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0일(토)

[코이카 민관협력사업] ① 기업들, 사회공헌 나섰더니… 사업 고민은 물론 지역사회 문제까지 해결

코이카 민관협력사업, 인도네시아 현장을 가다 ① 인도네시아 

미상_사진_민관협력사업_직업훈련_2013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주변에서는 중소기업이 살아남기가 참 어렵습니다. 이곳은 최저임금이 월 210만 루피아(한화 약 23만원) 정도인데, 중부 스마랑(Sema rang) 지역은 100만 루피아(한화 약 11만원) 정도거든요. 원래는 자카르타 인근 대도시인 이곳 보고르시에도 봉제기업이 많이 들어와 있었는데, 요즘엔 야반도주하는 사업가들이 상당수입니다. 저희는 이런 어려움을 사회공헌을 통해서 극복하고 있습니다.”

PT삼익인도네시아 권희정 사장의 말이다. 지난 1992년, 삼익악기는 자카르타 근교 보고르시에 12만8000여평 부지를 인도네시아 정부로부터 빌려 생산공장 및 목재건조시설을 만들었다. 삼익악기의 인도네시아 법인인 PT삼익인도네시아를 설립하고, 현재 3000여명에 달하는 현지 근로자를 채용하고 있다. 한국인 직원은 15명 정도다. 기타 전 제품과, 피아노 90%를 PT삼익인도네시아에서 생산하고 있다.

인도네시아에 진출한 지 20년이 접어들면서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에 대한 고민도 더 깊어졌다. 삼익악기는 3년 전부터 한국국제협력단(KOICA·이하 코이카), 국제개발협력 NGO인 코피온(COPION)과 함께 PT삼익직업훈련학교를 설립해 운영하고 있다. 이 학교는 보고르시의 취약계층 청소년에 대한 직업훈련을 한다. 이를 통해 삼익악기는 기술 인력을 안정적으로 확보하고, 더불어 평균 취업률이 20%대인 보고르시 청년들은 일자리를 얻을 수 있게 됐다.

사업 첫해에는 삼익악기가 2억원, 코이카가 2억원을 지원해 교실 4개와 교무실, 기숙사 등 시설을 준공하고 교직원 채용 등 인프라를 구축했다. PT삼익인도네시아 권희정 사장은 “중소기업이 독자적으로 CSR을 하려 하다 보면, 인지도 면에서 어려움을 겪는다”며 “코이카와 함께 사업을 진행하니 지역정부 및 주민들에게 신뢰를 받을 수 있는 장점이 있다”고 말했다.

◇CSR로 기업 고민과 지역 문제까지 해결

지난 1일, 노동절(May Day)에 자카르타 중심에서는 대규모 노조시위가 벌어졌다. 8만명의 노동자와 2만5000여명의 경찰이 모였다. 자카르타에서 보고르시까지 1시간이면 도착할 거리가 2시간 30분이나 걸렸다. 박미 코이카 인도네시아 부소장은 “인도네시아는 노동법 등 법체계가 엄격한 편이라, 노동자의 목소리가 높고 시위가 잦다”고 했다.

보고르시에 위치한 PT삼익인도네시아 공장에서 차로 5분 정도 이동하자 아이보리색 벽으로 말끔하게 단장된 PT삼익직업훈련학교가 눈에 들어왔다. 걸어서 20여분 거리다. “솔~솔~”. 한 교실에서는 피아노를 조율하는 소리가, 옆 교실에는 “드르륵~” 봉제기계 돌아가는 소리가 났다. 각 반에서는 20명 내외의 학생이 선생님과 함께 실습수업이 한창이었다.

PT삼익직업훈련학교에서는 피아노 조율, 목공예, 제빵, 봉제반의 수업이 진행되고 있다.
PT삼익직업훈련학교에서는 피아노 조율, 목공예, 제빵, 봉제반의 수업이 진행되고 있다.

피아노 조율, 목공예반 학생은 실습을 거친 후 졸업만 하면 PT삼익인도네시아에서 바로 취업이 가능하다. 코피온의 박예슬 간사는 “삼익과 취업이 연계되는 피아노 조율, 목공예반 외에도 제빵, 봉제반을 운영하고 있고 4개월의 이론과정과 2개월의 실습과정을 밟는다”고 설명했다. 1기 졸업생인 45명은 100% 취업에 성공한 상황. 2기 졸업생 63명의 90%인 57명도 PT삼익인도네시아를 비롯해 PT.SPM 등 봉제회사에 취직했다. 목공예반 2기 졸업생인 히라리우스(25· 남)씨는 6개월간의 교육과정 중 PT삼익인도네시아에서 3개월의 실습을 하면서 정식직원으로 채용됐다. 지난달엔 실력을 인정받아 생산관리 매니저직으로 승진까지 했다. 히라리우스씨는 “돈을 벌어서 중단했던 학업을 다시 이어가고 싶다”고 말했다.

지난해 PT삼익인도네시아 공장에서도 노사분규가 일어났다. 공장가동의 어려움을 겪고 있을 때, PT삼익직업훈련학교에서 피아노 조율과 목공예에 숙련된 학생들을 채용하기도 했다. PT삼익인도네시아와 PT삼익직업훈련학교에 대한 지역주민들의 인식도 좋은 편이다. 학교에서 만난 7명의 지역주민은 “취업까지 연계되니 젊은이들이 학구열이 높아져서 좋다”고 입을 모았다. 우카(45·여)씨는 “학교가 생기고 사람들이 붐비니 마을의 활기가 생겼다”며 “주부를 위한 교육 프로그램은 없느냐”며 웃었다.

◇지역주민의 니즈를 반영한 CSR로 사업 기회도 넓어져

“보통 마을에 발전소를 지을 때면, 100 % 민원이 있어요. 소음도 많고, 도로 이용에 문제도 생기기 때문이지요. 그런데 저희가 인도네시아에 초등학교도 지어줬고, 수자력 발전소도 만들어준다고 하니 태도가 달라지더군요. 소득만 창출해가는 것이 아니라 지역사회 발전을 위해 기여하겠다는 것을 알면 달라져요. 인도네시아 바이어를 만날 때도 기업의 CSR 활동을 소개하면 호의적인 반응을 보이고 결과도 좋습니다.”

한국중부발전의 인도네시아 현지법인 코미포(KOMIPO) 나중근 토건팀장이 느끼는 CSR의 효과다. 지난 2011년, 한국중부발전은 코이카와 국제구호단체 NGO인 플랜코리아와 함께 PPP사업에 참여하면서 인도네시아에서 CSR을 시작했다. 첫 프로젝트는 인도네시아 그로보간 지역 초등학교 건축을 통한 교육환경 개선사업이다. 

① 지난달 30일, 그로보간 지역 툼 펭 초등학교 도서관에서 만난 5명 아이들. ② 깨끗하게 개선된 툼펭초등학교 교실 모습.
① 지난달 30일, 그로보간 지역 툼 펭 초등학교 도서관에서 만난 5명 아이들. ② 깨끗하게 개선된 툼펭초등학교 교실 모습.

지난달 30일, 중부자바 스마랑에서 50㎞ 떨어진 산골마을인 그로보간(Grobogan) 지역 내 툼펭 초등학교를 찾았다. 차 한 대가 겨우 지나갈 수 있는 산길이 3시간 내내 이어졌다. 3m가 넘는 바나나 나무가 우거진 숲을 헤치며 도착한 툼펭 초등학교는 중학교 입학시험을 치르는 국가고시 기간이라 조용했다. 중형차 20대 정도는 거뜬하게 주차가 가능할 것 같은 운동장을 지났다. 교실로 들어가는 길에 올록볼록하게 튀어나온 검정 점자블록이 눈에 띄었다. 마르코(50·남) 교장 선생님이 “시각장애아동을 위해 배려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로보간 지역의 초등학교는 840개. 현재 그중 80%가 훼손되어 있다. 1970년대에 초등학교를 만들었는데, 지형이 계속 갈라져 무너진 곳도 많다. 중부자바 교육국 부서장인 밤방(50·남)씨는 “이번 프로젝트를 진행했던 툼펭 지역은 교육국에서도 접근하기 힘든 산골”이라며 “건축자재를 사서 옮기는 것에도 자원이 많이 들어가 엄두를 못 내던 상황이었다”고 설명했다.

코미포와 코이카가 건축 자금을 지원하는 대신, 인도네시아 정부에서는 학교 용도로 쓰일 공사 부지를 제공했다. 이전에는 학교가 사유지에 위치해 있어, 언제 쫓겨날지도 모르는 상황이었다. 초반부터 마을주민의 참여를 유도, 전체 건축 공정의 20%가량을 마을주민이 참여했다. 지역 일자리 창출을 위해서다. 학교 내 도서실을 만들고 학생대표들이 직접 서점에 나가 책장을 채울 책들을 골랐다. 아흐맛(10·툼펭초5·남)군도 인물 위인전을 골랐다. 이어 “운동장에서 자주 놀 수 있고,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깨끗해졌다”며 “다른 동네 친구가 우리 학교를 보고 ‘오~훌륭해’라고 말했다”고 덧붙였다.

산골 오지마을에 한국 기업과 한국 정부가 관심을 가진 결과, 인도네시아의 중앙정부에서도 새로운 움직임이 생겼다. 밤방씨가 반가운 소식을 전했다. “올해 중앙정부에서 초등학교 개보수 사업으로 약 60만불의 예산을 지원하기로 했습니다. 외국 기업과 외국 정부에서도 관심을 가지는데, 우리가 가만히 있어서야 되겠는가 이런 의미에서요.” 한국발 CSR이 인도네시아에서 변화를 일으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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