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3월 28일(목)

[Cover story] 빈곤퇴치 戰場 방글라데시를 가다

공부는 사치… 가난 탈출의 기회조차 없다
하루 15시간 쓰레기 주우면 간신히 하루 세끼 밥값 벌어
병원비가 두달치 생활비… 열병 걸려도 병원 근처도 못가

지난 18일, 방글라데시 수도 다카의 뒷골목에서 만난 아이 라존(10)은 자기 몸집만한 쓰레기 자루를 메고 있었다. 시장과 주택가 사이에 놓인 쓰레기장은 40도에 가까운 방글라데시의 날씨와 맞물려 숨쉬기 어려울 정도의 악취를 뿜어냈다. 아침 6시부터 라존은 썩어가는 음식과 폐기물 사이에서 종이와 플라스틱을 찾아내고 있었다. 집에 돌아가는 시간은 밤 9시 반. 해가 지고 도시에 어둠이 몰려와 더 이상 물체를 구별할 수 없을 때까지 이곳을 헤맨다. 이날 모은 종이와 플라스틱, 다 쓴 형광등 6개로 라존은 고물상에서 50타카(850원)를 받았다. 라존은 “오늘처럼 형광등을 주운 날은 정말 운이 좋은 날”이라며 “세끼 밥값을 벌었다”고 웃었다. 시장의 소음과 경적 소리 속에서 라존은 매일의 삶을 굶주림과 노동 속에서 보내고 있었다.

콜포나(10)는 모자를 만드는 공장에 다닌다. 다카에서 380㎞ 떨어진 묵타가차(muktagacha)에 살던 콜포나의 가족은 인력거 운전사였던 아버지가 병으로 일할 수 없게 되자, 어린 여자아이들을 고용하는 공장을 찾아 고향을 떠났다. 아침부터 쪼그리고 앉아 재봉질을 해서 받는 돈은 한달에 3000타카(5만1000원). 얼마 전까지 평균 1800타카(3만원)였던 공장 임금은 최근 노동자들의 시위로 2배 정도 올랐다. 가장 역할을 하는 콜포나는 “집에 도움이 돼서 참 다행”이라고 했다. 어둡고 낡은 공장에서 천을 염색하며 피부염으로 고생하는 콜포나는 파업을 얘기하며 벌써 어른이 됐다.

셴팔라 거리의 쓰레기장에서 재활용품을 주워 파는 라존(10) /박정현 nemojh@ctkorea.net
셴팔라 거리의 쓰레기장에서 재활용품을 주워 파는 라존(10) /박정현 nemojh@ctkorea.net

방글라데시의 5~14세 아동 노동 비율은 13%로 아시아에서 캄보디아, 네팔, 베트남에 이어 네 번째로 높다. 국제 어린이 양육기구인 컴패션 방글라데시 홍보팀 밀카(35)는 “통계에 잡히지 않는 수치까지 감안하면 훨씬 많은 아이들이 학교 대신 일터에서 하루를 보낸다”고 말했다. 국제노동기구(ILO)가 금지하고 있는 14세 미만 노동이, 아시아 곳곳에서 자행되고 있는 셈이다.

공장에서 옷을 만들고, 쓰레기 더미를 뒤지고, 인력거를 끄는 아이들에게 학교는 꿈같은 일이다. 방글라데시 국민의 일인당 소득은 520달러(61만5000원). 우리나라 국민 일인당 소득의 40분의 1이 채 되지 않는다. 방글라데시 전체 인구 1억 5000만명 중 7500만명 이상이 하루 1달러 미만의 돈으로 살고 있다. 일하지 않으면 굶어야 하는 라존과 콜포나의 부모에게 아이들을 공부시키는 것은 ‘사치’다. 방글라데시 아이들이 초등학교를 마치는 비율은 65%로 아프리카를 포함한 전 세계 평균(74%)을 밑돈다.

아이들이 사는 곳은 다카 도심의 슬럼가다. 다카 인구의 35%가 이곳에 산다. 보통 30가구 정도가 수돗가 하나와 5~6개의 재래식 화장실을 공유하며 공동체를 형성한다. 우기가 되면 화장실이 넘치고 벌레가 들끓는다. 12살 루미는 장티푸스에 두 번이나 걸렸다. 며칠 동안 40도가 넘는 고열과 설사에 시달리던 루미는 컴패션의 도움으로 간신히 목숨을 건졌다. 병원비로 가족의 두 달 생활비만큼이 들어갔다. 방글라데시에서 유행하는 영양실조, 장티푸스, B형 간염, 열병과 같은 질병들은 영양과 환경상태만 좋다면 걸리지 않을 질병들이거나 예방 가능한 질병들이다. 8살 샤힌도 열병을 앓고 있지만 샤힌의 엄마는 “돈이 들까 봐 아예 병원 근처에도 못 가보고 있다”고 울먹였다.

다카의 슬럼가에 사는 어린이들 /컴패션 제공
다카의 슬럼가에 사는 어린이들 /컴패션 제공
강 위에 지어진 슬럼가. 강 건너편에 갓 지어진 아파트 가 보인다. /컴패션 제공
강 위에 지어진 슬럼가. 강 건너편에 갓 지어진 아파트 가 보인다. /컴패션 제공

슬럼가 바로 건너편에는 지은 지 얼마 안 된 아파트가 서 있다. 강 하나를 사이에 두고 삶은 그렇게 나뉜다. 슬럼가에 있는 2~4평 남짓의 슬레이트 흙집에서 하루 벌어 하루 사는 아이들은 가난을 탈출할 기회조차 잃는다. 카잘 셍굽타(46) 방글라데시 컴패션 대표는 “방글라데시 6만8000개 마을 중 1만8000개 마을에는 학교가 없다”며 “지금 방글라데시에는 물고기를 주는 것보다 물고기 잡는 법을 알려주는 ‘교육’을 통해 가난에서 탈출하도록 돕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갈 길은 멀고 할 일은 많다. 현재 방글라데시에서 컴패션의 후원을 받는 어린이들은 1만7500명 정도에 불과하며 그 중 한국인에게 후원을 받는 어린이들은 3000명 정도이다. 후원자가 있는 어린이들과 그렇지 않은 어린이들의 표정은 확연히 차이가 났다. 컴패션의 후원을 받는 샤하다트(11)는 군인이 되고 싶어했다. 나라와 국민을 위해 봉사하고 싶기 때문이란다. 샤하다트는 “가장 존경하는 사람이 엄마”라며 “나중에 자라면 남의 집 가정부로 일하는 어머니가 좋은 집에서 편하게 쉬도록 해주고 싶다”고 말했다. 컴패션의 후원을 받지 않는 샤롤(8)의 엄마는 아이들이 커서 무엇이 됐으면 좋겠냐는 질문에 “앞으로도 아이들의 삶이 나아질 것 같지 않다”라고 체념한 듯 말했다. 영양실조를 앓고 있는 샤롤은 학교에 갈 계획이 없다. 샤롤처럼 절대 빈곤 때문에 학교를 포기하는 전 세계 아이들의 숫자는 무려 3억2500만명에 이른다. 우리나라 전체 인구의 6배가 넘는 숫자다.

당장 끼니를 굶더라도 웃으며 손님을 대접하는 것이 전통이라는 방글라데시 사람들. 어쩌면 방글라데시의 행복지수가 높은 것은, 절대빈곤의 상황을 버텨내기 위해 체득할 수밖에 없었던 낙관주의 때문이 아닐까. 우리의 관심과 움직임으로 방글라데시인들의 낙관이 현실이 되기를 바라본다.

※컴패션(http://www.compassion.or.kr)을 통해 방글라데시의 아이들을 도울 분들은 (02)3668-3400으로 연락하면 됩니다.

다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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