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3월 29일(금)

[공익추적] 바우처로 ‘현금깡’, 대상자 대신 가족에 서비스…혈세 줄줄 샌다

편법·불법 도 넘은 ‘지투사업’ 실태

지역사회 복지 사각지대를 해소하기 위한 ‘바우처 사업’에 투입된 세금이 줄줄 새고 있다. 정부는 지난 2007년 취약 계층이 다양한 복지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바우처 카드를 발급하는 지역사회서비스투자사업(이하 ‘지투사업’)을 시작했다. 올해 2700억원 규모의 보건복지부 예산이 지투사업에 투입된다.

지투사업은 취약 계층의 다양한 욕구를 충족하기 위해 각 지역의 민간 서비스 제공 기관이 자율적으로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방식으로 운영된다. 서비스 제공 기관이 수급 대상자 한 명을 유치할 때마다 월 15만원 안팎의 고정 수입이 생기는 셈이다. 문제는 수급자 유치 과정이나 서비스 제공 과정에서 발생하는 부정행위를 정부나 지자체가 제대로 단속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서비스 제공 기관들은 지투사업을 ‘눈먼 돈’으로 부른다. 부정 수급이 적발되더라도 솜방망이 처벌에 그치는 경우가 많아 일부 서비스 제공 기관장들은 더 많은 수익을 위해 편법을 넘어 불법도 서슴지 않는다.

◇무분별한 수급 대상자 유치 경쟁… 편법 넘어 불법으로

오후 3시, 민간 서비스 제공 기관 직원 A씨의 휴대전화 알람이 울렸다. 그는 가방에서 카드리더기와 고무줄로 묶은 바우처 카드 뭉치를 꺼냈다. 20여 장의 카드에는 A씨가 담당하는 수급 대상자들의 이름이 새겨져 있었다. 그는 휴대전화에 단말기를 연결한 뒤 카드 중 하나를 골라 기기에 긁었다. 서비스 제공 시각이 바우처 전산 시스템에 주 1회 같은 시각에 매번 정확히 찍혀야 의심을 받지 않기 때문이다. 그는 “실제 서비스를 하든 하지 않든 정해진 시각에 결제하면 상급 기관에서 문제 삼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개인이 갖고 있어야 할 바우처 카드를 서비스 제공 기관에서 수거해 임의로 결제하는 이 같은 형태는 전형적인 부정 수급 사례로 볼 수 있다.

또 다른 서비스 제공 기관에서 1년간 일했던 B씨는 “과도한 유치 경쟁으로 사업 본연의 취지는 이미 사라진 지 오래”라며 “이용자를 끌어모으기 위해서 바우처 서비스를 등록하면 아이들 공부를 봐준다고 홍보한다”고 말했다. 그는 한 가정에서 노인생명존중서비스(할머니), 다문화가정지원서비스(어머니), 아동심리서비스(자녀 2명) 등으로 4명까지 등록된 사례를 담당하기도 했다. 가족은 개인당 주당 한 시간씩의 서비스 시간을 제공받아야 했지만, 총 4시간을 모두 아이들의 공부 봐주기 시간으로 돌렸다. B씨는 “이렇다 보니 서류상 프로그램 시간과 실제 수업 시간도 다를 수밖에 없었다”면서 “스케줄표에도 바우처 카드 긁는 시각과 실제 수업 시간이 따로 기재돼 있었다”고 말했다.

지투사업에서 가장 인기 있는 프로그램은 ‘시각장애인 안마 서비스’다. 서비스를 받기 위해 대기자가 줄을 설 정도다. 부정 수급 행위는 안마원에서 빈번하다. 서울시 동대문구의 D안마원은 근골격계·신경계·순환계 질환이 있는 만 60세 이상의 노인들을 위한 시각장애인 안마 서비스를 제공한다. 해당 안마원에서 근무하는 C씨는 “안마 안 받을 테니 바우처 카드로 ‘현금깡’ 하자는 할머니도 있고, 수급 대상자가 아닌 다른 가족이 서비스를 대신 받으러 오는 경우도 많다”고 고백했다.

수급 대상자가 기관에 내야 할 ‘본인 부담금’도 업체에서 대납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마치 일부 휴대전화 대리점에서 가입비를 대신 내주면서 고객을 유치하는 것과 같은 방식이다. 충북 제천의 한 서비스 제공 기관 관계자는 “본인 부담금을 받는 곳이 있다면 아마 망할 것”이라면서 “그만큼 본인 부담금 대납은 수급 대상자들 사이에서 널리 퍼져 있다”고 말했다.

 

◇3인 이상이면 누구나 서비스 제공 기관 등록…10년 만에 876% 증가

서비스 제공 기관은 누구나 설립할 수 있는 등록제로 운영된다. ‘비영리’라는 조건이나 ‘법인’이라는 제한도 없이 개인이 마음대로 등록할 수 있는 구조다. 운영 인력 3인과 10평 정도의 사무실·설비만 갖추면 된다. 전문성을 검증하는 조건도 없다.

진입 장벽이 무척 낮기 때문에 설립 기관은 매년 폭증하고 경쟁은 더 치열해지고 있다. 전자바우처 결제와 관리를 담당하는 사회보장정보원에 따르면 서비스 제공 기관은 지난 2007년 기준 1274개소에서 2017년에는 1만2437개소로 무려 876% 증가했다. 매년 1400개의 업체가 꾸준히 문을 연 셈이다. 서비스 제공 업체 관계자는 “예산은 한정적인데 업체는 해마다 폭증하면서 업체 간 경쟁이 말도 못할 정도로 치열해졌다”면서 “현장에 퍼져 있는 부정 수급 케이스를 솔직히 복지부 차원의 합동 조사나 전산 모니터링으로는 잡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불법 행위가 만연한 바우처제도를 감독하고 견제하는 장치는 없을까? 물론 있다. 다만 현장에서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뿐이다. 보건복지부는 대상자에게 전화로 서비스를 잘 받고 있는지 확인 전화를 한다. 하지만 현장에는 이미 ‘복지부 대응 가이드라인’이 존재한다. 서비스 제공 업체는 감독 기관 대응 요령을 정리한 이른바 ‘딱지’를 수급 대상자들에게 나눠준다. 어떤 질문에 어떻게 대답해야 하는지가 상세히 적힌 종이다.

본지가 입수한 딱지에는 ‘주의 사항’이라는 제목으로 ▲기관에서 1시간 미술·한글 수업 진행 ▲본인 부담금은 매달 둘째 주에 선생님에게 드림 ▲(바우처) 카드는 엄마가 소지 ▲수업받고 사인하고 카드 결제 ▲비행기·입원 시 연락할 것 등 다섯 가지 요령이 정리돼 있다. 서비스 이용자가 출국했을 때 결제가 되면 전산 모니터링에 부정 수급으로 걸리기 때문에 미리 기관에 연락하라는 내용도 포함됐다.

◇지자체에서도 단속 어려워…제공 기관 ‘등록제’에서 ‘인가제’로 전환해야

지자체에서도 현장에서 벌어지는 부정 수급 상황을 모르지 않는다. 경기 지역의 한 서비스 제공 기관 관계자는 “시·군·구 점검이나 사회보장정보원의 품질 평가 감사에서도 터치를 안 한다”면서 “계좌 내역으로 본인 부담금 납부 여부를 확인할 수 있겠지만 보통은 일반적인 확인 서류로 넘어간다”고 말했다. 충남도청 관계자는 “고의적 부정 결제는 거의 없다고 생각한다”면서도 “만약 서비스 제공자와 이용자가 작정하고 담합한다면 적발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현장 점검은 분기마다 이뤄진다. 보통 시·군·구 담당자가 기관에 점검 일정을 미리 통보하고, 준비된 현장 보고서를 확인하는 식으로 이뤄진다. 지자체 담당자들은 행정지도나 행정처분이 필요한 제공 기관이 있을 경우 이를 시행하고, 복지부에 결과 보고를 올리는 역할을 한다.

지난해 기준 경기도에 등록된 서비스 제공 기관은 총 1865개다. 반면 경기도청의 지투사업 담당자는 2명. 이들은 지역 내 시청·군청에서 올라오는 제공 기관 서류를 관리한다. 경기도청 관계자는 “도청에서는 시·군·구에서 자체 점검 결과나 행정처분 결과를 추후에 확인할 뿐”이라고 말했다. 전북도청 사회복지과 관계자 역시 “복지부는 서비스 제공 기관의 70%를 지자체에서 자체 점검하라고 권고하지만 현실적으로 무척 어렵다”고 말했다.

김주경 국회입법조사처 보건복지여성팀 조사관은 “사회 서비스 바우처 사업은 서비스 제공 기관 선정 과정에서부터 품질이나 진정성 여부를 따지기 어려운 구조”라고 말했다. 이어 “기관들이 지자체에 제출하는 보고서도 지역마다 제각각이라 바우처 이용 대상자의 규모를 파악하기도 쉽지 않다”고 지적했다.

부정 수급 적발 시에는 최대 3000만원의 과징금을 물게 되며 등록 취소로도 이어질 수 있다. 하지만 업계에서는 행정명령이 떨어졌을 때 “운이 안 좋았다”고 말한다. 폐업까지 이어지는 경우가 그만큼 드물다는 얘기다. 특히 현행법으로는 서비스 제공 기관 등록 취소 처분을 내려도 해당 기관이 재개업을 하면 제재할 수단이 없다. 신창환 경북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부정 수급 근절과 서비스 품질 향상을 위해 학계에서는 현행 등록제를 인가제나 인증제로 전환하자는 의견도 나온다”면서 “본인 부담금 금액을 높여 바우처 카드를 사용하는 이용자들은 책임감을 갖게 하고 제공 기관에서는 대납을 부담스럽도록 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라고 말했다.

 

[문일요 더나은미래 기자, 박경민·이해솔 청년기자 ilyo@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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