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3월 29일(금)

[박란희의 작은 이야기] ‘왜’라는 질문이 필요한 이유

‘죽음의 수용소에서’라는 책은 참 오래도록 가슴에 남은 책입니다. 2차대전 당시 강제수용소에 갇힌 정신과 의사 빅터 프랭클 박사의 자전적 이야기입니다. 수면 부족, 배고픔, 구타, 언제 끌려갈지 모르는 극한적 공포 속에서 사람들은 무엇을 붙잡고 살아갈까요. 빅터 프랭클 박사는 “강제수용소에서도 남을 위해 희생한 사람들이 있었는데, 그들의 시련과 죽음을 통해 ‘주어진 환경에서 자신의 태도를 결정할 수 있는 자유, 마지막 남은 내면의 자유만큼은 결코 빼앗을 수 없다’는 걸 깨달았다”고 고백합니다. 그는 니체가 한 말을 인용합니다. “왜 살아야 하는지 아는 사람은 그 어떤 상황도 견딜 수 있다.”

‘왜’라는 질문이 많은 사회는 건강한 사회입니다. 나는 왜 살아야 하고, 기업은 왜 존재해야 하고, 국가는 왜 존재해야 하는지 묻고 또 묻고 물어야 합니다. 이 질문을 열어놓지 않고, ‘무엇을’ ‘어떻게’에만 집중하면 개인도, 기업도, 국가도 방향을 잃은 채 질주하게 됩니다.

‘더나은미래’와 한국기업공헌평가원이 지난해에 이어 올해 기업의 국가·사회공헌도를 분석한 이유는 바로 ‘왜’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서입니다. ‘월가를 점령하라(Occupy Wall street)’ 시위에서 보듯, 양극화와 소득 불평등 구조는 전 세계적으로 시장과 기업의 존재 의미를 부정하는 목소리까지 터져 나오게 합니다. 우리나라에서도 경제 민주화 관련 입법, 공정위·검찰·국세청 조사까지 이어지면서 ‘기업이 마치 준범죄집단 같다’는 기업인들의 자괴 섞인 목소리도 나옵니다. 기업은 왜 존재할까요. 고(故) 이병철 삼성 창업주, 고(故) 정주영 현대 창업주가 처음 기업을 세운 취지는 바로 ‘사업보국(事業報國)’이었습니다.

‘데이터를 통해 기업이 국가와 사회에 얼마나 공헌하는지 말해보자’는 취지로, 우리는 매출액과 수출액, 법인세, 총급여, 일자리, 연구개발, 설비투자, 기부금 등을 살펴봤습니다. 1964년 사상 최초로 우리나라 전체의 수출액이 1억달러를 달성한 지 50년 만에, 지난해 삼성전자 한 곳이 1000억달러 수출을 이뤘습니다. 30대 산업에서 100억원의 매출이 늘 때마다 5.3명의 일자리를 만들어냈고, 1억원 매출이 늘 때마다 309만원의 급여가 늘었습니다(2008~2012년). 20대 기업이 8조6000억원대의 법인세를 냈는데, 이는 증권거래소·코스닥 등록기업 전체 법인세 중 54.7%를 차지했습니다. 대기업의 국가·사회공헌이 엄청나다는 걸 숫자가 말해줬습니다.

하지만 아쉬움도 있었습니다. 상위 20대 기업과 나머지 기업 간 격차가 너무 컸습니다. 맏형만 잘 나가고, 막내는 어려움을 겪는 집안 같았습니다. 정책 담당자들은 지금부터라도 30년 후 제2의 삼성, 제2의 현대차를 만들기 위한 경제정책의 틀을 짜야 할 것 같습니다. 더나은미래와 한국기업공헌평가원 또한 중견기업, 중소기업의 국가·사회공헌을 제대로 평가하는 작업을 할 계획입니다. 또 대기업에는 대기업에 걸맞은 국가·사회공헌이 뭘지, 국민이 대기업에 원하는 국가·사회공헌이 뭔지를 파악해 이를 분석·평가작업에 반영하도록 할 계획입니다. 투명성, 여성 및 장애인 고용, 하도급 업체 간접 고용 등도 그 항목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런 과정이 지속적으로 이뤄진다면, 국민과 국가가 기업을 고마워하고 또 기업인을 존경하는 풍토가 만들어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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