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6일(금)

“乙도 아닌 丙 신세… 사회공헌 액수 늘어도 근무 여건 더 나빠져”

민간 사회복지사들의 고백

사업계획, 質보다 量 우선
하던 대로 해야 승인받아
1000원짜리 사업 하려면
5000원 드는 증빙 요구

“사회복지 대변할 모금회
오히려 기업 편에 서 있어”
사회복지사들 한목소리
“완벽한 배분 하려다 보니
평가 까다롭고 문서 많아”
공동모금회 측도 고민

“모금회 사업을 위한 사회복지사를 1년 계약직으로 채용해야 한다. 모금회 사업 평가가 1년 단위로 진행되고 이 결과를 기반으로 사업의 연속성이 결정되기 때문이다. 행정 절차도 아주 복잡하다. 만약 1000원짜리 사업비를 받는다면 비용이 5000원 드는 증빙서류를 요구한다. 사업을 진행하기 위해 지침을 따르는 게 아니라, 지침을 위해 엄청난 일이 계속 생긴다. 모금회 사업은 단기 계약직 사회복지사를 양산하고 있다.”(A 복지법인 사회복지사 K씨)

“애초에 평가 결과가 명확한 사업 제안서를 내야 한다. ‘몇 명에게 장학금을 지급했다’ ‘몇 아이가 외국을 탐방하고 왔다’ 등 수치로 보여줄 수 있는 프로그램을 할 수밖에 없다. 질보다 양이다. 아이들의 실질적 변화를 기대하며 교육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싶어도, 1년 내 어떻게 성과를 보여줄 수 있을지 고민하다 포기한다.”(H 복지단체 사회복지사 J씨)

◇민간 사회복지 전달 체계 ‘빨간불’

복지 예산 103조원, 대기업 사회공헌 비용 지출액 3조1241억원, 사회복지공동모금회의 모금액 4000억원. ‘복지 때문에 나라 결딴난다’며 복지 포퓰리즘까지 대두하는 시대에, 아이러니하게도 올 초부터 벌써 사회복지 전담 공무원 4명이 자살했다. 그나마 공무원(1만335명)은 안정적 신분과 급여를 보장받지만, 복지시설·비영리단체 등에서 일하는 6만여 민간 사회복지사 처지는 더 열악하다. 민간 사회복지사들은 ‘더나은미래’ 심층 인터뷰에서 “지금과 같은 복지 사업 하도급-재하도급 구조에서 민간 사회복지사들은 ‘을’도 아닌 ‘병’ 신세”라고 말했다. 기업 사회공헌 액수와 공동모금회 모금액이 늘어날수록, 이런 불편한 진실도 점점 더 커지고 있다는 것이다.

사회복지사들은 “공동모금회 사업 수행 시 인건비에 대한 일정한 가이드라인이 없다는 것이 문제”라며 입을 모았다. 사회복지사 J씨는 “업무가 증가해 인건비 책정 비율을 1%라도 높이려고 하면 모금회 관계자가 오히려 정색한다”며 “사회복지 단체를 대변해주는 단체가 기업 편에 서 있는 것”이라고 했다. 복지 단체끼리 모금회 사업을 따기 위해 인건비 깎기 경쟁을 하는 웃지 못할 광경이 벌어지기도 한다.

삼성 500억원, 현대차 200억원 등 지난해에도 대기업들은 어김없이 공동모금회에 성금을 기탁했다. 이 중 50%는 기업이 특정 대상과 분야에 지원하기를 희망하면 거기에 쓸 수 있는 지정 기탁 사업이다. 2011년 지정 기탁 사업 규모는 전체 모금액 3193억7900만원 중 절반가량인 1484억7500만원이다. 한 사회복지사는 “사실 사회공헌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것은 상당 부분 인건비가 많음에도, 기업은 몇 억원짜리 프로그램을 수행하기 위한 인력 지원을 1명밖에 안 하는 등 인건비 이해도가 매우 낮다”며 “모금회는 일반인과 기업을 설득해 ‘질 좋은 사업을 위해 전문 인력을 써야 한다’고 설득하기는커녕 150만원 이하 인건비 제공을 당연하게 생각해 비정규직을 양산하고 있다”고 말했다.

◇수혜자 고려하지 않는 평가 체계

“현장에서 사업을 진행하다 보면 예기치 않은 일들이 벌어진다. 이미 기업 및 NGO의 지원이 지역아동센터에 몰려있어 보육원 아이들에게 더 도움이 필요함을 알게 됐다. 모금회에 문의하니 ‘승인된 프로포절을 기준으로 수행하시는 것이 평가에 좋을 것’이라는 답변을 받았다. 평가를 받는 ‘을’의 입장에서 ‘갑’의 말을 무시하기는 어렵다. 모금회의 이상적 평가 기준은 승인된 기존 프로포절 내용과 100% 일치하는 것이다.”(아동 관련 시설에 근무하는 사회복지사 P씨)

사회복지사 C씨는 “모금회 사업 대상자의 1순위는 기초수급자 가정인데 요즘엔 이들을 위한 지원 사업이 전방위적으로 많은 편”이라며 “엄마, 아빠가 이혼하면서 아이를 방치해 실질적 도움이 필요한 상황이지만 사업 대상자로는 추천하기 어렵다”고 했다. 기초수급자·차상위계층 아이들처럼 어려운 상황을 증빙할 수 있는 객관적인 자료가 없어 지원 대상 순위에서 자연스레 밀리기 때문이다.

사회복지공동모금회는 이에 대해 “국민의 성금과 기업의 모금액으로 배분하는 역할을 하기에 과정에서 완벽성을 기하다 보니 평가 절차가 까다롭고 문서 작업이 많은 것은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이어 “지정 기탁 사업은 기업에서 특별한 목적성을 가지고 진행하는 사업이라 수혜자에 대한 관심도가 높아 사회복지사들 인건비 등에 대한 배려가 다소 밀려난 것”이라며 “올해 초부터 사회복지공무원들이 자살하는 사건이 일어나면서 내부적으로도 개선 방안에 대한 고민을 하고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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