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3월 29일(금)

[UNGC 글로벌 인권경영 트렌드-上] 인권경영은 선택 아닌 필수

[유엔글로벌콤팩트(UNGC) 한국협회 칼럼] 글로벌 인권경영 트렌드 <上>

최근 국내 기업에서 가장 화제가 되는 이슈는 무엇일까요? 바로 ‘인권경영’입니다. 문재인 정부는 기업의 사회적 가치 창출, 사회적 책임 강화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대기업집단 소속 송익법인 운영실태 조사 분석 결과를 발표하며 공정거래법 기업집단법제 개편 권고안을 공개했고, 국민연금은 스튜어드십 코드를 도입하기도 했죠. 더욱이 지난해 12월부터 ‘공공기관 경영 평가’에도 인권경영 점수를 포함하면서 인권경영은 이제 선택이 아닌 필수조건이 됐습니다.

유엔글로벌콤팩트(UNGC) 한국협회는 지난해 11월에 개최된 제7회 ‘유엔 기업과 인권 연례포럼(UN Forum on Business and Human Rights)’에서 논의된 다양한 글로벌 기업의 인권경영 사례와 정책들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상편에서는 인권경영의 개념과 국내·외 인권경영 트렌드를 설명하고, 하편에서는 글로벌 기업들의 인권경영 사례에 대해 다룰 예정입니다. <편집자 주>

애플은 한때 위탁생산업체인 중국 폭스콘 공장 노동자들의 잇달은 자살 사건으로 노동인권실태에 대한 거센 비판을 받았죠. 이에 애플은 지난 2008년부터 ‘협력업체 행동 수칙’을 만들었습니다. 자원 조달에서부터 제품 제조, 판매처에 이르기까지 전체 공급망에 하청계약에 따른 강제노동을 금지하는 조항을 협력업체에도 적용한 것이죠. 애플의 인권·협력업체 책임자는 “내부조사를 통해 청소 노동자들이 가장 위험하고 취약한 노동환경에 노출돼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면서 “이후 전 세계 애플 점포에 대해 현장실사를 진행하고, 하청계약을 없애기 위한 노력을 하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애플은 부득이하게 하청계약이 필요한 경우, 본사가 실시하는 엄격한 하청계약 공급망 검증과 승인과정을 거치도록 한다고 해요. 애플의 사례는 기업의 인권침해에 대한 구제책 마련에서 나아가 공급업체, 하청업체에 대한 인권 관리체계 구축을 통해 인권침해를 예방에도 나서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인도의 아이폰 생산 협력업체. ⓒapple

◇인권경영에 주목하는 글로벌 기업들

인권경영이란 무엇일까요? 노동자의 인권을 보호하면서 경영하는 것? 노동자 뿐 아니라 시민들의 인권까지도 보장해야 하는 것? 그 의미가 참 모호하고 넓지요. 이해를 돕기 위해 인권 보장을 위해 국가가 할 일부터 정리해보겠습니다. 정부와 의회는 기업이 인권을 존중하도록 법과 제도를 구축해야 하고요. 사법부에서는 사법적·비사법적 인권문제에 대한 구제 수단을 마련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인권 보장을 위해 어떤 일을 할 수 있을까요? 인권경영이란 ‘국가의 보호 의무와 기업의 존중 책임, 국가와 기업의 구제에 대한 접근을 효과적으로 이행하는 경영’을 의미합니다. 한 마디로 기업은 경영과정에 참여하거나 경영으로 인해 영향을 미치는 모든 이들의 인권을 존중하고 책임져야 한다는 겁니다.

코카콜라, 유니레버, 애플, 마이크로소프트. 우리가 이름만 대면 알 수 있는 글로벌 기업들은 이미 수년 전부터 인권경영을 위한 체계적인 전략을 만들어왔습니다. 미국, 영국 등 선진국에서는 기업이 자발적으로 인권경영을 이행하도록 단순히 맡겨두는 것이 아니라 국가도 이를 보호하고 구제하도록 책임을 부여하는 등 다양한 논의와 노력이 곳곳에서 이어지고 있고요. 이들 나라에서는 인권경영은 모든 기업이 경영하는 과정에서 사람을 중시하고 인권친화적인 기업활동을 해야 한다는 인식이 사회 전반에 퍼져 있다고 해요.

글로벌 기업들은 왜 인권경영에 열중하고 있을까요? 사실 인권경영 문제는 1970년대 초부터 논의돼 왔습니다. 1976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서 다국적기업 가이드라인을 제정한 것이 시초인데요. 이후 1977년 국제노동기구(ILO)와 ILO 가입 정부, 기업이 사회정책 원칙에 관한 3자선언을 발표했어요. 그리고 2005년 유엔은 존 러기(John Ruggie) 하버드대 교수를 기업과 인권 특별대표로 임명하면서 6년간의 광범위한 연구·협의를 진행했죠. 그 결과 지난 2011년 유엔인권이사회(UNHRC)는 유엔 기업과 인권 이행원칙(UN Guiding Principles on Business and Human Rights, UNGPs)을 만장일치로 채택했지요. 뒤이어 OECD 다국적기업 가이드라인이 개정됐고, 이행원칙의 주요 일부 내용은 다국적기업 가이드라인에 통합되기도 했습니다. 특히 유엔 기업과 인권 이행원칙은 인권경영의 표준화된 국제규범으로 ▲국가의 보호 의무 ▲기업의 존중 책임 ▲구제에 대한 접근이라는 3대 축을 기초로 합니다.

지난해 11월 26일 유엔 기업과 인권 연례포럼이 열린 유엔 제네바 본부에서 소완, 이서영 연구원. ⓒUNGC 한국협회

국제기구의 권고를 중심으로 한 논의가 기업의 ‘행동’으로 바뀐 건 시대 변화 때문이었습니다. 최근 기업의 사회적 영향력이 확대되고 활동 범위가 넓어지면서, 기업의 인권 보호와 존중에 대한 소비자들의 기대와 관심이 커지게 된 거죠. 이때 UNHRC가 주목하기 시작하면서 인권경영의 2012년 UNHRC는 ‘유엔 기업과 인권 연례포럼(UN Forum on Business and Human Rights)’을 출범해 현재까지 개최하고 있습니다. 지난해 11월에 개최된 제7회 연례포럼에는 170여 개국 정부, 기업, 국제기구, 로펌, 투자자, 학계, 미디어, 시민사회 등에서 3000여 명이 참석했어요. 이 중 기업 참여율은 전체의 약 30%에 달했죠. 특히 올해 포럼에는 여성과 난민, 원주민과 소수자 인권 보호에서부터 4차 산업혁명, 불평등, 기후변화 등 다양한 분야와 인권을 연계한 이슈들이 논의됐습니다.

유엔 기업과 인권 연례포럼 실무그룹은 모든 회원국에게 ‘기업과 인권 국가인권정책기본계획’ 수립을 권고하고 있습니다. 현재 미국을 비롯해 21개국이 이 같은 기본계획을 발간하였고, 이웃나라 일본을 비롯한 23개국이 추진 중에 있습니다. 또한 프랑스 정부는 ‘기업인권모니터링의무법(Duty of Vigilance Law)’, 영국은 ‘현대판 노예방지법(Modern Slavery Act)’, 미국은 ‘도드-프랭크법(Dodd-Frank Act)’ 등과 같이 법안 제정을 통해 기업의 인권실사를 의무화하는 나라도 있죠.

덴마크 인권연구소(The Danish Institute for Human Rights, DIHR)의 기업과 인권 NAP 현황 맵. ⓒDIHR

◇국내 기업들에게도 인권경영은 ‘선택’이 아닌 ‘필수’

올해 재계에서의 화두 중 하나는 ‘인권경영’이 될 전망입니다. 기업 CSR 담당자들 사이에서는 사내 인권경영 가이드라인이나 교육을 준비해야 하는 것 아니냐며 CSR 컨설팅 기관들을 동분서주하고 있다고 합니다. 한 국내 대기업 CSR팀 관계자는 “과거에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 지역사회나, 불우한 이웃 등을 돕는 바깥에서 하는 일이라고 여겨졌다면 이제는 직원과 협력업체의 노동 환경 등 회사 내부 문제까지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하기에 전략을 짜는 게 더 어려워졌다”면서 “이제 CSR을 비롯한 사회공헌 전략과 부서의 역할이 리스크 관리, 조직 관리 차원까지 확장된 모양새”라고 전했습니다.

인권경영이 새삼 새로운 트렌드도 아닌데, 왜 갑자기 한국기업들이 인권경영에 주목하는 걸까요? 지난해 12월 문재인 정부는 향후 5년간의 인권 정책을 담은 ‘제3차 국가인권정책기본계획(NAP)’을 확정하고 계획에 ‘기업과 인권’ 항목을 신설했습니다. 이어 같은 달 국가인권위원회도 ‘공공기관 인권경영 매뉴얼’을 공표하며 인권경영 이행 계획서를 제출하라고 요구했죠. ‘공공기관 경영 평가’에도 인권경영 점수가 포함됐는데요. 올해 평가부터 배점이 확 높아진 사회적가치 항목에 인권경영이 반영된 거죠. 이에 국민연금공단, 한국가스공사, 부산항만공사, 전남개발공사 등 공기업들은 앞다투어 인권경영 관련 별도 의사결정 기구를 꾸리거나 자체 회사 내 인권 실태를 파악하고 있습니다.

유엔 기업과 인권 이행원칙 가이드 북. ⓒOHCHR

전문가들은 국가인권정책기본계획을 시작으로 기업에게 사회적책임 의무를 강하게 요구할 것이라 분석합니다. 그 시작이 공공기관의 사회적가치 및 인권경영 평가이고 결국 민간기업으로까지 퍼진다는 거죠. 이제 인권경영은 기업의 지속가능경영을 위한 새로운 기회의 발판으로 인식돼야 합니다. 이미 수많은 다국적기업들이 인권경영을 이행하고 있고, 이를 이행하지 않는 기업은 오히려 글로벌 경쟁시장에서 살아남기 어렵게 되었습니다. 지난해 6월 세계 5위 연기금인 네덜란드 공적연금(ABP)이 인도네시아 열대림을 파괴하고 원주민 생활에 피해를 입힌 국내 모기업에 대한 투자를 철회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즉 기업은 이제 투자 유치와 리스크 관리뿐만 아니라 장기적인 경쟁력 확보를 위해 인권경영을 필수조건으로 인식해야 합니다.

 

[이서영 UNGC 한국협회 연구원 seolee@globalcompac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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