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4일(수)

한국 아이들 얼마나 잘 살고 있을까?… 지수 소폭 올랐지만 아직 ‘C학점’

굿네이버스 ‘2018 아동권리지수’ 분석해보니

‘2018 아동권리지수’의 책임연구원인 이봉주 교수가 연구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굿네이버스

한국 정부는 1991년 유엔아동권리협약(UNCRC)에 가입했다. 27년이 흐른 지금, 협약에 명시된 아동의 권리는 잘 지켜지고 있을까?

최근 굿네이버스는 UNCRC 채택일을 기념하는 ‘세계 아동의 날'(11월 20일)을 맞아 국내 아동 9176명과 보호자 9176명 등 총 1만8352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2018 아동권리지수’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종합 평균점수는 71.2점. UNCRC에 명시된 아동이 기본적으로 누려야 할 ▲생존권 ▲발달권 ▲보호권 ▲참여권 등 네 분야의 지수를 종합한 점수다.

굿네이버스는 지난 2016년 국내 최초로 아동권리지수를 발표한 이후, 2년마다 연구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책임연구원인 이봉주 서울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지난 1차 조사 결과인 69.2점에서 올해 71.2점으로 소폭 상승했는데, 네 가지 권리 중 참여권이 큰 폭으로 오르면서 전체 지수 상승을 견인했다”면서 “대학 학점으로 치면 여전히 C학점 수준이지만, 우리 사회가 아동의 권리를 보장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점에서는 고무적”이라고 평가했다.

 

◇대전 아동권리지수 전국 최고… 학년 올라갈수록 하락

연구에 따르면, 아동권리지수는 실제 아동 발달과 밀접한 관련이 있었다. 아동권리지수가 높은 아이들은 자아 존중감, 행복, 학업 성취 등 긍정적인 발달 결과가 높게 나타났고, 반대로 부정적 발달 결과인 스트레스, 불안, 공격성 등은 상대적으로 낮았다.

지역별로 비교해 보면 대전의 아동권리지수가 106.5점(평균을 100점으로 두고 지역별 상대지수로 환산)으로 가장 높았다. 이어 울산(105.7점), 제주(105.3점), 부산(104.7점), 대구(104.1점), 서울(102.7점) 순으로 나타났다.

아동권리지수를 구성하는 주요 지표를 살펴보면, 2016년 대비 2018년 아동의 건강검진 비율은 높아지고, 수면만족도가 개선되는 등 객관적 건강 지표들의 증가를 확인할 수 있었다. 특히 놀이·휴식 시간이 부족하다고 인식했던 아동 비율이 19%에서 11.2%로 대폭 하락한 점도 눈에 띄었다.

생존권 평가 항목인 ‘미세 먼지 노출 정도’에서는 평균 49.9점으로 보통 수준을 보였다. 지역별로는 울산이 60점으로 가장 높게 나타났고, 제주가 38.3점으로 가장 낮았다. ‘간접흡연 노출 정도’는 상대적으로 낮은 39.4점으로 나타났는데, 광주가 가장 높고 대전이 가장 낮았다.

보호권과 관련해서 두드러지는 항목은 ‘체벌 경험’이다. 조사 대상 아동 중 20.4%가 가정에서 체벌받은 경험이 있다고 응답했다. 학교 체벌 경험은 4.9%, 지역사회 체벌 경험은 3.7%였다.

조사 대상별 권리 인식 수준은 초등학교 4학년 106.0점, 6학년 101.1점, 중학교 2학년 92.9점 등으로 학년이 올라갈수록 점점 떨어지는 양상을 보였다. 이봉주 교수는 “고학년이 될수록 권리지수가 높을 것으로 예상했지만 결과는 정반대로 나타났다”면서 “나이가 많아지면 민감성이 높아지기 때문에 같은 일이라도 권리 침해로 인식한 것일 수도 있고, 실제로 권리 영역이 약화됐을 가능성도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중학생의 경우 생존권·발달권·보호권·참여권 등 모든 지수에서 평균에 못 미치는데 앞으로 정책적 방향을 어떻게 잡아가야 할지 고민이 남는 지점”이라고 말했다.

 

◇지자체 예산 규모와 지수 사이 큰 연관성 없어

연구진은 17개 시·도별 아동권리지수에 미치는 환경적 요인으로 ‘인프라 환경’과 ‘사회적 인식’을 꼽았다. 그간 주요 요인으로 지목됐던 ‘경제적 환경’, 즉 지자체의 재정 자립도는 아동권리지수와 관련해 통계적으로 큰 연관성이 없었다. 이봉주 교수는 “다른 지역에 비해 예산이 부족하다는 이유만으로 아동권리지수를 증진하기 어렵다고 말할 수 없게 된 셈”이라며 “인프라 조성은 예산의 크고 작음이 아니라 어디에 먼저 투자할지 정하는 우선순위의 문제”라고 지적했다.

지수에 영향을 준 인프라 환경 요소에는 ▲위생 환경 ▲시설·기관 이용 수준 ▲학교 시설 등의 순으로 나타났다. 사회적 인식의 경우 ▲동네의 안전감 ▲학교 풍토 ▲아동 권리 인식 ▲가족과의 여가 활동 ▲놀이·휴식 시간 ▲이웃과의 교류 등 거시적인 요소보다 생활과 밀접하게 관련된 미시적 요소들이 많았다.

정병수 국제아동인권센터 사무국장은 “인프라 측면에서도 특히 위생 부문이 가장 큰 영향을 주는 것으로 나타났는데, 현장 활동가 사이에서는 이를 ‘화장실 지수’라고 부른다”면서 “연령·성별 구분 없이 누구나 깨끗하고 안전한 공공 화장실에 대한 욕구를 갖고 있으며, 이는 권리 보장을 위한 기본적인 사안”이라고 말했다.

아동 권리를 높이기 위해 ‘차별’ 요소를 해결해나가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연구에 따르면, 차별 경험은 ‘연령’ ‘성별’에서 크게 두드러졌다. 나이 때문에 차별받은 적이 있다고 응답한 아동은 전체의 21.7%, 성별에 따른 차별 경험 비율은 20.9%였다. 또 다른 요소로는 성적(13.4%), 외모(12.5%), 사는 동네(2.9%), 가정 형편(1.7%) 등의 순으로 나타났다.

성창현 보건복지부 아동복지정책과장은 “아동을 보호 대상이 아닌 개별적인 인격체로 바라보는 인식의 변화가 정책의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다”면서 “아동 권리를 높일 수 있는 효과적인 정책이 나오려면 정부와 전국 200여 개의 지자체, 학교, 가정에서 함께 움직여야 한다”고 말했다.

 

[문일요 더나은미래 기자 ilyo@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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