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19일(금)

신나는 방학? 급식 못 먹는 배고픈 기간

방학이 무서운 아이들
방학중 급식 중단 26만여명 현재 인력·예산으로는 굶는 아동 수 파악 힘들어

미상_그래픽_아동_급식_2010대전시 대덕구에 사는 9살 선희는 엄마와 단둘이 산다. 아빠는 선희가 아주 어렸을 때 집을 나갔다. 선희 기억 속의 아빠는 항상 엄마에게 소리를 지르거나 물건을 던지는 모습이다. 친구들이 아빠와 다정히 손을 잡고 지나가는 모습을 볼 때면 가끔 아빠의 존재가 그립기도 하지만, 바로 고개를 가로저으며 나쁜 기억을 떨쳐 버린다. 엄마는 24시간 영업하는 식당에서 일을 한다. 2교대 근무 때문에 매일 새벽 6시쯤에나 집에 돌아온다.

선희는 혼자 집을 지키고 밥을 먹고 TV를 보고 숙제를 하고 잠이 든다. 굶은 채 잠드는 날도 많다. 9살 선희에게 스스로의 밥상을 차리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지난 겨울 방학 동안 선희에게 가장 힘든 일은 추운 방에서 잠이 드는 것과 혼자 밥을 먹는 것이었다. 방학이 일주일 앞으로 다가온 지금, 선희는 또 하루 종일 홀로 지낼 생각에 겁이 덜컥 난다고 했다.

“학교에 있을 때는 아이들과 같이 급식을 먹으면 되거든요. 저는 공짜로 먹거든요. 집에서 먹는 건 너무 힘들어요.”

선희는 학기 중에는 무료 급식을 받고, 방학 중에는 급식 지원을 받지 못하는 ‘반쪽’ 결식아동이다. 현재 급식 지원 시스템 안에서 학기 중 아동 급식은 교육과학부의 책임이다. 하지만 아이들이 학교에 나가지 않는 주말이나 휴일, 방학 중엔 이 책임이 보건복지부와 지방자치단체의 몫으로 넘어간다.

복지부는 학교에서 급식 지원을 받는 아이들 중 보호자가 제대로 된 끼니를 제공하지 못하는 상황에 놓인 경우에 한해 아이들이 지역사회 내에 있는 급식센터나 식당에서 끼니를 해결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 2009년의 경우 학기 중 교과부에서 무상급식을 지원받은 아동의 수는 전국 73만 명이다. 이 중 12월에 시작된 겨울방학 동안 무료급식을 지원받은 아이들은 47만명에 그친다. 26만명의 아이들이 방학 시작과 함께 무료 급식 지원 대상에서 제외된 것이다.

복지부 박찬수 사무관은 “아이들이 학교에 다니지 않는 방학 중에는 보호자와 집에서 식사를 하는 것이 더 좋기 때문에 실태 조사를 통해 실질적으로 식사가 어려운 경우에만 급식을 지원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 복지부는 방학이 시작되기 전 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에게 통지서를 발송해 방학 중 급식 지원을 신청받고 있다.

그렇다면 선희는 왜 급식 지원 대상이 아닐까. 평화종합사회복지관 윤지원 사회복지사는 “가정에서 아이들의 식사를 책임질 수 있는 여건이 충분하지 않음에도 급식 지원을 신청하지 않는 집을 가끔 본다”고 했다. 선희 엄마처럼 집에 밥과 반찬을 해놓았으니 아이가 알아서 먹을 거라고 생각하는 경우나 함께 사는 할머니, 할아버지가 학교 통지서 자체에 대한 이해가 떨어지는 경우가 왕왕 있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아이들이 가정으로 돌아가 도란도란 저녁식사를 하는 시간, 라면과 김치로 한 끼 식사를 대신하는 아이들이 있다. 조금만 관심을 기울이면 이 아이들이 따뜻한 밥을 먹을 수 있다.
대부분의 아이들이 가정으로 돌아가 도란도란 저녁식사를 하는 시간, 라면과 김치로 한 끼 식사를 대신하는 아이들이 있다. 조금만 관심을 기울이면 이 아이들이 따뜻한 밥을 먹을 수 있다.

“너무 딱한 경우에는 직접 찾아가 급식 지원 신청을 하라고 안내를 하는데도 가만히 계신 분들이 있어요. 거동이 불편하거나 대인 기피 증세가 있거나 다양한 사회관계의 어려움을 겪고 있는 가정이 특히 심하죠.”

현재 학교에서는 원칙적으로 가정 방문을 금하고 있기 때문에 선희처럼 실제 혼자 집에 남겨지고 굶을 가능성이 높은 아이들은 사각지대에 놓인다는 얘기다. 서울시 아동복지팀의 유규용씨는 “98년 급식 지원이 시작된 이후 꾸준히 대상자를 찾기 위한 시스템을 강화해 왔다”며 “하지만 현재의 인력과 예산으로 방임된 아이들을 찾는 것은 쉽지 않다”고 말했다.

이런 ‘사각지대’를 막기 위해 프랑스는 방학이 다가오면 임시 교사를 채용해 방학 중 일부 유치원과 초등학교의 문을 열고, 정규 학기처럼 아침부터 저녁까지 하루 종일 아이들을 맡아 준다. 영국은 1998년부터 저소득층 아동을 위한 통합 지원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우리나라의 경우 이런 사각지대를 메우는 것은 NGO들과 종합 사회복지관들이다. 굿네이버스는 방학 중 ‘희망나눔 여름방학교실’을 운영하며 아이들에게 밥을 주고 학습 지도, 정서 지원, 문화 체험 등의 통합 서비스를 제공한다. 굿네이버스 김중곤 본부장은 “한 끼의 식사를 제공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잠시 학교라는 울타리를 벗어나서 생활하는 아이들에게 종합적인 돌봄 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에서 시작했다”고 말했다. 월드비전은 ‘사랑의 도시락 나눔의 집’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주5일 봉사자가 직접 도시락을 배달하는 사업으로, 방치된 아이들에게 꾸준하고 지속적인 관심을 주고 관계를 맺어 힘을 준다. 세이브더칠드런은 각 지역에서 실질적으로 아이들을 돌보고 있는 지역아동센터와 협력해 급식 및 건강, 정서, 문화 체험 등을 제공하는 ‘체인지더퓨처’사업을 진행한다. 기아대책의 ‘행복한 밥상’은 정부의 급식비 지원 대상에서는 배제가 되었지만 실질적으로 급식 지원이 필요한 아이들을 위해 급식비를 지원하고 있다.

하지만 방학 중 급식이 끊기는 26만명의 숫자를 일일이 들여다보고 실제 굶는 아이들을 발굴하기에는 턱없이 손이 모자란다. 서울시 사회복지관협회 공상길 회장은 “아이들이 현재 처해 있는 상황에 대한 정확한 실태 조사와 면밀한 대책이 하루속히 나와야 한다”고 말했다.

우리 아이를 위해 이렇게 해주세요

주변에서 밥을 굶고 있거나 보호자가 장기간 집을 비운 아이를 발견하셨다면 인근 읍·면·동사무소로 알려주세요.

▶보건복지콜센터 129

이 시간에도 밥을 굶고 있는 아이들을 돕고 싶으시다면 아래 기관에 연락해 후원을 문의해주세요.

▶굿네이버스 (02)6717-4155

▶월드비전 (02)2078-7000

▶세이브더칠드런 (02)6900-4400

▶기아대책 (02)544-9544

▶어린이재단 1588-1940

▶그 외 지역 내 종합사회복지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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