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0일(토)

[코이카 민관협력사업] ② 정부·기업·NGO 모이니… 가나 청년 취업문 ‘활짝’

코이카 민관협력사업, 아프리카 현장을 가다 ②

중고차 수입 늘어나고 정비 수요 높아졌지만 정규 정비 교육은 없어
현대차·코이카 협력해 청소년 위해 기술고 설립, 차량 기술·설계 등 가르쳐
정부·NGO 도움으로 기업의 시행착오 극복
취업 고려한 CSR 전략에 인지도 저절로 높아져

가나의 수도 아크라에서 북쪽으로 65㎞ 떨어진 코포리두아로 가는 길. 도로 양쪽에 빽빽하게 들어선 자동차 정비소들이 눈에 들어왔다. 정비소는 후드(본네트)를 열고 수리를 기다리는 차량으로 북적거렸다. “흔한 광경입니다. 가나에는 워낙 고장 나는 차량이 많거든요.” 국제 개발 협력 NGO인 ‘플랜인터내셔널’의 가나지역 프로젝트 매니저인 조셉 애피아씨가 설명했다.

가나 코포리두아에 설립된‘드림센터’학생들이 자동차 엔진 교육을 받는 중 포즈를 취했다.
가나 코포리두아에 설립된‘드림센터’학생들이 자동차 엔진 교육을 받는 중 포즈를 취했다.

2000년대 초반 가나의 중고차 수입이 급격히 늘어났다. 매년 중고차 7만대가 들어오면서 정비 수요가 높아졌고, 지역마다 5000개 이상의 정비소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그러나 정비소가 늘어날수록 교통사고가 증가하는 기이한 현상이 계속됐다. 조셉 매니저는 “가나에는 차량 정비 기술을 배울 수 있는 학교나 기관을 찾기 어렵고, 기술교육학교 등록금도 일반 학교의 2~3배 이상 높다”며 “결국 어깨너머로 배운 지식으로 정비를 하다 보니 차량에 문제가 생기고 사고가 난다”고 설명했다. 현재 정비소의 70~80%가 불법으로 운영되고 있다고 한다. 그나마 이조차도 배울 수 없는 청소년들은 도로에서 과자와 음료를 파는 등 하루 벌어 하루 사는 생활을 한다.

◇기업 역량 살린 CSR로 가나의 사각지대를 메우다

2003년부터 가나에 대리점 두 곳을 설립해 차량 판매와 정비 서비스를 진행해온 현대차는 2011년부터 본격적으로 글로벌 CSR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한국국제협력단(이하 코이카)과 국제 개발 협력 NGO 플랜코리아와 함께 프로젝트 기획 및 진행에 들어갔다. 현대차가 5억5000만원, 코이카가 5억5000만원을 지원해 2012년 1월 코포리두아에 3층 규모의 기술교육 고등학교 ‘드림센터’를 설립했다. 가나의 청소년들에게 공업 기술 교육이 가장 시급하다는 판단에서였다.

지난 7일 방문한 ‘드림센터’에서는 실습수업이 한창이었다. 자동차 엔진, 핸들, 고철 체인 등 장비들이 놓인 나무 탁자 주변에 학생 20여명이 둥그렇게 모여 있었다. “자동차 엔진은 우리 몸의 심장과 같습니다. 연결 부품을 잘못 만지면 차량 작동에 금방 이상이 생깁니다.” 교사 리처드(40)씨가 엔진 장비에 연결된 나사들을 가리키며 설명했다. 엔진 교육이 끝나자 학생들은 드림센터 1층에 마련된 차량 시범 센터로 이동했다. 300평 남짓한 공간에 싼타페, 아반떼 등 현대차 3대와 타이어 수리 장비들이 놓여 있었다.

“이론 수업이 대부분인 다른 기술고등학교와 달리 직접 차량 정비를 할 수 있는 실습 교육이 많아서 좋습니다.” 싼타페 후드(본네트)를 열고 엔진 상태를 점검하던 브라운(24)씨가 활짝 웃었다. 가정 형편 때문에 고등학교에 진학하지 못한 채 6년 동안 일용 노동직을 전전하던 그였다. 브라운씨는 “드림센터는 학비가 일반 학교 등록금(600세디·약 40만원)의 10분의 1 정도라서 나처럼 가난한 학생들도 공부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지난해 8월 드림센터에 입학한 학생은 총 80명. 가난 때문에 교육받지 못한 청소년 중에서 차량 정비 등 공업 기술자를 꿈꾸는 이들을 선발했다. 전문 교사 10명이 차량 기술, 공학 기술, 설계, 통합 과학, 고급 수학, 영어 등을 가르친다. 1학기 성적 우등생인 아이다(여·20)씨는 “드림센터는 가나 전 지역 통틀어 여학생들에게 100% 장학금을 주는 유일한 학교”라면서 “드림센터에서 공부하면 다른 기술고등학교보다 자격증 2개를 더 딸 수 있다”며 엄지손가락을 치켜들었다.

◇정부, 기업, 비영리단체 ‘협력’으로 시행착오 극복

‘드림센터’학생이 현대자동차가 지원한 시범 차량 후드(보닛)를 열고 교육받은 내용을 실습하는 모습.
‘드림센터’학생이 현대자동차가 지원한 시범 차량 후드(보닛)를 열고 교육받은 내용을 실습하는 모습.

사실 현대차의 아프리카 중점 협력국은 나이지리아, 에티오피아, 콩고, 르완다 등 총 8곳으로 이중 현대차가 가장 많이 팔리는 곳은 나이지리아다. 하지만 현대차는 글로벌 CSR 추진 국가로 가나를 선택했다. 현대차의 기술과 노하우를 가장 필요로 하는 곳이 바로 ‘가나’라는 판단에서였다. 신재민 현대차 사회문화팀 과장은 “가나에는 현대차 법인이 없고 차량 구매와 서비스를 대행하는 대리점만 있는 상황이라 가나의 경제 상황이나 정부 정책 등을 파악하는 데 어려움이 많았다”고 털어놓았다.

일단 통관 절차부터 문제였다. 가나의 수입 관세가 높아서 현대차 시범 차량과 장비 부품을 들여오는 비용으로만 사업비의 10%가 사용될 상황이었다. 가나 현지 건설업체는 공사 완공 날짜를 9번이나 늦췄다. 지난해 폭우 때문에 드림센터 건물 지붕과 창문이 무너져내렸을 때도 수리를 요청했지만 현지 업체는 “입학식을 연기하라”며 요지부동이었다. 가나에서는 건설업체가 계약금 외의 추가 비용을 요구하며 의도적으로 훼방을 놓는 경우가 많다. 신 과장은 “현지 정부 관계자들과 네트워크를 가진 코이카와 플랜코리아의 협력 덕분에 학생들이 제날짜에 입학할 수 있게 됐다”고 했다.

플랜코리아는 가나 재정경제부에 연락해 거의 무관세 수준으로 차량과 장비를 들여올 수 있도록 했고, 학교 부지도 무상으로 제공받았다. 조광걸 코이카 가나사무소장은 가나 교육부 장관을 직접 찾아가 도움을 구했다. 조 소장은 “교육부 장관이 정해진 날짜에 완공될 수 있도록 업체와의 소통을 도왔고 향후 지속적으로 드림센터 사업을 돕겠다고 약속했다”고 말했다.

◇현장의 니즈 반영한 CSR로 기업 인지도 올려

“CSR 활동을 시작한 이후 가나에선 현대차를 모르는 주민이 없을 정도로 인지도가 올라갔습니다. 2008년 현대차 판매량이 5위였는데 현재 도요타에 이어 두 번째로 인기가 높습니다. 가나 정부 관계자들이 드림센터에 관심을 갖고 행사 때마다 참석하면서 신문·방송·라디오에 현대차 CSR 활동이 지속적으로 보도됐기 때문입니다.”

락슨 존슨 현대차 가나 대리점 총괄 디렉터가 CSR 성과를 설명했다. “단순히 기술 교육뿐만 아니라 청소년들의 취업 문제까지 고려한 세밀한 CSR 전략이 주민의 마음을 열었다”는 비결도 덧붙였다. 실제로 드림센터를 졸업한 학생들은 대학 진학 및 취업이 유리할 것으로 전망된다. 가나의 산업자원부가 청소년 기술 교육을 위해 설립한 ‘그라티스재단(Gratis Foundation)’이 공업 기술 분야 상위권 대학인 ‘케이폴리(K-POLY)’를 연계해 입학 전형에서 가산점을 받을 수 있도록 했기 때문이다. 현대차도 드림센터 우수 학생 10명 이상을 가나 대리점 정비센터에 취업시킬 계획이다. 이는 그라티스재단, 플랜코리아, 현대차, 코이카 등 관계자들로 구성된 학교운영위원회가 지속적으로 학생들 교육 및 취업 문제를 논의한 결과다. 이삭 아모아시 가나 국가정보국 사무관도 “드림센터를 통해 현대차는 물론 한국인에 대한 긍정적인 인식이 가나에 확산되고 있다”고 말했다.

아크라·코포리두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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