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3월 29일(금)

공모전 상금 쫓는 청년 사회적기업가들… 이대로 괜찮은가

‘부익부 빈익빈’ 사회적기업들
청년 사회적기업가 위한 기업·정부 공모전 늘자
2~4회 중복 선정 사례 ‘겹치기 수상’ 논란 일어
왜 공모전인가 – 지원만으론 자립 힘들어 중간 육성기관들도 지원 위해 ‘성과’ 추구
성공적 자립 방법은 – 컨설팅·정책자금 등 성장 배경 구축하고
공모전 성격 명확하게 사회적기업 스스로도 네트워크 강화 고민해야

지난 6일, 서울 을지로에 위치한 SK-T타워에서 ‘제7회 세상 사회적기업 콘테스트’ 결선이 열렸다. SK행복나눔재단이 역량 있는 사회적기업 발굴을 위해 마련한 자리다. 결선에 진출한 기업 명단에는 낯익은 이름이 많았다. 이미 타 기업(효성)에서 지원받고 있는 기업(동물행동심리연구소 폴랑폴랑)과 얼마 전 서울시가 발표한 ‘혁신형 사회적기업’에 선정된 기업(오가니제이션요리, 트리플래닛) 등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직원 50명이 30억원의 매출을 올리는 강연전문 사회적기업(마이크임팩트)이나 아시아 최초로 소셜벤처세계대회에서 수상했던 기업(트리플래닛)도 있었다.
최종심사 결과, 오가니제이션요리는 2등을 차지해 2000만원의 상금을, 트리플래닛과 마이크임팩트는 3등을 수상해 1000만원의 지원금을 받았다. 김형수 트리플래닛 대표는 “연예인 숲을 만드는 프로젝트와 페이스북 게임 등 신사업 분야를 평가받기 위해 공모전에 참가했다”며 “상금은 기부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공모전’, 재논의 필요한 시기 왔다

소셜벤처나 청년 사회적기업가를 위한 기업과 정부·지자체의 공모전이 늘어나면서, ‘겹치기 수상’에 대한 지적이 생겨나고 있다. 최근 3년간 기업 및 지자체가 진행한 주요 공모전 수상 현황을 보면 ‘베네핏'(4회), ‘삼분의이'(4회), ‘오가니제이션요리'(3회), ‘모두'(3회), ‘트리플래닛'(2회) 등으로, 2~4회씩 중복 수상한 사례가 많다.

현재 청년 사회적기업가를 대상으로 한 공모전은 SK(세상콘테스트·적정기술 사회적기업 페스티벌), 효성(효성챌린저), 현대차(H-온드림 오디션), 대우증권(청년 사회적기업가 Jump Up 프로젝트), 한국전력(행복충전 사회적기업 지원사업), 아산나눔재단(아산프론티어) 등이 대표적이다. 문제는 단계와 대상이 겹친다는 점이다. 초기에는 좋은 아이디어를 발굴하는 방향에, 최근에는 어느 정도 성장한 사회적기업을 지원하는 방향에 방점이 찍히다 보니 지원의 ‘빈익빈 부익부’가 생겨날 수밖에 없다. 공모전 심사에 참여했던 한 중견 사회적기업가는 “심사를 하다 보면 매년 다른 주제로 경연대회에 나오는 친구들이 가끔 눈에 띄더라”며 “공모전을 스펙 쌓기로 생각하는 팀들도 있는 것 같다”고 했다.

김진환 성북문화재단 팀장은 “공모전 참가가 잦다는 이유로 사회적기업을 비판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면서 “하지만 발표 능력이 좋은 팀이 계속 자금을 따낸다거나, 청년들이 이벤트성 자금에 습관적으로 기대는 것에 대해서는 되짚어 볼 시기가 됐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이미 한국사회적기업진흥원이나 공모전 심사위원들 사이에서도 그런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고 덧붙였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고용노동부의 ‘청년 등 사회적기업가 육성사업’의 경우, 올해(2기)부터 개인정보 동의서를 받아 다른 사업의 지원 여부를 확인하는 과정을 거쳤다”면서 “이는 참가자의 도덕적 해이 문제가 불거졌다는 방증인 셈”이라고 했다.

◇기존 지원만으로는 어려워, 추가 지원책에 몰리는 청년들

대기업 주관 공모전에 참가했던 한 청년 사회적기업가는 “사업계획서와 프레젠테이션 발표 준비를 하는 게 생각보다 많은 에너지가 소모돼, 소수 인원으로 움직이는 회사에선 공모전 준비에 전적으로 매달려야 한다”며 “심사를 준비하면서 다른 업무를 보는 것이 쉽지 않았다”고 했다. 잦은 공모전 참가가 독(毒)이 될 수 있는 이유다. 그럼에도, 공모전은 유혹적이다. 대부분의 사회적기업이 기존 지원만으로는 자립이 힘들기 때문이다.

현재 국내 청년들이 사회적 경제에 진출하는 가장 대표적인 관문은 고용노동부가 진행하는 ‘청년 등 사회적기업가 육성사업’이다. 예비창업팀이 제출한 사업계획서를 바탕으로 자금(3000만원 이하), 공간, 컨설팅, 네트워크 연계 등을 1년간 지원한다. 2011년부터 시작된 1·2기 사업을 통해 600여개가 넘는 팀이 배출됐다. 이인경 한국사회적기업중앙협의회 사무국장은 “청년들에게 창업 과정은 사실상 직업훈련과 다르지 않다”며 “정부에서는 1년간의 지원과 훈련으로 스티브 잡스를 만들 수 있다고 기대하지만, 여러 실험을 거치며 성장하는 청년들에게는 무리가 따르는 일”이라고 말한다.

고용부 청년 창업팀 1기로 선정됐던 소셜펀딩 전문 사회적기업 오마이컴퍼니의 성진경(40) 대표는 “우리 사업은 사회적 금융을 구축하는 것으로, 시간이 오래 걸리는 일”이라며 “1년 동안 자리 잡기가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고 말한다. 오마이컴퍼니는 올해 현대차 H-온드림 오디션과 서울시 혁신형 사회적기업 선정을 통해 지원을 이어가고 있다.

중견 사회적기업가인 ㈜페어트레이드코리아의 이미영 대표는 “3000만원은 초기에 창업할 수 있는 시드머니(seedmoney) 수준이고, 청년들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비즈니스가 지속 가능할 수 있는 생태계인데 아직 그런 환경이 조성돼 있지 않다”며 “외국처럼 활발한 사회투자펀드도 없고, 사업의 아이디어를 길게 보고 투자해주는 곳이 없다 보니 창업지원금을 받고 난 후 돌파가 잘 안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창업 부추기는 정부·중간기관의 성급함 버려야

정부 및 기업의 육성책이 성급하게 창업을 유도하는 쪽으로 맞춰지는 것도 문제다. ‘청년 등 사회적기업가 육성사업’은 기본적으로 일자리 창출사업이다. 예산 투입에 대한 성과가 일자리 개수로 매겨질 수밖에 없다. 사회적기업가의 취업 분야가 마땅치 않은 만큼, 창업한 기업 수만이 성과의 ‘바로미터’다. 이미영 대표는 “10개 기업이 창업하면 한 개 성공하기도 어려운 시장 현실에서 신규 창업 중심의 지원만 있는 것이 문제”라고 했다.

함께일하는재단, 씨즈, 세스넷, 사회연대은행 등 청년 사회적기업가를 인큐베이팅하는 중간육성기관도 ‘성과’ 부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육성기관의 한 관계자는 “창업팀을 장기적으로 보고 키우고 싶은 마음이 있어도, 자금을 받았기 때문에 적정한 성과를 내야 할 필요가 있다”면서 “많은 위탁기관의 멘토들이 그런 갈등을 겪고 있을 것”이라고 했다. 실제로 ‘청년 등 사회적기업 육성사업’을 통해 창업하는 팀은 통상 4~5월에 준비를 시작, 연내에 법인 등록까지 마치는 경우가 많다. 이듬해 예비 사회적기업 신청을 해야 인큐베이팅 지원이 끝나도 후속지원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법인으로 등록되는 순간, 법인세 등 추가로 부담해야 할 부분도 많아진다.

미상_그래픽_사회적기업_수상공모전_2012◇단순 공모전보단 단계별 맞춤지원 필요

전문가들은 비슷비슷한 종합선물세트식의 공모전 형태보다 맞춤형 단계별 지원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공모전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전문적인 컨설팅과 함께 투자·정책자금 등 종합적인 지원 생태계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A사의 공모전이 인큐베이팅 단계(매출 2억원 정도)의 기업을 대상으로 한다면, B사는 자립기(2억~10억), C사는 성장기(10억 이상)를 지원하는 등 공모전 성격을 명확히 구분해야 중복 지원을 피할 수 있다.

청년들에게는 당장 눈앞에 보이는 이득보다 지속 가능한 모델 구축을 위한 끈기와 고민이 필요하다는 충고가 많다. ‘지원’으로 이어진 자립은 반드시 한계상황에 부딪히기 때문이다. 노숙자들의 자립을 위한 잡지를 판매하는 사회적기업 ‘빅이슈’ 진무두 사무국장은 “우리 잡지는 월 2만부를 판매하고 어떤 잡지와 겨뤄도 손색없을 만한 독특한 잡지인데, 일반기업에 광고를 달라고 찾아가면 사회적기업이기 때문에 후원받으러 온 것으로만 생각한다”며 “사회적기업을 사업 파트너가 아니라 후원의 대상으로 바라보는 현상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함께일하는재단 박상철 팀장은 “정부주도적인 측면과 안팎의 지원책들이 즐비해도, 결국 사회적기업의 가장 커다란 주축은 기업 자신”이라며 “스스로 그 일을 헤쳐나갈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성찰이 있어야한다”고 했다. 청년 사회적기업가 혼자서 문제를 해결하기보다는 적극적으로 네트워크를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았다. 이미영 대표는 “최근 청년들은 다소 고립돼 보이는 면이 있는데, 지역사회의 인적자원이나 협동조합, 마을기업, 선배 사회적기업가 등과 어떻게 연계할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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