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4일(수)

[키워드 브리핑] 공공후견 제도

[키워드 브리핑] 공공후견 제도

발달장애인 보호 제도…시행 7년째, 여전히 걸음마 단계

“하나둘 떠나고 이제 9명 남았습니다. 모두 연고가 없는 중증 발달장애인이죠. 3월 말 시설을 폐쇄하면 다른 곳으로 옮겨가야 하는데, 앞으로 이분들이 일상적인 금융 업무나 교육·복지 서비스를 누리려면 공공후견인이 필요합니다.”

나호열 대구발달장애인지원센터장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이달 말 문 닫는 장애인 거주 시설 대구 시민마을에는 탈(脫)시설을 앞둔 발달장애인 9명이 있다. 이들 주변에도 복지시설 종사자와 지자체 사회복지사들이 있지만, 법적 책임을 질 수 있는 보호자는 없다.

나 센터장은 “의사결정 능력이 부족한 사람들이 사회생활을 하려면 법적인 책임을 질 수 있는 대리인이 반드시 필요하다”면서 “설령 가족이 있더라도 대부분 ‘내가 죽고 나면 어떡하나’ 하는 고민을 안고 있는데, 이를 덜어주기 위해서라도 공공후견 제도는 확산해야 한다”고 말했다.

후견 제도는 발달장애, 치매 환자 등 의사결정 능력 장애인을 보호하는 대표적인 법률복지제도다. 피후견인의 의사와 상관없이 당사자로부터 의사 권한을 빼앗는 기존 금치산·한정치산 제도를 대체하기 위해 지난 2013년 7월 도입했다. 후견인 선임을 통해 판단 능력이 충분치 않은 성인이 사회에 적응할 수 있도록 보호받을 수 있게 된다. 후견인으로는 친족이나 제3자인 법무사, 변호사 등이 선임될 수 있다. 제3자 후견인에게는 월 15만원가량의 활동비가 지급되는데 지급 여력이 없는 사람들에게 국가의 비용으로 후견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바로 ‘공공후견 제도’다.

후견인의 역할은 크게 신상보호와 재산관리로 나뉜다. 후견인은 피후견인의 의사를 존중해 의료, 재활, 교육, 주거 확보 등의 사항에 대해 관리한다. 또 누군가 피후견인의 재산을 가로채지 못하도록 관리하고 올바른 곳에 쓰일 수 있도록 돕는다.

청구 대상은 치매 노인, 발달·정신장애인 등이다. 국내에 후견 청구가 가능한 인구는 약 100만명으로 추산된다. 후견 신청은 본인이 직접 하거나 배우자, 4촌 이내 혈족, 검사, 지방자치단체장 등이 할 수 있다. 청구인이 가정법원에 후견인 심판 청구서를 제출하면, 법원이 후견인을 선임하고, 후견 감독인이 사후 감독하는 구조다.

우리나라에서 공공후견 제도가 시행된 지 7년이 됐지만, 여전히 걸음마 단계다. 대법원 사법연감에 따르면 2013년 시행 이후 5년간 법원에서 개시한 후견 사건은 1만1010건에 그치고 있다. 전체 대상자의 1%에 불과한 수준이다. 우리나라와 인구가 비슷한 영국(약 6600만명)은 같은 기간 총 27만4793건의 법정 후견이 개시됐고, 가까운 일본은 2017년 기준 누적 21만290건에 이른다.

공익사단법인 온율의 배광열 변호사는 “공공후견 제도는 발달장애인 보호를 위해 출발했지만, 치매 인구 증가와 고령화 속도를 감안했을 때 저소득 독거노인에게 반드시 필요하다”며 “공공후견이 활성화되면 의사결정 능력이 부족한 성인들이 존엄성을 유지하며 살아가는 사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문일요 더나은미래 기자 ilyo@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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