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5일(목)

[Cover story] [세계 Top 10 사회적 기업가를 찾아서] ④’안데스 식료품점’ 설립자 기욤 밥스트

빈곤층에 꿈을… 일자리·저렴한 식료품에 독립심까지

지금으로부터 5년 전, 이드리스 벤메라(Idris Benmerah·52)씨는 마지막 지푸라기를 잡는 심정으로 프랑스에 왔다. ‘프랑스 드림(France Dream)’을 품고 이민 온 수많은 알제리인 중 하나였다. 가난한 집에서 태어난 그는 13살 때 아버지가 허리를 다쳐 일을 그만두신 후로 가족을 부양해야 했다. 농사며 공사장 일이며 손에 닿는 일은 다 했다.

“어른이 되어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아 가정을 이루었지만, 도무지 가난에서 벗어날 수 없었어요. 오히려 부양해야 할 가족만 늘어난 셈이죠. 우리 아이들에게 이 가난을 물려줄 수는 없었습니다.” 벤메라씨는 그렇게 프랑스로 건너갈 결심을 하고 2005년 홀로 지중해를 건넜다.

앞줄 중앙 오른쪽의 과일을 들고 있는 사람이 안데스의 창업자, 기욤 밥스트씨다. 밥스트씨 바로 뒤 왼편이 안데스를 통해 새로운 삶을 시작하고 있는 이드리스 벤메라씨다. 전국에서 수거한 채소와 과일을 들고 안데스 직원과 인턴들이 밝게 웃고 있다. /이동섭 객원기자
앞줄 중앙 오른쪽의 과일을 들고 있는 사람이 안데스의 창업자, 기욤 밥스트씨다. 밥스트씨 바로 뒤 왼편이 안데스를 통해 새로운 삶을 시작하고 있는 이드리스 벤메라씨다. 전국에서 수거한 채소와 과일을 들고 안데스 직원과 인턴들이 밝게 웃고 있다. /이동섭 객원기자

큰 꿈을 품고 프랑스에 왔지만, 달라지는 건 없었다. 언어도 통하지 않고 아는 사람도 한 명 없으니 일자리를 구하기란 거의 불가능했다. 직장도 집도 구하지 못한 벤메라씨는 고향의 가족에게 안부 전화를 거는 것조차 마음이 불편했다.

수개월 그렇게 방황하던 중, 그는 구직상담소의 도움으로 안데스(ANDES:Association Nationale De Développement des Epiceries Solidaires)라는 곳을 알게 됐다. 빈곤층 대상의 식료품점인 이곳에서 가난한 ‘고객’들은 시중가의 10~20%에 해당하는 저렴한 가격으로 물건을 구매한다.

벤메라씨는 총 14개월 동안 이 회사의 인턴으로 일하며, 채소와 과일을 나르고 손으로 불량품을 골라내고 각 식료품점으로 갈 상품을 포장하고 배송했다. 몇 년이 흐른 지금, 그는 안데스 중앙물류센터에서 배달과 인턴 교육을 담당하는 정규 직원이 됐다. 알제리에 남아 있던 가족도 드디어 프랑스로 데려올 수 있었다.

“두 딸, 두 아들에게 제 어린 시절과는 다른 삶을 선물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눈가가 촉촉해졌다.

벤메라씨와 같은 수많은 빈곤층 사람들에게 때로는 일자리를, 때로는 저렴한 식료품을, 때로는 쉼터를, 때로는 즐거운 워크숍을 제공하는 안데스 식료품점은 현재 프랑스 내에만 500개가 넘는다. 이용자 수는 매년 12만~17만명이나 된다.

프랑스 빈곤층 사람들에게 새로운 꿈을 꾸게 하는 안데스. 그 설립자이자 프랑스의 대표적인 사회적 기업가 기욤 밥스트(Guillaume Bapst·49)씨를 만났다. 2000년에 안데스를 설립한 그는 2006년 아쇼카 펠로로 선정됐다. 프랑스인 최초였다.

그가 안데스를 처음 구상한 것은 1995년. 기존의 식품 또는 식권을 제공하는 식품나눔방식에 문제점을 발견하고 빈곤층 대상의 식료품점을 니에브르(Nièvre) 지방에서 직접 열었다.

“식품이나 식권을 나누어주는 방식은 받는 사람들이 식품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를 보장해주지 못합니다. 주는 대로 먹으라고 하니,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이 상처를 받게 되죠. 자존감·독립심은 점점 사라지고 급기야는 원조와 공짜에 익숙해지고 길들여지게 됩니다.”

기존의 방식을 강력히 비판했던 밥스트씨는 빈곤층 사람들에게 선택의 자유, 존엄성을 지켜주는 방식을 시도해 보고 싶었다고 했다.

“식품 관련 기업과 농장, 수퍼마켓 등 여기저기 발이 부르트도록 다니며 도움의 손길을 청했습니다. 그 결과 소비자 가격의 10~20%로 채소와 야채 등을 판매하는 독특한 식료품점을 만들 수 있었죠.” 그의 가게는 큰 인기를 끌었다. 당시 대통령을 비롯한 정부 관료들까지 그 작은 식료품점을 견학했다.

자신감을 얻은 그는 2000년, 그동안의 지식과 경험을 바탕으로 사회적 기업 안데스를 설립했다.

“처음에는 많이 외로웠습니다. 기존의 식품 나눔 사업을 진행했던 복지단체와 NGO들이 반기기는커녕 오히려 저를 경계했습니다.”

밥스트씨는 그저 혼자서 묵묵히 첫 3년간을 열심히 뛰어다녔다. 그렇게 3년이 지날 무렵, 한두 명씩 동료들과 돕는 손길들이 나타났다. 그렇게 뜻을 모은 사람들이 하나 둘 프랑스 전역에 안데스 식료품점을 세우면서, 지금은 500개가 넘는 가게가 퍼졌다. 중앙 물류센터도 만들어졌다. 센터에서는 농장과 수퍼마켓, 식료품 기업 등에서 채소와 과일 통조림 등을 수거해 온다. 유통기한이 조금밖에 남지 않아 팔기 어려운 것부터 안데스의 사명에 공감하여 기부한 새것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일자리는 노숙자, 장기 실직자들 몫이다.

안데스 식료품점의 특징은 안데스, 지역 정부, 복지 전문가로 구성된 위원회에서 서류 심사와 면접을 거쳐 선정한 사람만이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기간과 월 사용액도 선정 과정에서 결정된다. 지나치게 의존하게 되는 부작용을 막기 위해서다. 또 안데스 식료품점을 사용하는 고객에게는 의무 조항이 하나 붙는다. 가계 빚 줄이기, 자녀 교육비를 위한 저축 등 가계 경영에 도움을 주는 주제부터 요리 교실, 미용 교실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프로그램과 워크숍에 참여하는 것이다. 이러한 활동들의 참여를 통해 자신의 미래를 스스로 개척할 수 있는 힘을 쌓게 된다고 믿기 때문이다.

밥스트씨는 “실제 이런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사람들의 경우 약 75%가 목표를 달성하고 있다”며 “단순히 먹을 것을 주는 게 아니라 자신의 삶을 경영하고 관리하도록 돕는 것이 중요하다”고 힘주어 말했다.

그는 인터뷰가 끝나자마자 노르망디에 있는 농장 에 가야 한다며 서둘러 떠났다. 아직은 허허벌판이지만, 곧 많은 사람들이 이 농장을 통해 농사도 짓고 삶도 새로이 개척하게 될 모습이 눈에 선하다는 밥스트씨.

“사회적 기업가는 국가와 사회의 손이 미처 닿지 못하는 문제들을 수면 위로 드러나게 하고 문제를 해결하는 역할을 맡은 사람”이라는 그의 말처럼, 어쩌면 사회적 기업가란 그처럼 허허벌판에서도 희망을 찾아내고 그 희망을 위해 열심히 갈고 닦는 사람이 아닌가 싶다.

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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