전달하고 있다. 정 대리는 “프로그램을 제안할 때도 가급적 직접 만나 설명하고, 메일 대신 카카오톡에 자료 사진을 확대해 첨부한다”면서 “대다수 매니저가 운전하느라 노트북이나 휴대전화로 문서를 확인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장기간 파트너십 유지하는 ‘윈윈(win-win)’ 전략 필요해

비영리단체 15곳 모두, 홍보대사 위촉 전까지 최소 1~2년 정도 준비 기간을 두고 있었다. 굿네이버스는 아동 나눔 교육, 아프리카 봉사활동 등 다양한 프로그램에 연예인이 참여할 수 있도록 문을 열어둔다. 최근 홍보대사로 위촉된 배우 고수와 고아라도 아프리카 봉사를 먼저 다녀왔다. 현장에서 단체의 비전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할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 홍보대사 활동 기간은 평균 2~3년. 기간 만료 후 양쪽이 별다른 거절 의사를 밝히지 않으면, 자동으로 갱신되는 구조다. 단체 이미지를 훼손할 만한 불미스러운 일이 일어나지 않는 한, 파트너십은 10년 이상 유지된다. 월드비전은 위촉식 때 한번 맺은 홍보대사와는 ‘평생 파트너십’이란 사실을 공지한다고 한다. 홍보대사를 섭외하기까지 단체들이 신중해질 수밖에 없는 이유다. 어린이재단과 유니세프는 새로운 홍보대사를 위촉하기 전에 기존의 홍보대사들에게 동의를 구하고 있다.

섭외 후에는 각 홍보대사의 니즈(needs·필요)를 파악한 맞춤형 서비스가 필요하다. 기아대책은 홍보대사의 관심사에 맞춰 프로젝트 대상과 성격을 조율한다. 지역개발과 아동에 관심이 많은 이지성 작가에게는 마을 100곳에 학교를 짓는 프로젝트 기획과 홍보를 지원하고 있다. 물·위생에 관심이 많은 배우 조민기는 말라리아와 수자원 홍보대사로 위촉했다. 기본적인 에티켓을 지키는 것도 중요하다. 신예은 해비타트 홍보팀 과장은 “해외 일정이 많은 홍보대사님도 많기 때문에, 해외 봉사일 경우 최소 6개월 전, 국내 행사는 3달 전까진 스케줄 협조를 요청하는 것이 예의”라면서 “단체 내 홍보대사들의 활동이 중복되지 않도록 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말했다. 홍영표 메이크어위시재단 간사는 “약속한 행사 시간을 상당히 초과하거나, 원치 않는 보도는 삼가야 한다”고 조언했다. 한편 월드비전은 지난달부터 홍보대사들만 모이는 네트워킹 자리를 마련했다. 선후배 간 ‘멘토-멘티’ 관계를 맺도록 해, 단체 내에서 서로 정보를 공유하고 친분을 쌓을 수 있도록 배려했다.
☞설문에 참여한 비영리단체 15곳=굿네이버스, 글로벌호프, 기아대책, 대한적십자사, 메이크어위시재단, BBB코리아, 사회복지공동모금회, 아름다운가게, 아름다운재단, 초록우산 어린이재단, 월드비전, 유니세프한국위원회, 하트하트재단, 한국해비타트, 한마음한몸운동본부.

특별취재팀=정유진·김경하·문상호·주선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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