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19일(금)

“젊은 국악인들이 우뚝 설 수 있도록 응원하겠습니다”

[인터뷰] 국악음반 제작하는 소셜벤처 ‘레이블소설’의 설현주 대표

국악인의 99%는 평생 자기 이름으로 된 음반 한 장 내지 못한다. 한국문화관광연구원이 발간한 ‘2015 예술인 실태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국악인들의 평균 예술 활동 수입은 1163만원. 응답자의 29.1%는 ‘개인 수입 중 예술활동 수입이 전혀 없다’고 답하기도 했다. 설현주(33) 레이블소설(小雪) 대표는 ‘돈 안 되는’ 국악계에 과감히 도전장을 내밀었다. 지난 6월 국악을 전문으로 다루는 기획사를 설립, 음반 제작과 공연 기획으로 젊은 국악인들을 지원하고 있다.

젊은 국악인들의 음반 제작과 공연 기획을 지원하는 설현주 레이블소설(小雪) 대표. ⓒ박창현 사진작가

◇4개월 만에 국악음반 22장…제작·녹음 비용 외엔 모두 무료

“젊은 국악인들이 마주한 현실은 암울합니다. 단순히 우리 전통음악을 보존하고 계승하는 역할을 넘어 국악인 스스로 자립해야 합니다. 국악계 내부에서도 정부 기금에만 의존해 공연하는 지금의 상황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어요.”

설현주 대표도 국악인이다. 대학 3학년 때 서울국악관현악단에 들어가 타악 수석을 수료한 뒤, 2007년부터는 국내 최초의 민간국악단 ‘락음 국악단’의 창단 멤버로 활약했다. 이후 10년간 휴일도 없이 공연하며 단무장까지 역임하다가 올해 초 악단을 떠났다. 그는 “국악이 대중에게 보다 쉽게 다가갈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던 중 레이블 사업을 결심했다”고 말했다.

“요즘에는 음악을 멜론이나 벅스 같은 스트리밍 서비스에서 듣잖아요. 국악도 그래야죠. 멜론에도 국악 차트가 있어요. 음원이 적을 뿐이죠. 음반 작업을 통해 국악이 대중과 가까워질 수 있게 노력하고 있습니다.”

이제 갓 5개월. 레이블소설은 지난 6월14일 첫 음반 발매를 시작으로 설립 130일 만에 무려 22장의 앨범을 제작했다. 한 해 프로모션 일정도 벌써 꽉 찼다. 설 대표는 “매주 앨범 한 장씩 찍어낼 정도로 국악 음반을 내려는 수요가 높다”면서 “사회적 가치를 실현한다는 측면에서 순수 녹음 비용 외에는 무료로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서울 서초구 양재동에 있는 레이블소설 녹음실 모습. ⓒ박창현 사진작가

설 대표가 말하는 사회적 가치는 ‘전승(傳承)’이다. 지역별로 개성을 가진 토속민요나 아리랑 등은 거의 음원화 작업이 돼 있지 않은데, 이를 데이터로 남겨 후대에 남기는 동시에 다양한 콘텐츠로 활용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드는 것이다.

“흔히 국악이라고 하면 공연만 떠올려요. 공연 기획도 물론 중요하지만, 국악을 세련된 영상으로 담아내거나 다른 장르와 콘텐츠 융합을 하는 것도 충분히 실현할 수 있는 부분입니다.”

이렇게 만들어진 음원은 누구나 듣거나 사용할 수 있도록 유튜브로 배포된다. 즉 국악을 공공재로서 확산시키기는 작업이다.

레이블소설은 신진 국악인들이 녹음과 공연에 필요한 전통악기를 빌려주기도 한다. ⓒ박창현 사진작가

◇늦깎이 국악 인생, 젊은 국악인의 지원군으로 변신

설현주 대표는 국악계에서 ‘이방인’이었다. 국악 전공자의 열에 아홉은 국악중·국악고 출신인데, 설 대표는 일반 인문계 고등학교를 나왔다. 국악에 발을 디딘 것도 고교 시절 접한 교내 사물놀이 동아리였다.

“또래 친구들과 비교하면 상당히 늦게 입문한 편이었어요. 고등학교 때도 전문적으로 배우진 못했고, 찢어진 악기를 쓰거나 장구 대신 과일 박스를 두드리기도 했어요. 대학에 들어가니까 같은 신입생인데도 이미 교수들과 친분이 있는 학생들이 많았어요.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죠.”

사물놀이의 흥겨운 가락처럼 신바람 나는 대학 생활을 기대했던 설 대표는 이내 현실의 벽을 실감했다. 바로 국악계 전반에 깔린 ‘도제식 수련문화’였다. 그는 “이 바닥에서는 유명하고 힘있는 스승을 만나는 것이 공연에 설 기회이자 경력”이라며 “누구 제자냐고 묻는 말에 답을 하지 못해 난감할 때가 많았다”고 말했다.

“국악은 사람에서 사람으로 전승된다는 특징이 있어서 스승의 역할이 무척 중요합니다. 그런데 무대에 설 기회가 적기 때문에, 일부 선생님들 아래에서 수련하는 제자에게만 기회를 주는 경우가 많아요. 많은 국악인이 대중과 소통하려고 힘쓰기보다 소수의 스승에게 매달리게 되는 이유죠. 더 큰 문제는 그 울타리에 속하지 못한 친구들은 경력을 쌓지 못하고, 창작욕도 잃는다는 거죠.”

레이블소설은 젊은 국악인들의 창작욕을 고취하기 위해 여러 프로젝트를 준비하고 있다. 우선 11월부터 젊은 국악인들에게 하우스콘서트를 열 수 있도록 대관료 없이 공간을 마련해주고, 홍보도 도맡는다. 또 공연이나 녹음 과정에 필요한 악기도 풍부하게 제공할 수 있도록 전통악기 제작전문가와 협업을 해나가고 있다.

지역사회에서 사회적 가치를 실현할 계획도 착착 진행 중이다. 설 대표는 국립국악고등학교·국립전통예술고등학교와 업무협약을 맺고, 저소득층 학생들에게 앨범 프로모션 지원을 계획하고 있다. 오는 20일에는 서울 서대문구 지역주민을 위한 국악 공연도 연다.

“아직 갈 길이 멀어요. 지금 저작권료로 벌어들이는 수입은 사실상 ‘0원’에 가깝지만, 사회적기업육성사업 지원금과 공연 수익으로 충당해 나가고 있습니다. 그래도 최소 3년은 버텨봐야 제대로 된 성과가 나오지 않겠어요? ‘국악의 힘’을 믿어보려고요.”

 

[강석현 더나은미래 청년기자(청세담 9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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